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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읽기 - 예수 시대 기독교 전승은 어떻게 형성되고 보존되었는가
브라이언 라이트 지음, 박규태 옮김 / IVP / 2021년 2월
평점 :
브라이트는 『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읽기』를 통해 공동 읽기 현상이 2세기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학자들의 전제를 뒤틀어 1세기에 이미 공동 읽기 관습이 존재했고,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1세기에 공동 읽기 관습이 존재했고,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초기 기독교 전승의 형성과 보존에 관하여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브라이트가 인용하는 그리스-로마 저자의 글 중에서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기억할 만한 말과 행위』(Memorable Words and Deeds)를 통해서 만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할 만한 말과 행위』의 등장인물인 아이스키네스가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데모스테네스의 글을 읽어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브라이트는 데모스테네스가 그 자리에 없으므로 데모스테네스의 글에 빠진 부분을 제시할 수 없어서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고 해석한다(134쪽). 브라이트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이 부분에서 공동 읽기와 전승 통제의 관계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통제해 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공동 읽기자(reader)로 서는 것을 거절한다면, 사람들의 사고 속에 공동 읽기는 읽는 행위만 공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통제 역할을 함으로 함께 참여한다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장 <새 통제 전략 도입하기>에서 브라이트는 이 책을 통해 기원후 1세기에 공동 읽기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예수 전승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선포한다. 학자들 사이에서 1세기 사회에서 공동 읽기 현상은 존재했다는 사실과 어떤 방식으로든(리처드 보컴은 목격자에 의해, 제임스 던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을 통해, 사무엘 뷔쉬코그는 실연[performance]을 통해 등) 예수 전승이 통제되었다는 사실을 각각 설명했다. 그러나 그 둘을 연결하지는 않았다. 브라이트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1세기 공동 읽기 현상이 예수 전승 통제의 확실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말한다.
2장 <예수 시대 공동 읽기 사건 발견하기>에서 브라이트는 ‘공동’(communal)이라는 표현은 개별 읽기와 구별되는 사회적인 측면을 부각해 주는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공적(public) 읽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공동 읽기는 공적 읽기일 수도 있고, 사사로운 읽기일 수도 있으나, 중요한 점은 둘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읽는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주제의 글을 망라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글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글을 읽는 방식에 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의 저작 목적이나 공동 읽기를 한 공동체의 성격, 사회적 위치, 또는 신약성경의 정경성, 본문 비평, 자료 비평 등의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오직 1세기 사회에 공동 읽기 현상이 보편적으로 있었고, 보편적이었던 공동 읽기 현상이 예수 전승을 통제했다는 것을 밝히는 일에만 초점을 맞춘다.
3장 <경제 요인과 정치 요인>에서 브라이트는 1세기 경제 요인, 정치 요인으로 인해 공동 읽기 현상이 나타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브라이트는 기원후 수 세기 동안 지중해 지역의 경제가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근래의 타 분야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여 1세기 사회가 경제 발전이 이뤄져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경제 발전으로 인해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공동 읽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고, 나아가 공동 읽기 현상을 널리 퍼뜨렸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요인이 반드시 공동 읽기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 읽기 현상의 확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튼튼한 사회였다고 말한다. 브라이트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3세기까지 로마의 평화 시대라고 불리며, 실제로 극장, 전차 경기장, 원형 극장 등 대형 건축물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안정된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안정이 공동 읽기 현상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안정된 사회이기 때문에 공동 읽기 현상이 방해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안정된 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여행하기에 어렵지 않은 시대였다. 따라서 어떤 글이 다른 지역에 전해지기도 쉬운 환경이었을 것이며, 다른 지역에 글이 전해질 때 공동 읽기 현상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4장 <사회 정황>에서 브라이트는 5장과 6장에서 본격적으로 1세기 공동 읽기에 관한 증거를 제시하기에 앞서 공동 읽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났던 보통의 사건임을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인용하여 제시한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통해 공동 읽기가 일어난 무대 역시도 시골 장터, 공회당, 극장, 가난한 사람의 집,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집,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공터 등 다양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 읽기에 참여하는 사회였다. 따라서 공동 읽기의 청중 중에는 공동 읽기에 참여하여 직접 읽는 사람보다 그 내용에 관하여 더 잘 앍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청중이 공동 읽기를 통해 전승이 변형되는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공동 읽기가 만연한데 회당 중심의 문화를 가진 유대교에서 공동 읽기는 당연히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브라이트는 “이 시기에는 사실상 모든 문헌이 공동으로 읽을 목적으로 저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5장 <1세기의 공동 읽기 사건: 선별된 저자와 텍스트>에서 브라이트는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공동 읽기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황을 발견할 수 있는 신약성경 외 문헌(그리스-로마 저작, 유대 저작)을 추적한다. 먼저 에픽테토스, 스트라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카리톤, 오비디우스, 마르티알리스, 페르시우스, 디온 크리소스토모스, 스타티우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퀸틸리아누스, 대 세네카, 켈수스, 페트로니우스, 소 세네카,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의 그리스-로마의 여러 저자의 글을 발췌하여 공동 읽기 사건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어 마카베오4서, 필론, 위 필론, 요세푸스, 에스라4서와 같은 유대 저작에서도 공동 읽기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브라이트는 지금까지 공동 읽기 현상이 폭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이뤄졌으며,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음을 논증했다. 그리고 6장 <1세기의 공동 읽기 사건: 신약성경>에서는 신약성경 저자들의 기록을 토대로 공동 읽기 현상에 대해 추적한다. 브라이트는 먼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동 읽기 현장을 정리한다. 특별히 누가복음에서 공동 읽기 사건을 찾아볼 수 있기에 다른 복음서와 구분하여 별도로 정리한다. 이어 브라이트는 나머지 신약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예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6장에서 브라이트는 누가복음 5장을 언급하며 “5장을 보면, 우리가 살펴볼 또 다른 공동 읽기 사건이 있지만, 이번에는 회당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227쪽)라고 정리하며, 누가복음 5장 1~11절의 예수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부르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누가복음 5장 1~11절을 공동 읽기가 실행됐을 법한 사건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했다는 문구 때문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책에 기록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 적이 있다(행 6:2, 18:11). 그러나 누가는 책에 기록된 것을 가리키지 않는 경우에도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눅 8:11, 8:21, 11:28; 행 4:31, 6:7, 8:14, 11:1, 12:24) 물론 책에 기록된 것을 가리키는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행 13:44, 13:46, 17:13). 브라이트도 “예수가 유대교 경전에 들어 있는 두루마리를 휴대하고 다녔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그냥 글로 기록된 텍스트를 기억에서 불러내 들려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축약된 메모 형태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228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이 에피소드를 공동 읽기 사건으로 여길 만한 근거가 없는 것 같다.”(228쪽)라고 결론을 내린다. 공동읽기 사건이라는 것인가, 아니란 것인가? 개정판이 나온다면 논지를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문구만으로 공동 읽기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초기 기독교 전승의 형성과 보존이 공동 읽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확실히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