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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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탓에 얼마되지 않는 유물·유적으로 700여년 역사를 가늠할 수 밖에 없는 나라. 화려했던 전성기보다 황산벌 전투, 의자왕과 삼천궁녀 등 멸망기로 대중에게 기억되는 나라.
우리는 백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역사를 공부하는 행위는 과거 조상들이 남긴 유물, 사료를 분석하고 그간의 관련성을 유추·상상하는 능동성을 요한다. 누군가 이미 연구한 결과라 하더라도 사실이 아닐 수 있고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참 재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 속 연대기를 외우고 TV드라마를 시청하며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마주할 뿐이다. 문화재 발굴사와 미디어에서 조명받지 못한 고대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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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출간된 「내가 사랑한 백제」는 이처럼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백제사에 대해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이 20여년간 백제의 유물과 유적을 연구해온 과정을 담담히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기존 사료 중심의 연구방식, 파편으로만 존재하는 백제의 유물·유적, 채 20년이 되지 않은 발굴·복원·연구 역사 등의 한계를 딛고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구체적인 유물과 유적을 찾아 해매며 그것을 통해 밝혀낸 백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학예연구사로 일을 시작(1998), '백제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백제의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백제 유물·유적 발굴이 현재진행형이었고 그마저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 뿔뿔이 흩어져있었기 때문에(*상당부분은 일본의 박물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백제사 연구의 초석조차 잡기 어려웠던 것. 

 


결국 저자는 선행연구가 적고 발굴조사의 전문성이 부족했던 사비기(부여)에 관심을 갖고 백제의 도성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를 분석, 도성의 건립과정과 조영과정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저자의 연구는 정림사지 목탑 내부의 조소상, 능산리 목간 연구로 이어졌는데 학계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소재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백제사 연구의 깊이를 더해갔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인지라 저자의 연구전개과정을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유물을 실마리 삼아 고고학, 미술사, 건축사를 넘나들며 자료를 수집,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는 탐구방식만큼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수막새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신라의 불교 수용과정에서 간과해왔던 백제의 영향력을 증명한 부분, 정림사지 소조상을 통해 정림사지 석탑의 건립시기를 추론하고 목탑이 있었다는 것을 논증해나가는 부분을 읽을 때엔  '유물이 역사가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과정에서 다른 견해를 지닌 역사학자들과의 토론 역시 신선했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아직도 박물관 수장고 곳곳에 보관되어 있는 미 연구 유물들이 많고 그 관리 역시 허술하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의 활약으로 소장품에 대한 철저한 정리와 분석, 전국 방방곡곡에 위치한 박물관간의 상호교류, 그렇게 얻은 지식을 일반인과 공유하는 전시와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더라.

 


이 책의 마지막은 '이제 백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5장 '일본이 탐했던 백제사 연구'와 6장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 백제'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5장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우리나라의 문화재 연구가 얼마나 왜곡되고 졸속으로 진행되었는지 백제를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만큼  백제가 '왜곡해서라도 일본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을만큼 뛰어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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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백제의 유물·유적 발굴과정을 박물관 큐레이터이자 역사 연구자의 시선으로 친절하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백제에 대한 나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개인적으론 사료·문자기록 중심의 역사연구보다 직접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며 전시해설을 듣는 듯한 그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로웠고 평소 잘 알지 못했던 박물관의 뒷 이야기, 큐레이터의 일과 생활 등에 대해서 알고나니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백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
역사학자의 삶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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