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매가 답이다 - 23가지 실제 사례로 마스터하는 공매 투자 비법
문현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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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인강이나 컨설팅없이 혼자 유튜브로 산만하게 공부하다가 막상 본격 입찰하려니 뭘알고 뭘모르는지 구별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 덕분에 한큐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교과서에요 다른 경매책이 많이봤지만 이 책만큼 간결명확심플한게 없었네요 이 책 한권만 잘 숙지해도 충분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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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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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독방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서 떠올린 생각인데...

그 친구는 감방벽 때문에 질식할 것처럼 느껴지면, 자유로운 코끼리 떼를 상상하기 시작했다죠.

그 후 우리는 감방에서 더 견디지 못할 상태가 되면,

아프리카의 확 트인 공간을 돌진하는 이 거대한 동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했지요. 하지만 그 노력이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었어요.

홀로 남아 기진맥친한 채 우리는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으며,

눈을 감은채 지나는 길마다 모든걸 쓸어버리는, 그 무엇도 멈춰 세울수 없는 우리의 코끼리를 보았죠.

그 경이로운 자유의 발길 아래로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았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폐를 채우는것 같았어요...

 

..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달리는 자유로운 코끼리 떼들-

벽도, 철조망도, 아무것도 거칠게 없는 수백의 수백마리의 경이로운 짐승들,

툭 터진 공간을 가로질러 달려들어 지나가는 길에 모든 것을 뭉개버리고,

모든걸 뒤엎어버리는 수백의, 수백마리의 코리끼를 생각해봐.

살아있는한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멈추게 할수는 없지.

바로 자유란 말이야..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하늘의 뿌리'라고 부르오. 멕시코 인디언들에게는 이것이 '생의 나무'로,

모두들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을 들어 아프도록 가슴을 두드린다오.

모렐같은 고집쟁이들이...밖으로 드러내려 애쓰는 어떤 보호 욕구 말이오.

그들은 가슴 속에 깊이 묻힌 이 하늘의 뿌리들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렇지, 그래야지. 절망해선 안되지. 오히려 미쳐야돼.

땅위에서 살려고 폐도없이 물밖으로 배를 내놓고, 어떡해서라도 숨을 쉬려고 애썼던

첫번째 파충류도 미쳤던거지. 어쨌건 그래서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잖아.

항상 할수있는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로맹가리. 하늘의 뿌리(Les racines du ciel)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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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정도로 두꺼운 책.

시간당 100페이지 넘게도 읽어치우는 속독쟁이건만,

이 책은...서너장에 한번씩 숨이 턱 막혀서 잠시 멍해지는-

뭐랄까, 이렇게 가만히 좌시 하는것조차도 자연에 대한 모독인듯양-

웬지 주인공 모렐이 총구로 내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듯한 불편함을 외면할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여러 논쟁들이란 때론 너무도 소모적이라서-

감정, 이해관계, 혹은 정치적 이용과 맞물려-이를테면 소고기 수입과 촛불집회같은-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최초 궁극의 원칙과 멀어지는게 아이러니해서-

결론도 없는 지리멸렬한 싸움들에 질려서, 나는 정치고 종교고 나발이고 관심이 없다.

때문에 환경파괴라고 해서 특별히 관심있을리 만무했다.

 

'하늘의 뿌리'를 통해 그런 나의 무관심함에 좀 죄책감이 느껴졌는데,

단지 주제가 '멸종동물보호'에 한정됐다면,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인물의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꼬집는다.

인간성에 대한 절망적과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놓치않는 그것-

그것은 자연...인간에 대한 더 큰 연민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 자유를 떠올리기 위해 상상했던 코끼리.

석방되자 코끼리 사수를 위해 아프리카로 뛰어든 모렐.

그가 지켜야 할것은 코끼리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그리고 인간 자신.

정치적 이념과 정체성의 혼란이 뒤섞인...마지막까지 버릴수 없는 무엇.

최초로 상상의 코끼리를 고안했던 수용소의 그 동료가-

나중에 코끼리 살육업자가 되어 재회한 장면에선 정말 소름 돋는듯했다.

