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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평전 - 개발독재자
김삼웅 지음 / 앤길 / 2017년 10월
평점 :
박정희 평전. 김상웅
한국병원이라고 하는 파리 날리는 병원이 있었어요. 6월 25일에 병원에 불이 나는 바람에 망하기 직전이었거든요. 간호사도, 월급 받는 의사도 그리 많지 않은 변방의 작은 병원이에요. 때문에 월급도 많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죠. 병원장인 장씨는 불경기를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어요.
이때 월급 받는 의사 중 한 명인 닥터 박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원래 야심찬 사나이었거든요. 장면 병원장을 총칼로 협박해서 병원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강요합니다. 총으로 협박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기나요? 결국 병원은 닥터 박의 차지가 됩니다.
뜻있는 몇몇 직원들이 강압적으로 병원을 빼앗은 쿠테타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닥터 박은 그 직원들을 본보기로 처형시켜버립니다. 이 사건을 인혁당 사건이라고 부르죠. 혹여나 닥터 박에게 대드는 사람이 있을까봐 곳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직원들을 감시합니다. 벌벌 떨어야 했던 나머지 직원들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월급도 100만원 그대로 나오겠다, 자신에게는 큰 상관이 없으니 그냥 입 다물고 살기로 결정합니다.
닥터 박은 사람들의 힘을 한곳으로 모울 줄 알았습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죠. 독재를 하면서 자기 잇속만 채우는 독재자들이 얼마나 많나요? 북한, 리비아, 수단, 쿠바 등을 보면 알만해요. 닥터 박은 ‘우리 병원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직원들을 독려합니다. 직원들에게 9시 출근, 7시 퇴근이 아니라 새벽 6시부터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랍니다. 일부 직원들이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항의했지만 역시나 반동분자 또는 빨갱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습니다. 남은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월급도 더 받지 않고 일했으니 한국병원은 날로 커졌습니다.
이때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웃 일본병원에서 A 간호사를 강간하고 그 남편, 자녀들을 두들겨 패서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린 사건이지요. A간호사는 일본병원과 힘겨운 소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닥터 박이 여기에 끼어듭니다. 닥터 박이 급전이 필요했거든요. ‘한국병원이 확장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 만약 일본병원에서 한국병원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A간호사 강간 폭행 사건은 더 이상 문제가 없도록 해준다’. 일본병원이 닥터 박과 돈으로 퉁쳤습니다. A간호사는 너무나 억울했지만 대들 수가 없었어요.
직원들의 새마을 운동과 일본병원에서 빌린 돈까지 생겼습니다. 이제 닥터 박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날로 사업을 확장시킵니다. 의사들과 수간호사들에게 “다른 간호사들 쥐어짜도 좋으니까, 한국병원을 발전시키기만 해라.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한국병원이 발전한다면 너희들에게는 지금 연봉의 몇 백배를 주겠다” 몇 백배의 월급을 약속받았겠다, 뒤를 봐주겠다는 닥터 박의 말도 있겠다 과장들도 일하기가 쉬웠어요. 다른 간호사들을 쥐어짜서 일하면 되니까요. 다른 병원들은 간호사들이 권리를 주장하고, 월급 인상도 해줘야 했거든요. 어느덧 한국병원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다른 병원들이 와서 부러워하는 알아주는 병원이 되었지요.
한국병원이 정말 성장하자 닥터 박은 모든 직원들에게 월급을 올려줍니다. 이웃 일본병원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월급을 올려줬어요. 직원들도 세뇌를 당했는지 약간 올라간 월급에 행복해 했습니다. ‘닥터 박이 우리를 살렸어. 장면 병원장 있을 때에는 월급이 더 이상 올라갈 기미가 없었잖아?’ ‘그래그래.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수도 있는 거지’.
평직원들은 월급이 소폭 올랐습니다. 그런데 닥터 박의 말을 잘 들은 일부 의사와 일부 수간호사는 월급이 정말로 몇 백배가 올랐네요. 소득불균형이 생긴 거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집이 몇 채씩 있는데 평직원들은 월급이 올라도 삶이 힘듭니다. 집값과 물가가 너무 올랐거든요. 월급이 몇 백배씩 오른 사람들이 서로 집을 사려고 하니 가만히 있던 집값이 너무 올라버렸어요. 닥터 박이 있는 18년 동안 땅값이 100배가 올랐습니다. 이 불균형 때문에 뒷세대 젊은이들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내집마련이 힘들게 되었죠.
큰 사건이 생깁니다. 술을 마시던 닥터 박이 급사를 했어요. 대표 원장 자리가 비어버렸지요. 다음에 올라온 대표 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평직원들이 직접 뽑았어요. 그 전에는 닥터 박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체육관에서 모여 대표원장을 뽑았거든요. (2,578명 중 2,577명 찬성하는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엇겠습니까) 새 대표원장은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간호사 A와 빨갱이로 억울하게 피해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죠. 새벽부터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는 게 너무 가혹하다 해서 근무 시간을 줄여줬습니다.
다음 대표원장은 무리하게 한국병원을 성장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성장으로 병폐가 많았거든요. 새 대표원장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썼죠. 때문에 한국병원의 발전이 더뎌집니다. 우리보다 못살던 중국병원에서는 닥터 박의 노하우를 본받아서 중국식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급속히 성장을 하고 있네요. 한국병원에서도 ‘새로운 대표원장 때문에 빨갱이들이 설친다.’, ‘반동분자들 때문에 한국병원의 성장이 더디다.’, ‘이렇게 해서 일본병원처럼 성장은 고사하고 중국병원 월급에게 따라잡히겠다.’ 등등 말이 많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내가 재능만 뛰어나다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죽여도 된다. 내가 옳기 때문에 반대 의견 자체가 곧 반역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한 독재자가 일을 잘 했거나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죠. 다음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재자가 나타날 환경을 조성하니까요.
저는 다행이도 비교적 민주화된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와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를 향해 반대 시위도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권은 망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지난 1년간 절절히 느꼈습니다. 이렇게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하다니 진정 민주화된 나라입니다. 민주화, 백성이 주인이라는 뜻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