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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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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뭘 하는 사람인가요?” 누군가 이렇게 물었을 때, ‘물리학자는 이 우주의 물질이 형성되고 운동하는 법칙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이야’라고 대답하지 않고, ‘신경세포 하나에서부터 도시 문명에 이르기까지, 작은 원자 하나에서 거대한 우주까지, 세상에 대한 애정으로 호기심의 촉수를 평생 뻗고 있는 못 말리는 탐험가들이야’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이 책이 바로 증거다.(373p)

🔬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 발자국>은 재독까지 했지만, <과학콘서트>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1인. 그나마, 과학분야 중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는 ‘뇌과학’인데, 열두 발자국 같은 경우, 뇌과학이 주는 지혜와 통찰을 이야기했던 부분이 많았기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었던 책이었다. 음. 그런데, 이번엔 ‘과. 학’콘서트 라니! 목차를 보니, ‘물리학’이 곳곳에 눈에 보인다. 워낙, 물리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나였어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은 오히려 배로 커졌다. 열두 발자국도 과학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울림 있게 이야기해주셔서 무척 인상 깊게 읽었었는데, 과학콘서트도 역시!👏🏻

🔬 우리의 사회, 음악, 예술, 경제 등 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가 이렇게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다니.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 현상들이 이렇게 연관되어있구나.‘ 또 ‘과학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생활과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근사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읽는 내내, 과학을 사랑하시는 교수님의 마음이 느껴졌음은 물론, 그 사랑이 넘치고 흘러 ‘세상’에 대한 애정까지 곳곳에 묻어 나온다. (🗣이런 애정이 있으니 성찰도 하고, 비판도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저 잘난 척 풀어놓는 지식들이 아니며, 어떤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도 아닌! 복잡한 세상을 다양하게 이해하기 위해 원리와 법칙을 드러나게 해주는 과학의 본질에 충실한 지식들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책 또한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새로운 눈👀’인 셈이다.

🔖다윈이 100만 년 후에 인간이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학문은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천문학자들이 별의 생성을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연구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무언가 예측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를 드러나게 해주는 ‘설명’에 있다. (188~189p)

🔬 워낙, 과알못이라 모든 챕터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는데,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프렉털 패턴(세부구조들이 끊임없이 전체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는 형상)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문화, 음악, 지프의 법칙, 파레토 법칙까지 이야기해주셨던 부분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프랙털 구조를 의식해왔고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발전시켜 왔다는 것. 이 사실은 “흑인은 백인에 비해 수학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서양의 오랜 통념이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선입견일 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 그리고 음악 감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_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곡일수록 1/f 음악(음정의 변화폭이 클수록 한 곡에서 나오는 횟수는 점점 비례적으로 줄어드는 음악)에 일치한다는 점, 지프의 법칙과 파레토 법칙을 통해 불균형이 반복되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어떻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경제적으로 평등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해주셨던 부분. 이렇게 과학 지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며, 사회적 문제까지 짚어주시니 재미있을 수밖에.🤭

🔬 그리고 꽤 흥미롭게 읽었던 챕터도 있었다. <복잡계 경제학 _ 물리학자들, 기존의 경제학을 뒤엎다>, <금융공학 _ 주식시장에 뛰어든 나사의 로켓 물리학자들> 챕터. 아마, 경제학과 물리학의 조합에서 신선함을 느꼈던 것 같다. 주류 경제학과 복잡계 경제학의 대립 및 서로 주장(비판)하는 목소리, 그리고 주가 변동이 완전한 노이즈인지, 아니면 유한개의 변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규칙적인 프랙털 신호인지 알아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물리학자들이 증권가로 가는 이유 등 물리학이 경제학과 만나게 되면 이런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꽤 흥미로웠다.