이 서글픈 배신에 경악하기보다 오히려 통곡하고픈 심정은 왜였을까.

 

난 자유의 표상을 기껏 '비상(飛上)'을 떠올렸는데, 코끼리에 비하면 참 1차원적인 발상이였다.

무엇으로부터 지키려는 자유는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지키지않고선 벗어날수 없는것이니.

또한 아프리카에 대한, 내가 기존에 갖고있던 이미지가 얼마나 부끄러운 수준인지-

그 속의 백인과 흑인, 그리고 뼈속까지 백인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흑인,

태초의 모습대로 지키는 것,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후의 휴우증, 비 아프리카인의 이중성,

자본주의와 무분별한 개발, 단백질 섭취를 위한 사냥, 멸종동물보호와 자연보호..

그 복잡성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고찰할 기회가 없었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코끼리에 대해선 무서울만큼 맹목적인 모렐의 존경스러운 점은,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분노와 같은 감정을 무기로 삼지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상아와 가죽을 벗기는 공장을 파괴할뿐 업자들을 처단하진 않는다-

그래서 적이었던 자조차도 아군이 되어버리는, 종국에는 모두와의 화해를 꿈꾸는-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갑옷처럼 껴입고 있는건지..

정작으로 싸워야할 것은 무엇이였는지...싸운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이유도 구차한 것들만

억지로 부여잡고 있지는 않았는지..반성하게 하는 부분이였다.

 

하늘의 뿌리.

불어 원제목의 직역인듯하나, 어쩐지 입에 쉽게 담으면 안될 단어로 느껴진다.

솔직히 권하고 싶진않다. 어려운것 투성이라.

분명히 간단한 문장인데- 선뜻 스며들지않는 것들이 만만치않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선 가장 가치있는 책은 틀림없는듯.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게 된다면, 꼭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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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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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풀브라이트(full-bright) 장학생’출신 교수가 있었다. 미국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고 모교인 우리학교에서 교수가 됐다. 서울 명문대 수재들도 뚫기 어려운 풀브라이트를 패스했단 사실만으로도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가 많은 얘기를 해주길 기대했다. 미국 대학이나 문화 뭐든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수업 시간에 꿈, 정치 혹은 미국에 관해 한번도 논하지 않았다. 무용담처럼 한번쯤 늘어놓을 법도 한데, 주관적인 논평이라곤 몰랐다. 심지어 그는 386세대 였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수업시간에 삼천포로 빠질 줄도 모르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삶의 지침을 꼬집어줘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말하자면 그는 후배들에겐 F학점짜리 선배였던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하면 한번쯤 '놈 촘스키'에 대해 듣게 된다. 나도 그 풀브라이트 교수에게서 처음 그 이름을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촘스키의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참고로 언어학은 80년대에 촘스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생 학문이다. 그런 언어학을 그가 90년대 미국에서 전공했다는 건, 우리나라에선 거의 최전선에서 언어학을 섭렵했음을 뜻한다. 아무리 풀브라이트 출신이라도, 국내에선 지방사립대 출신이라 꿈이 좌절된 걸까. 그는 수업경험 외에는 촘스키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언어학 입문을 듣던 나도, 그저 촘스키가 상아탑에 갇혀 꼬장꼬장하게 언어학을 만들어 낸 그런 학자인줄로만 알았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통찰- 촘스키와의 대화’

부끄럽게도 촘스키 책은 인터넷 서점 이벤트 때문에 주문한 책이었다. 이름도 익히 들었고, 꽤 저렴한 가격도 선택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린 내 심정은 꽤 착잡했다. 얼마 전 읽은‘88만원 세대’가 우리나라 현 세대를 경제학의 미시적 관점으로 분석했다면, 이 책은 세계의 정치학의 거시적 관점으로 분석해 놓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인 기자 드니 로베르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이탈리아에서 촘스키와 현 국제정세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다. 단순한 인터뷰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여기에 촘스키의 사상의 오롯이 집약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99년에 대화한 것을 기초로 2000년에 발간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현 국제 정세를 논하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지몽매함이 부끄러웠다. 촘스키의 언어학자라는 명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자 정치 평론가였다. 정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깊은 통찰력과 열정적인 진실에의 목소리였다.




