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뿌뿌 비룡소의 그림동화 36
케빈 헹크스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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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보통 뿌뿌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더럽고 냄새나서 엄마에게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지만 아이에겐 엄마같은 존재니 그것을 뺏을 권리가 어른 에게는 없을 터. 이 책은 그런 아이와 부모 사이의 갈등과 해결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왜 아이가 뿌뿌를 곁에 두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은 없지만 뿌뿌에 대한 아이의 집착은 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뿌뿌가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하지만 점점 자라는데도 아기같이 담요 조각을 늘 품에 안고 다니는 것은 사회적 위치에 걸맞지 않으니 부모로서는 참 진퇴양난이다. 게다가 족집게 아줌마처럼 뿌뿌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하며 뿌뿌를 없애버리는 비법을 알려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족집게 아줌마가 알려준 여러 비법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은 아마 대개의 부모들이 경험해 본 일일 것이다.

우리 큰 아이에게도 뿌뿌가 있다. 돌 때부터 끼고 있는 테디베어를 지금도(8살) 잠이 들때면 간간히 찾는다. 이미 털도 다 빠지고 볼품없어진 인형이지만 다른 어떤 예쁜 인형도 그것을 대신하진 못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큰 아이의 뿌뿌를 한 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다소 불결해지면 '아롱이도 목욕해야지'하고 말해주면 잠시 동안의 이별을 참아내곤 했다. 비록 세탁기 속에서 돌아가는 아롱이를 안타깝게 바라보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뿌뿌를 심층 심리학에선 중간대상이라 칭한다고 한다. 이런 중간대상은 아이의 정신 건강에 큰 공헌을 한다고 한다. 아기일 때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거나 다른 불안이 엄습할 때 그런 불안을 잠재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간대상이라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주 소중한 정신 세계의 창조적 산물이라는데 다소 더럽고 냄새나더라도 인정해주어야 하는 존재라는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뿌뿌는 점점 아이에게서 잊혀져 문화의 공간으로 확산된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아이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같다.

이 책에서는 어쨌든 뿌뿌를 손수건으로 만들어 부모와 아이의 타협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시도는 현실에선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까닥 잘못하면 아이가 심하게 거부할 수도 있을테니까 우리 아이는 이 책을 읽고 잠시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아롱이를 포기할 생각은 결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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