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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소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지연리 옮김 / 창해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어릴 때는 이 책을 예쁜 동화처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작은 별에 사는 어린 왕자와 장미, 여우, 사막, 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이 책은 더 이상 단순한 동화로만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잊고 살았던 마음, 어른이 되며 놓쳐버린 순수함, 관계 안에서 생기는 책임과 그리움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어린 왕자는 자기만의 작은 별에서 장미와 함께 지내다 여러 별을 여행한다.
그가 만나는 어른들은 모두 이상해 보이지만, 읽다 보면 그 이상한 모습 안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권위에 매달리는 사람, 칭찬만 바라는 사람,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술을 마시는 사람, 숫자로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사람, 이유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사람까지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계속 등장한다.
처음에는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어른들이 우스워 보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나와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을 미루고, 중요한 것을 숫자로 확인하려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며 살아온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문장이 쉽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은 말로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랑은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시간을 들이고 책임지는 마음이라는 점이었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나고 나서야 장미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깨닫는 과정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곁에 있을 때는 까다롭고 예민하게 느껴졌던 존재가, 멀어지고 나서야 나에게 하나뿐인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돌봄이고, 기다림이고, 마음을 쏟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우와 어린 왕자가 나누는 관계의 의미도 깊게 남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자주 만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기다림이 있고, 익숙해짐이 있고, 책임도 따라온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 뒤에 따라오는 책임까지 조용히 알려준다.
그 부분이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더 크게 와닿았다.
특히 창해판은 책 자체가 정말 아름다웠다.
검은 바탕에 붉은 꽃과 보라색 꽃, 별과 어린 왕자가 어우러진 표지가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이 함께 있어 오래된 고전을 다시 새롭게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라는 익숙한 작품을 다시 꺼내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판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언제부터 중요한 것을 눈으로만 확인하려 했는지 생각했다.
돈, 결과, 숫자, 성과, 평가처럼 보이는 것들에 마음이 자주 흔들렸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작 나를 살게 해 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다정한 말, 오래 기억되는 순간, 함께 웃었던 시간, 말없이 곁을 지켜준 마음이었다.
어린 왕자는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는 책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기다릴 줄 아는 마음,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작은 것 앞에서 감탄하는 마음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짧은 책이지만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여운은 길다.
어릴 때 읽었던 사람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도, 지금 다시 펼치면 분명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될 책이다.
나에게 이 책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고전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거울 같은 책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자꾸만 놓치고 사는 날, 마음이 조금 메말랐다고 느껴지는 날,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