이 책의 논점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표현의 자유와 지식인의 역할’과 ‘기업 권력과 가짜 민주주의 정부의 대표 미국’이다. 

그리고 지상에 남은 마지막 예언처럼 우리에게 말한다.“깨어있으라”고. 

왜곡된 선전에 세뇌당하지 않을 최상의 방책은 지적인 자기 방어법, 그것뿐이라고.

 

촘스키는 먼저 ‘포리송 사건’에 대해 해명한다. 포리송은‘히틀러의 가스실은 허구다’는 놀라운 주장으로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이다. 그는 곧 사회에서 매장됐으며, 그의 서적 출간 역시 금지됐다. 이 사건에서 촘스키는 표현의 자유억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촘스키를 포리송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매도해 버렸다. 단지 그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는 에밀졸라가 대변한 '드레퓌스 사건'의 참 묘한 데자부다. 촘스키의 표현의 자유 주장과 포리송의 편들기를 과연 대중들이 구별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언론이 마녀 사냥을 한 것이었다. 적색 경보를 울리는 촘스키의 주장에 언론 권력이 나치주의의 이름으로 대중을 위협한 것이다. 왜? 자유가 확대될수록 대중은 통제하기 어려우니까.




그러고 보면 현대인은 미디어의 사생아들이다. 언론의 자유는 곧 표현의 자유와 동의어지만, 우리에겐 둘 다 온전히 주어져있지 않다. 그것은 거대 미디어의 소유일 뿐이다. 세상에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니, 말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도 회사 게시판에 글을 몇 번 올렸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그건 ‘자유'게시판이 아니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시되고 검열되는 게시판이었다. 대중은 거대 미디어 권력에 의해 ‘프로그램’된 언론을 의식속에 입력해야 한다. 대중에겐 선택권이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국적 기업 혹은 강대국에 의한 대학살이 일어나도, CNN이나 BBC이 입 다물면 그만이다. 미국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독재자를 지원했고 그 결과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연 이것이 미국도 언론의 책임도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라크 전쟁은?!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른 흐름을 꿰뚫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채 대중을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답합니다.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피에르 부르디외는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택시기사로 삶을 끝마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그는 지식인의 책무를 거듭 역설한다.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 미국 최고의 살아있는 양심이자 지식인인 촘스키의 주장은 강력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의 목소리가 어째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미국 최고의 지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깊이 깨우칠 것을 대중에게 촉구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 예전의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는 왜 그렇게 입을 다문걸까. 풀브라이트를 패스할 정도면 남달리 피력 할 수 있는 견해가 많았을텐데. 인생의 선배로써 스승으로써 왜 학교와 미국의 부조리에 대해 한 마디도 우리에게 해주지 못한걸까. 그도 그게 ‘밥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국이 키워준 풀 브라이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걸까.




그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딴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오늘날 미국 경제체제를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라는 것이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적확한 분석이 아닐수 없다. 88만원 세대의 '승자독식'게임이 어디서 왔나 싶었더니 바로 미국의 경제 그 자체였다니. 눈을 뜨고도 당한 기분은 왜일까. 우리에게 미국이외의 대안은 없는걸까. '자기 리스트의 부재'는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홍보와 광고, 그래픽 아트, 영화, 텔레비전 등을 운영하는 거대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혹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언론의 공공성에 대해 운운하지만 촘스키는 언론이란 공공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의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가만히 TV의 공익광고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 '미래의 더 나은 코리아는 너희들의 것'이란 광고는 공익광고면서도 대기업이, '한국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란 광고 또한 대기업이 자회사를 국가 이미지로 광고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이미 '통제'하고 있는게 아닌가. 대기업은 대중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보장하는것 처럼 포장해놓고, 더 많은 착취와 더 무책임한 일들을 벌여놓지 않았던가. 그럴수록 대기업은 이미지즘 광고를 놓지않고 있다. 맹목적인 욕구만 추구할것을 부채질할뿐. 

