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쓸 만한 인생
윤혜연 지음 / 달먹는토끼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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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다 보면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어진다는 말을 보고 마음이 먼저 멈췄다.
나는 전화할 엄마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더 읽고 싶었다.
전화할 수 없어서 피하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어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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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부터 마음이 울컥했다.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 어린 시절과 엄마의 얼굴이 자꾸 겹쳐졌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개근상은 못 받아도 글짓기상은 자주 받아오던 나에게 엄마는 나중에 작가가 되려나 하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응원처럼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내가 나보다 먼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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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떠난 뒤에야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어릴 적 쓴 글들이 실린 학급문고들을 엄마가 한곳에 그득하게 모아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잊고 살았던 어린 날의 글들을 엄마는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품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엄마에게 나는 늘 부족한 딸이었을까 걱정했는데, 어쩌면 엄마에게 나는 오래전부터 자랑스러운 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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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인생이 꼭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귀하고, 상처가 많아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삶을 꾸며서 말하지 않고, 지나온 시간의 아픔과 웃음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어서 더 깊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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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기도 하고, 딸과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해서 이 책 속 여러 장면에 자주 멈췄다.
엄마를 떠올릴 때는 딸의 마음으로 울었고, 자식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읽었다.
특히 둘째고모 이야기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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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내게 맛있는 것 먼저 먹고, 좋은 것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라고 자주 말해주었다.
그때는 그냥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떠난 뒤에야 그 말이 얼마나 간절한 사랑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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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큰집에 가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삼색전을 눈치 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된 뒤에도 대구 집에 갈 때면 아무 날도 아닌데 삼색전을 구워두고 실컷 먹으라고 했다.
그때는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 해주는 음식이라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엄마가 내게 주던 사랑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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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먼저 놓아둔 접시였고, 눈치 보지 말고 먹으라는 마음이었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싶은 엄마의 조용한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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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하나가 된 지금에서야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책임자로 일하며 남들 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정작 내 안의 나는 자주 뒤로 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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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갑자기 떠나고, 긴 시간 붙잡고 있던 일을 내려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내 목소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가 이렇게 살게 될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되려나 하던 그 말이 지금 와서 자꾸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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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믿는 편이다.
엄마가 떠난 뒤 한 번만 꿈에 나와달라고 매일 빌었다.
그리고 딱 3주가 되던 날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
우리 식구들이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함께 걷고 있었고, 길고 긴 나무다리 앞에서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꿈은 엄마가 이제 먼 길을 떠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꿈에서 깬 뒤 나는 통곡하며 울었다.
엄마가 더 보고 싶었는데 이제 정말 가버리는 것 같아서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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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와 나 사이에 남은 말들, 끝내 하지 못한 사과, 마지막이 다툼이었다는 미안함, 갑자기 떠나버린 엄마를 붙잡지 못했다는 마음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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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를 잃고 3일 내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마음껏 우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다.
너무 그리워하면 더 무너질까 봐, 너무 울면 다시 못 일어날까 봐 마음 한쪽에 꾹 눌러두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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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런 내게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도 되고, 그리우면 그리워해도 되고, 늦게라도 엄마의 사랑을 다시 알아차려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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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들은 언니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했다.
다정하지만 흐릿하지 않았고, 현실적이지만 차갑지 않았다.
살아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말들이라 더 깊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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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누군가의 딸로 남아 있는 일,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여자로 살아가는 일, 나이 들어도 다시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일이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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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많이 울었고, 웃기도 했고, 자주 멈췄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엄마를 잊어서가 아니라, 엄마를 더 사랑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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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오래 말을 걸었다.
엄마, 나 이제 조금씩 나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가 알아봐 준 글 쓰는 마음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엄마가 남겨준 사랑을 이제야 더 잘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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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게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하고 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엄마가 그리운 사람에게도,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다시 나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도 오래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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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도 엄마가 믿어준 만큼 아직은 충분히 제법 쓸 만하다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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