🔖물리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이른바 데카르트적 환원주의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환원 주의자들에게 전체란 단순히 구성단위들의 합에 불과하다. (..) 그러나 현실에서 경제 주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행동한다. (186p)

🔖복잡계 경제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제 현상의 패턴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복잡계 경제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격변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경제학’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188p)

✨ 개인적인 느낌으로는_ <열두 발자국>은 교수님이 과학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주셨던 통찰이, 이 시대를 살아갈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던 책이라면, <과학콘서트>는 (과학 지식을 대중의 언어, 세상의 언어로 이야기해주신 것은 물론) ‘과학’의 쓸모를 넘어서 ‘학문’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 쓸모의 역할이 다 달라서 그렇지, 어떤 것이든 각자 나름의 ‘쓸모’는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쓸모가 꼭 당장 눈앞의 이익(돈, 명예 등)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세상을 다양하고 깊게 알기 위해서 쓰일 수 있는 그런 ‘쓸모’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보았을 때, 과학 또한 무척 소중하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점, 그리고 과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우리의 일상, 그리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은 모순적이고 복잡하기에, 오히려 다양한 학문이 필요하고, 다양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생각이 필요하니까. 어떤 학문이건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과정’ 중에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 세상은 복잡하지만, 그 속의 어떤 현상을 설명할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은 필요하다. 복잡하다해서 그냥 복잡하다로만 끝낼 수는 없으니까. 어떤 정확하고 명쾌한 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이 (복잡한) 세상을 다양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책 또한, 과학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한 과학자의 ‘이해’로 쓰인 책이다. 이러한 ‘이해’들이 모이고 모여, 조금은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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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
나탈리 크납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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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우리는 유난히,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코로나는 장기전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른 우리 삶은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 깊숙이 곪아있던 사회문제들까지 연속으로 터져 나오니... 맑은 정신으로 살기 힘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기다가 개인적으로는 급작스런, 건강상의 좋지 못한 일을 겪어서 아찔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고.

🌪이런 시기를 '과도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진통을 겪고는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시기에 예감하지 못했던 (집단적 혹은 개인적) 힘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기는 우리 인생의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연대와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시간들이 결코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잠재되어있던 '창조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창조적) 잠재력은 있다고 믿는데, 이 힘이 터지려면 먼저, 북돋아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가 나에게는 이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창조적인 과도기를 보내기 위해 어떤 조건과 전제가 필요한지는 '자연'을 보면 잘 알 수 있다(9p)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에 감탄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창조적인 과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책의 초반부에서는 1. 공간적, 계절적 변화에 대처하는 자연의 능력, 2. 개별 생물과 전체 생물권의 변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를 보여준다.

🔖벚꽃은 맛난 버찌가 되기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것이 합당하기에 피어난다. (...) 벚나무는 그의 생물학적 소질로써 자연의 다양한 관계망에, 그리고 주변의 모든 자극에 답하고 있다. 벚꽃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내준다. 이런 만남에서 미래가 탄생한다. (30p)

✨꽃이 흐드러진 나무는 생명의 ‘희망'을 품는다는 것. 현재의 희망을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펼쳐나간다. 그리고 나무가 자라게 도와주는 흙, 물, 벌레 등의 네트워크 도움을 받아, 모두가 함께 이루어가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희망’이, 이 ‘연대’가 미래를 만들어나간다. 이미, '자연'은 그렇게 순환하고 있다.

🌪다만, 이 자연의 순환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있음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가공하고 부수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이 네트워크는 지금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냥 우리 인간의 말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빨리빨리, 많이 많이, 높이 높이를 위해 '시간이 없다'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다.

🔖네트워크는 그것이 개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되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통해 유지될 때에만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평민들'이라 부르며, 공공재화에서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을 최소한으로 착취하는 가운데 공공재화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재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활동은 사회적 변화의 밑거름이 된다. (..) 그러나 이를 거스르는 흐름은 정말 거세다.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돈과 에너지를 더 신속히 자기들을 위해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때로는 사회적 나눔의 탈을 쓰고 공동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말이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유 경제'라는 것이다. (338p)

🌪자본주의 사회가 비추는 성장, 소유 등의 가치에만 우리의 삶을 한정시키지 말자고. 오히려 현재, 우리의 삶에서 등한시되는 부분들을 중심에 올려놓아보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들을 찾아야 한다고.

🔖세상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동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살아 있는 이유에 대한 답이며, 살아있다는 사실이 동반하는 책임이다.(342p)

✨점점 세상이 불안정해질수록 '나'와 '우리'와 '자연'을 느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고유 감각이거늘. 그저, “빨리빨리 처리하자 모드”에서 벗어나 심호흡을 하고, 차단된 우리 감각을 다시 활성화시키자고. 우리의 감각이 더 이상 뭉툭해지지 않도록..

