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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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작은 마을 베어타운. 

숲과 호수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쇠락해가는 작은 도시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광에 수치심을 느끼고 애써 침묵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은 바로 아이스하키. 그들은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예전처럼 마을을 부유하게 재건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어느 해 3월, 드디어 베어타운의 청소년팀이 큰 대회의 준결승에 오른다. 승리의 주역은 코치 다비드와 주장 케빈. 하지만 케빈은 준결승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열다섯살 소녀 마야를 성폭행하게 되고 결승전날 아침 경찰에 체포된다. 마을의 재건, 아이들의 황금빛 미래를 보장해줄 '우승'을 바로 앞에서 놓쳤다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마야와 그 가족에게 분노하고 베어타운은 분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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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사실 이 책에는 초반부터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때문에 첫 100페이지까지는 쉬이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의 전체 분량은 560페이지;;)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이스하키'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베어타운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통해 '공동체'라는 허상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강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지 낱낱이 들추어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구단을 둘러싼 단장, 코치, 선수와 그 부모들에서부터 슈퍼마켓 주인, 술집 사장까지 베어타운 주민 전부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각자 하키과 관련된 내밀한 사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하키'가 일생을 바친 스포츠(수네)요,  돌아가고픈 영혼의 안식처(페테르)다. 어떤 이에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아맛)요, 과거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프락 외)이다. 또 다른 이에겐 권력과 부를 공고히하는 도구(안데르손가족 및 구단 관계자들)이자 현실의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케빈과 벤)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이들에게 하키를 바라고 아이들 역시 하키에 무언가를 바란다. 


문제는 '하키 우승'을 향한 집단적인, 맹목적인 질주가 낳은 베어타운의 문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폭력을 행사하는지이다. 어려서부터 하키 훈련을 반복해왔지만 정작 프로선수가 되지 못한 어른들의 삶은 무력감과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고 무한 경쟁에 놓인 아이들은 강박적이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개인보다 팀, 팀보다 구단, 구단보단 마을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개인'이라는 존재는 철저히 억압당한다.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앞두고 케빈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마야와 그 가족들을 향한 베어타운 사람들이 분노 역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베어타운에도 희망은 있었다. 

공동체가 이끄는 대로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성폭력 사실을 드러낸 마야, 변해버린 마을을 부끄러워하며 마을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라모나,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실을 폭로한 아맛, 진실을 마주하고 마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케빈의 엄마처럼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삶을 찾아 다른 공간으로 떠난 이들도 있었으니 개인적으론 그런 결말이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이 되길 바라며, 어떤 식으로 살아야할지' 선택의 기로를 열어둔 게 아닐까?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며 베어타운의 모습이 섬뜩하리만큼 우리 사회와 닮은 것 같았다.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묵인해온 사회문제들, 무한경쟁에 내몰린 사람들과 그로 인한 혐오, 차별, 폭력 등 우리 사회모습 역시 베어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베어타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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