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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해양과학자가 된 과정, 지난 25년간 지구 곳곳의 바다를 누리며 해온 탐사 여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해양 탐험의 역사, 바다와 극지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지구의 특징에 대해서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지질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해양연구소의 태평양 탐사에 참여하면서 해양과학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고 한다. 해양학은 해류와 조석을 연구하는 물리해양학, 바닷물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화학 해양학, 바다에 사는 생물을 연구하는 생물해양학, 그리고 해저 지질을 연구하는 지질해양학으로 구분되는데, 저자는 지질해양학자로서 극지연구소에서 아직 탐사되지 않은 (극지 근처) 중앙 해령을 중심으로 암석을 채취, 분석하여 지구 맨틀과 판구조론을 연구해왔다.
왜 중앙 해령이었을까? 중앙해령은 해저 지각이 벌어지면서 상승한 맨틀이 용융되어 만들어진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되는 곳이다. 분출된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파고든 해수를 가열하여) 열수를 형성하고 이 열수가 지표로 재분출되며 그 안에 포함된 광물질이 침전되어 해저 광맥을 만든다. 이 열수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가설이 지배적이다)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역사가 새겨져있는 매혹적인 곳인 셈이다.
사실 중앙해령은 전 지구적으로 분포하고 있지만 그 중의 1/3이 남극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남극 근처 중앙해령은 유럽과 북미에서 멀어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거친 바다 환경 때문에 탐사가 극도로 힘들어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이에 우리나라는 극지연구소에서 2010년 경 쇄빙 연구선 아라온 호와 남극 장보고 기지를 갖추면서 탐사 여건을 마련했고 저자도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남극 근처 중앙해령 연구를 시작했다.
10여년에 걸친 연구기간동안 남극 중앙 해령 최초의 열수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물, 빙하기- 간빙기 순환 증거, '질란디아-남극 맨틀' 발견까지 저자와 그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견한 성과만 해도 여럿.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생생한 탐사기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이 너무나 많았는데, 먼저 다양한 탐사방법과 그에 사용한 장비들이 눈길을 끌었다. 망간단괴 표층 퇴적물 채취에 사용한 박스코어, 망간각과 열수 광상 지역의 암석 채취에 사용한 드레지, 열수 탐사를 위해 필요한 매퍼(해수의 탁도와 온도를 측정하여 열수 분출구의 위치를 추적하는 장치), 중앙 해령에서 암석 시료를 채취하기 위한 록코어 등 책에 실린 장비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과학자들이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탐사하고 연구하는지 방법론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양탐사는 우리나라 연구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탐사에 필요한 장비 설계를 도와주고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전세계의 과학자들, 출항지에서 예상치 못하게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민 현지 교포들, 탐사일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힘쓰는 연구소 대원들, 변화무쌍한 날씨와 바다의 위험에서 안전한 항해를 돕는 선장과 항해사, 선원들의 도움까지~ 박숭현 박사와 그의 연구팀들의 성과는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테다.
이외에도 탐사 여정에서 써내려간 저자의 감성적인 후기들도 인상적이었다. 마드리드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생각하고 발파라이소에서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떠올리고 하외이에 갔을 땐 서든 록을 찾아듣는 저자의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여행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듯 했다. 특히, 그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발견한 열수 분출구의 이름을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따와 '무진 열수구 지대'로 명명했다니~ 김승옥 작가 팬인 나로서는 괜시리 감동스럽더라는^^
이 책에는 저자의 탐사기 뿐만 아니라 지구과학적 지식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어 유익했다.
저자는 탐사기 중간중간 해양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 - 대양의 순환, 판구조론,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구운동), 해저지형과 그 생성원리, 남극권의 특징, 해양탐사의 역사-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4장 '바다에서 지구를 읽다'에서는 바다가 지구 환경과 인류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역설하고 있는데, 평소 바다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 예를 들어 '바닷물은 왜 짠가',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위치를 알 수 있는가' , '남극과 북극은 어떻게 다른가' 등에 대한 해답도 얻을 수 있었다.
우린 지구에 살고 있지만 아직 지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아직 지구에는 잘 설명되지 않은 흥미로운 현상과 문제들도 많다. 저자의 생생한 해양탐사기를 읽으며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이를 밝히기 위한 해양탐사와 연구를 주도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자랑스럽더라. 과거 대항해 시대의 탐사가 정복을 위해서였다면 지금 남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탐사활동과 연구들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연대다. 이에 앞장서고 있는 박숭현 박사님과 연구팀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