🔖우리 삶의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는 다르다. 우리가 경험한, 그리하여 우리에게 본질적인 시간은 신체의 리듬, 느낌의 강도, 외부 세계의 리듬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이런 요소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 삶의 시간을 결정한다. (305p)

✨이 책은 불확실과 불안함 앞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신뢰, 희망, 수용, 사랑,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앞의 단어들이 결이 비슷하면서도 광범위한 느낌이 들 텐데, 책의 전반적인 내용도 광범위하고, 폭넓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책의 부제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이라는 말이 딱 맞다는 생각! (🗣저자의 탐색 능력과 해박한 식견에 혀를 내둘렀다는,,🤭😝)

🌟그렇다고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데 급급한 책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이야기이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과거도, 현재도, 미래도_ 우리는 불확실한 날들을 건너왔고, 지내고 있는 중이며, 보낼 것이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기는 어느때나 있었고, 그럴때일수록 그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생각해봐야겠다. ‘강요'라는 (구시대적-폐쇄적) 공동체 의식이 아닌, '연결'이라는 (본질적인)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위기'라 불리는 이 시기에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되찾을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ps: 모든 챕터에서의 지적 여정이 참으로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의 후반부의 메시지가 제일 인상 깊었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작가님의 메시지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통해, 나름 복잡했었던 여러 고민들이 단순해졌다. 특히, <미래를 현재로 가져올 것>이라는 소제목의 글! 진정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를 상상하고, 그러고 나서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곧장 실천하기! 그러니까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고민들이 생기겠지만, 방향에 대한 것만큼은 이제 좀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미래에 빗대어 현재를 꾸려갈 때 중요한 것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를 덜 먹는 냉장고와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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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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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해 실천해야할 '예의'에 대하여. _ 자신의 영혼도 지키고 서로의 영혼을 지켜줄 수 있는, 우리는 '사람' 이니까.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이라는 존재. 세상은 우리를 계속 시험에 들게 한다. 때로는 이 시험받는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왜 나는 이런 폐쇄적인 조직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건지, 왜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건지, 왜 나는 이런 부당한 상황에도 찍소리 못하고 네네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등등..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구조적-폐쇄적인 문제가 조직과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 상황을 디폴트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 디폴트가 유지되다 보면 그야말로 이상한 정상 ‘사회’와 ‘조직’ 그리고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 어느덧 무감각해진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그냥, 뻔한 의견과 생각을 뻔한 이야기로 풀어놓지 않는다. 우리가 알만한 대중 콘텐츠(영화 기생충, 곡성, 라라랜드 등)를 통해 자신만의 시선과 사유를 보여준다. 저자의 통찰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의 연속이었지만, 다양한 형식의 글을 보여주셔서 다른 저자가 쓴 책을 동시에 읽는 듯 한 느낌도 들었다. 콘텐츠에 빗대어 적은 글 외에도 언론인으로서 일을 하며 흘렀던 땀과 눈물, 그리고 순간순간 흔들렸던 마음들도 녹아져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 그의 글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조직’과 ‘사회’로 뻗어나가는데,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인생 공부’ 제대로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들 사이에서 느꼈던 생각들과 느낌들. 멈춰있는 생각들이 아니라 변화된 생각들이었기에 더 울림의 진폭이 컸던 것 같다. 그도 역시 ‘사람’이구나. 부끄러움을 알고 흔들릴 줄도 알지만, 자신의 영혼까지는 결코 팔지 않는, 아니.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엄’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 그의 그런 노력들이 ‘악’으로 점철되어가는 사회를 향해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을 터. 비록, 이 힘은 꾸준히 의식하고 단련해주지 않으면 물러지기 일쑤이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눈물을 머금었던 글 몇 편이 있는데,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글은 책 초반부에 영화 <곡성>을 이용하여 가습기 살균제, 성폭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한 글이었다. 어떻게 그 영화와 사회의 문제를 (이렇게) 연결시켜 메시지를 전달하시는지 감탄하며 읽다가.. 글의 말미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와버렸다. <곡성>에 나왔던 대사를 인용하여 인간의 (악에 패배할 수 있는) 나약함과 (영혼까지 내주진 않는) 강인함의 사이 속,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의 힘을 이야기해주셨던 그 문장들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래 사진 참고)




🔖”그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 ‘미끼를 물어버린 자의 책임’ 논리는 이 땅의 모든 사건,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30~31p)

