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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나노로봇공학자, 우리와 우리 몸속의 우주를 연결하다
김민준.정이숙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 과학고전과 교양서를 적지 않게 읽어온 나에게도 생소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나노공학', '나노로봇'의 세계다. 매체에서 4차 산업혁명이나 미래산업에 대해서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분야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을 만났으니 바로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다.
김민준 교수는 현재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기계공학과, 전기·컴퓨터 공학과, 화학과에서 석좌교수로 마이크로·나노로봇 연구 분야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책의 제목은 초소형 잠수함이 사람이 몸속을 탐험하는 공상과학영화 <이너스페이스(1987)>에서 차용해온 듯 한데 그 역시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작은 로봇이 현실에 존재할까? 어떻게 만들까? 어떤 모양일까? 어떻게 움직일까?"에 대한 답을 찾고 공학적 상상을 펼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책에선 마이크로·나노로봇 연구의 학문적 계보와 김민준 교수의 연구 발자취를 차례차례 소개하고 있어 나노로봇의 과학적 원리와 기술적 배경, 발전 과정 등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나노로봇은 수십~수백 나노미터(nm) 크기의 극초소형 로봇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로봇과 달리 △ 혈액과 같은 인간의 체액 안에서 (헤엄쳐) 움직이고 △ 무기물과 생체 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자기장, 화학반응, 빛, 열 등 외부에너지를 이용하여 동력·추진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위와 같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김민준 교수는 박테리아의 외형과 구조를 모방한 나노로봇을 개발했다. 박테리아의 편모는 물 속 수소이온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비반복적으로 회전, 유체의 점성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그재그 형태로 헤엄치는데, 여기에서 김민준 교수는 나노로봇의 구동장치(엑츄에이터)로 박테리아를 이용하되 박테리아의 불규칙한 회전운동을 전기장(방향제어)이나 빛(출발과 정지) 같은 외부 자극을 통해 제어한다는 발상을 떠올린 것. 그렇게 개발한 '박테리아 동력 마이크로 로봇'에 △ 유전공학을 적용, 환경감지를 가능케하고 △ 외부 자기장을 실시간으로 3차원 조작할 수 있는 자동 제어 시스템을 제작하여 세포조작기술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박테리아를 이용한 마이크로 로봇에도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박테리아가 생산하는 파워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공학적으로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미생물 세포가 엑츄에이터로 필요했고 김민준 교수팀이 새로 찾아낸 것이 '테트라하이메나 피리포르미스'(원형생물 세포)였다고 한다. 테트라하이메나의 운동역학을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분석하여 운동 제어 알고리즘을 만들고, 유체 안에서 전기장·자외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우연히 테트라하이메나의 '자기화'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 사이보그(세포 기반 로봇)'을 개발하게 된다.
김민준 교수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인체에 무해하고 생물학적으로 적합하며 생화학적으로 쉽게 분해되는 물질을 이용한 나노로봇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공학적 설계 - 자성입자를 활용한 트랜스포머 나노로봇-를 고안했고 더 많은 환경지표분석이 가능한 나노로봇 개발을 위해 바이오 소재를 합성하여 로봇에 부착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김민준 교수팀의 끊임없는 나노로봇 개발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을 관찰, 모방, 해석하여 연구를 창의적으로 설계해나가는 것, 우연한 발견을 과학 지식과 연결지어 새로운 문제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방법 등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특히, 나노로봇 연구를 하기 위해선 다학제간의 협력과 융합적 지식이 필요한데, 그것을 가능케하는 미국대학들의 연구환경이 부럽기도 했고 인공지능, 3D 바이오프린팅 등 최신 과학기술과 나노공학이 어떻게 융합되는지도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나노공학', '나노로봇'에 대한 지식 차원에서만 읽기엔 아쉽다. 이 책의 첫 장에서 김민준 교수는 "자신이 30cm자가 없으면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난독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읽기'가 수월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 하루다 다르게 업데이트되는 논문, 뉴스, 책 등을 읽고 동료 학자, 연구실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큰 불편함을 딛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기까지~ 그의 삶 자체가 존경스럽더라.
또한 책을 읽다보면 그에게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실험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 느껴지더라. 나를 둘러싼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과학자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책을 읽는 내내 김민준 교수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민준 교수는 5장에서 나노로봇공학자로서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생각들을 짧게 요약하듯 써두었는데, 이는 4차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싶더라. 실패를 통해 피어난 창의적인 생각들, 자연현상을 읽고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서의 수학과 과학, 동료학자,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한 발전, 경쟁과 협업을 보장하는 국가적 연구환경, 동물과 환경을 고려한 임상실험의 미래 등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노로봇의 세계에 푹 빠져 읽기 시작했지만 나중엔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와 삶에 감명받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던 책,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나노공학, 나노로봇에 관심있는 청소년들, 과학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