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의 철학 - 대전환의 시대를 구축할 사상적 토대 코로나 팬데믹 시리즈 2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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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뒤바꿔놓은지 7개월째.

코로나19는 인류가 극복해야할 질병을 넘어 전세계적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가속화하는 트리거가 되어 우리 삶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이슈들을 진단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김재인 교수의 「뉴노멀의 철학」이다.


김재인 교수는 책의 서두에서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를 '코로나 혁명'으로 명명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급진적인 변화는 서양 근대 체제의 변화와 함께할 것"이라 예측한다. 근대 이후 등장한 개인이라는 개념, 개인들의 연대로서의 사회와 국가, 자유·평등·박애·소유 등의 가치와 권리가 이제 새로운 사상들로 대체될 거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여기며 성공적인 국가모델로 삼아왔던 서유럽과 미국 등이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예견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떠한 사상적 토대들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것인가?


1장~3장에서 저자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정치적 개념을 빌어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상상한다. 서양근대의 전통에서 '정부'란 일차적으로 전제군주정을 가리켰고, 정부에서 독립해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유란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 즉 영토(국가) 안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국가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그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체제에서 무시해온) 국가간의 경계를 다시 강화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연대와 차별, 공포와 혐오, 안전과 인권 등의 가치들이 서로 상충되며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고 이 갈등을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개인들은 (개인적 자유만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구체적 자유를 발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모색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저자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영토 개념 및 노모스 개념을 빌어 앞으로의 정부는 자연적 인위로서의 국가, 초월적 강제성을 배제한 정부, 즉 탈 근대적인 개념인 '거버넌스'로 거듭날 것이라 보았다.


저자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형태에 대해서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하는 '민족'의 개념을 빌어오기도 했다. 앤더슨의 '민족' 개념은 '운명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의 수평적인 동지애 위에 세워진, 주권을 가진 정치 공동체를 향한 상상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말하는데 이 역시 탈식민주의·탈근대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민족은 번역어로서 발명된 것으로 식민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했던 독특한 한국어 개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수구적 패권주의나 팽창주의로 향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만큼 민주적 거버넌스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성숙하게 지켜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홉스가 제안한 근대 계약론을 비판하며 흄의 윤리학-정치학을 옹호한다. '이성과 계산에 따른 계약은 허구이며 느낌의 동감(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에서 비롯된 묵계를 통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흄의 시각에 동조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겪고 있는 위기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지구적 공동체를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까지 서양 근대 국가를 지탱한 자유, 평등, 박애, 소유 등의 가치와 권리들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어 4장부터 6장까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학문과 교육의 새로운 체계에 대해 다룬다.

사실 코로나19는 세계화를 막 완성한 자본주의의 여러 증상 중 하나일 뿐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상황으로 감염병 대유행과 함께 인공지능, 기후위기 3가지를 꼽았는데 이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학문적 체계와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가장 먼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앎, 그 앎에 도달하기 위한 태도'라 말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구나 과학적 지식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 또한 특정한 해석에 치우치는 '관점주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비판적인 자세를 주문한다.


이어 서양 근대에 발명되어 20세기까지 유효했던 학문의 체계, 인문학·사회과학·수학·자연과학·공학·예술 등 전문성과 계열성을 중시하던 풍토는 사라지고 여러 학문들이 융합하는 '뉴리버럴 아츠 New Liberal Arts'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하나의 학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학문의 역할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솔루션을 구상해 나가야 한다.


또한 앞으로는 창조성이 중요한 역량이 될거라 주장했다. 창조성은 사회가 그것을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창조적 실험의 위험성을 이겨내는 개인적·사회적 용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곳곳에서 창작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변화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화규모 역시 커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다. 학습이 일상이 된다는 것.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 학교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엔 위와 같이 교육체계를 바꾸어 나가는데 있어 장애물들이 많다. 중등교육과정의 문이과 구분 교육, 전공 중심의 대학 교육 과정, 인문학 무용성 테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정의 시스템 등을 차례차례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로 닥친 경제위기, 그리고 정치사회적 변화가 휘몰아치는 중심에 서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의 빠르기와 규모를 고려할 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김재인 교수는 이러한 논의의 훌륭한 발제자로, 이 책 「뉴노멀의 철학」은 우리가 주목해야할 논의 주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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