우리는 한계를 가진, 각자 심연에는 정확히 뭔지 모를 어두움도 가진 존재이지만, 결코 나의 ‘영혼’은 내어주질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의 영혼도 지키고 서로의 영혼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로 이 책에서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꼽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에 대한 예의. 이 ‘예의’라는 단어를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그냥, 일상 속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예의’ 말고, 우리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해 직접 실천해야 할 ‘예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일상 속에서 타인을 향해 ‘정말 싸가지 없다.’라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에 있건, 어떤 계급에 있건 사람이 사람에 대해 진정한 ‘예의’를 행할 수 있는 조직과 사회가 갖추어졌을 때, 진정한 ‘싸가지’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조직과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의 ‘싸가지’가 모이고 모여 그런 사회를 이룰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점점 교차적이고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일어나는 오늘날. 건강한 담론을 위해서는 이렇게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이들의 말과 글이 필요하다. 이 책을 여남노소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기본으로 장착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위해. 아, 그보다 조국에 대한 예의, 조직에 대한 예의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것을. ‘사람’을 무시하고서는 조직도 조국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잊고 지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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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허유정 지음 / 뜻밖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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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초반부에는 작가님이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실천으로 이어지까지의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자취생활을 하며 배달음식을 애용하며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그.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는 (놀랍게도) 자신을 위해서였다. 매일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자극적인 음식으로 인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나 좋자고 시작한 것이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그 주위의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없다고 한다.

위 메시지에 이어서 환경오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때가 아님을 환기시켜주는 (정보를 포함한) 글들도 적혀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로웨이스트 팁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관심이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안내서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유엔의 요청으로 시작된 <1.5도 특별 보고서>가 최종 승인됐다. 보고서의 제목은 왜 '1.5도 보고서'일까? 그건 바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구의 온도는 1도 올랐고, 우리에게는 남은 건 단 0.5도뿐이다. (56p) ]

[ 중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이상 고온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심각한 식량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는 벌써 자신들에게 유입될 아시아 기후 난민을 어떻게 막을지 보고서를 쓰며 계획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OECD 국가 최하위 25%에 불과한 우리나라도 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57p) ]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위해 팔로우하면 좋을 sns리스트와 더불어 작가님이 애용하는 텀블러, 나무칫솔, 천연수세미, 설거지 비누, 천연 세제, 밀랍 랩, 샴푸바 등등 실용적인 용품과 그 용품을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도 함께 실려 있어 나처럼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포켓형 장바구니 사용에 머물러있는 사람에게도 무척 도움되는 내용이 많았다.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르쉐 채소시장에 관한 글이었다. 마르쉐 채소시장은 외국 파머스 마켓처럼 농부가 직접 시장에 나와 소비자를 만나는 장터라고 한다. 오일장처럼 정해진 요일마다 장이 서는 형식인데, 포장재 없이 여러 채소를 살 수 있다. 마르쉐 채소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채소 점심' 도 있다! 이런 일련의 지속 가능한 공존의 삶을 꿈꾸게 하는 콘텐츠를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생기를 되찾게 된다. 나만의, 그리고 우리의 꿈을 꾸어보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텀블러를 휴대하는 건 감수성 측면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기후전문가들은 지구 에너지 중 일회용품 소비가 차지하는 건 일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지금, 그리고 미래의 우리가 이 터전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구를 아프게 하지 않을 '법'이 필요하다. 이 법이 있어야 '산업'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 거대한 산업의 흐름에 벗어날 수 없는 나 같은 ‘개인'은 '기업'과 '법'을 바꿀 수 없으니, 텀블러 사용과 같은 소소한 실천이라도 하며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뿐이다.

최근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방에서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꺼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우리 부모님 세대로 보이시는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저렇게 까지 노력을 하는구먼. 아 요새 저런 빨대가 있는가 보네.” 여기서 이 에피소드를 언급한 이유는 소소한 실천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런 실천에 대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나아지겠냐”라는 타인의 말, 그리고 내면의 말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거랄까. 적어도 나의 실천을 통해 (상대적으로) 몰랐던 환경문제에 대한 실천방법을 타인이 알게 된다는 것 또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개개인의 실천이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감수성 측면의 역할이 크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실천이 모이고 모여 연결이 되다 보면, '법'까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나도 추를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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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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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게 지내느라 지친 사람들, 또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이상하고 자유로운, 그냥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어른이 되어 읽기 시작한 그림책. 그 속에서 작가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섬세하고도 다정한 손길

그림책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엮어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꽤 튼튼하고도 자유로운, 그리고 조금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로 조금씩, 천천히 이끌어주는데 나는 그 세계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작가님은 ‘이. 상. 하. 고 자유로운’이라고 표현하셨지만, 그의 섬세하고도 다정한 손길 덕분인지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멋져보이던지. 작가님이 선사해주신 여러 갈래의 손길에 나는 미친 듯이 행복했고, 위로받았고, 용기를 얻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때 받았던 ‘영감’과 ‘감정’은 휘발되어 다시, 관성대로 살아가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손길’이 그리워질 것 같다. 아니 그리움보다는 갈급한 마음으로 이 책을 찾을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을 꺼내어 작가님이 건네는 그 손을 다시 잡고 싶다.

세상의 중심에서 살기보다는 가장자리에서 살아갔던 게 익숙한, 그리고 그런 모습을 이해받고 싶기보다는 오히려 오해받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그 순간들을 사랑하며 지내고 싶은, 어느 한 사람이 그림책에 기대어 다양한 시선을 품은 이야기를 천 삼아 펼쳐낸다. 그리고 그 천을 작가님 특유의 솜씨로 바느질 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손수건을 만들어주신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그 정성스러운 손수건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

- 우리는 다양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정상’이라는 울타리, 우리는 이 울타리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오자, 루저, 패배자’ 또는 ‘배신자, 이기주의자’로 찍힌다. 이 안에는 우리가 톱니바퀴처럼, 관성대로만 살아가게 만드는 수많은 제도와 관습들이 속해있다. 특히, ‘결혼’ 은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아주 뿌리 깊은 제도인 것을..!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을 자신의 정상성을 증명할 수 없으면, 뭇사람의 이상하면서도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요즘엔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는 ’ 이상함‘이 묻어 나온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하며 말이다. 이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메시지’들이 차고 넘치는 것도 문제다. 오히려 이 울타리에 들어가는 게 아닌, 벗어나 보는 모임을 만드는 건 어떨까. 나는 결혼을 했지만, 결혼이라는 울타리 속에도 수많은 울타리들이 존재한다. 그 울타리들을 벗어나 보는 노력과 함께, 사회의 규정, 관습, 타인의 시선에 얽메이지 말고, 나의 판단과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키우고 싶다.

우리는 아직도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금을 매우 쉽게 긋는다. 금을 긋지 말고 다양함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일이다. 그리고 제발, 나라에서 중요하고 큰일 하시는 분들이 이 흐름에 맞춰 제도를 수정, 보완해주셨으면 좋겠다. (일 좀 하셔라...)

- 인생의 의미를 과거에서 찾지 마세요. 단정 짓지도 마세요.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야기였다.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단정하지 않은 이야기들 말이다. (42p)

[단정짓다 : 딱 잘라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동사의 의미를 곱씹어보곤 했다. ‘단정짓다’ 는 말이 왜 이렇게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걸까. 단정 짓는 태도를 가깝게 하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흔히, 저지르는 행동이라 그런 걸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단정 짓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읽을 때 최근 남동생에게, 그리고 나보다 6살 어린 직장동료에게 조언이랍시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순간, 너무 부끄러워졌다. 누구를 좋아해서, 사랑해서, 아껴서 ‘조언’ 한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좁은 시선만 제공해주진 않았는지, 그리고 너무 단정 짓는 말만 한 건 아니었는지. 아직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들인데, 너무 과거의 이야기에서만 의존하여 얘기하진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이 책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것(ex:그림책)을 정말로 사랑하고, 타자(ex:지금을,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모든 존재들)를 아끼는 사람의 글은 이렇구나.’라는 것을. 나 또한, 어떠한 것을 계속 사랑하고, 타자를 계속 아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넓고 다양한 시선을 제공해줄 수 있는 선배이자 어른,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모두 다 다르고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어울려 잘 사는 것. 그러려면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62p)

🔖이상한 것들은 자주 오해받고 소외된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이상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 그럴 때의 이상(異常)은 이상(理想)을 조금 닮았다. 두 ‘이상’ 사이의 교집합 속에는 선한 이들이 각자의 본성대로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자유가 있다. 노력의 방향이, 모두가 정상에 속하게 만들기보다는 누구도 어디에도 속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쪽으로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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