 


그렇다면 기업과 미국. 거대 언론을 대상으로 대중은 우매한 채로 살아야 하는가? 촘스키, 당신도 이렇게 혼자 미국을 향해 싸우는데 우리라고 별수 있겠어요? 라고 반박한다면 촘스키는 뭐라 대답할까. 때문에 그는 민중이 항시 깨어있어야 하며 민중이 조직화된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힘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민중이 조직화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저자는 “촘스키의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旣知)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고 덧붙인다. 기지의 사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재차 의구심을 품어보도록 하는 것. 저자는 이것이 바로 그가 촘스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얻은 교훈이라고 말하고 있다.

 

체념한채 기성사회에 빌붙어 살것인가, 아니면 깨우친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국제사회와 경제 구조에 관해 이 많은 통찰을 다 깨우치기도 힘들지만, 그 깨우침대로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로 밥줄이란 생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것이니까. 나 역시 예전에 노조에서 러브콜을 받았을때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 입사 초기라서 뭘 잘 모른단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내가 아는 만큼, 글을 쓰는 만큼 행동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명같지만. 깨어있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용기와 열정이 필요한 걸까.

 

분명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는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아닌 대중으로부터 시작되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언젠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내는데 급급해 나침반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어쩌면 '변해야산다'는 개념조차 없는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의 우리에겐 촘스키와 같은 지식인이 절실히 필요하다. 권력에 아부하는 거짓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에게 진정으로 갈길을 제시해줄 그런 현자 말이다. 문득 그 옛날의 풀브라이트 교수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비록 나의 '언어학 입문'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술 한잔 기울이며 인생의 선배로써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줄 순 없는지 다시한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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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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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가. 문구점에서 알바를 할 때 나와 동갑인 친구가 있었다.

저질 눈썰미에 그보다 더 저질의 기억력을 가진 나지만,

그 아이의 성이 워낙 특이했던지라, 아직까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깡마른 체구의 그녀는 하얀 얼굴에 생기라곤 거의 없었다.

그녀는 대구의 4년제 사립대를 휴학하고 1년째 방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IMF때 회사를 그만두고 소일거리를 하시고,

어머니는 아프셔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던 그녀는,

앞으로 학업을 계속하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곧 수능을 쳐야하는 두 동생들까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무기력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그 때 -내 앞가림도 막막한 시기였기에-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공무원 시험 준비에 관한 몇 가지 팁 외엔 없었다.

그녀와 진로를 고민한 이후부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먹고 살만해졌는데, 왜 이렇게 먹고 살기가 어려운가...’

너무도 원초적인 의문이지만, 하나의 화두처럼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때 나의 우둔한 주변머리로 내린 나름의 결론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소극적이고

1차원적인 답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는 거였다.

 

우리는 조부모 세대처럼 목숨을 바쳐 전쟁에 뛰어든 적도 없고,

부모 세대처럼 가난을 면하기 위해 피땀흘려 일만 해본 적도 없고,

삼촌 세대처럼 부정한 정부에 항거에 민주주의를 투쟁해 본 적도 없다.

먹고 살만해진 80년대에 태어나, 그 여느 세대보다 경제적 문화적의 혜택을 받고 자랐으며,

비록 청소년기에 IMF를 겪긴 했지만, 그건 부모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어학연수에 토익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보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지독한 실업률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 아무것도 해본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하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불운한 운명의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한 소리부터 하자면, 요즘 하도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 들었어도

나는 그 단어가 그저 신문에서 떠도는 유행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깊이 착찹한 심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의 얘기고, 내 친구들의 얘기고, 내 후배들의 이야기였다.

보통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두어 시간이면 가뿐히 읽고 해치워버렸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마음이 무거워 좀처럼 진도를 낼 수가 없었다.

이 책 ‘88만원 세대‘는 그 동안의 막연했던 나의 의문에 대해

경제학의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으로 써내려가고 있었다.



또한 고맙게도 그 분석과 해답을 철저히 지금의 20대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깨는’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청소년들의 동거권이 없는 사회’기 때문에 이렇게 위기가 온거라는-

다시 말해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이 늦을수록 정체가 심화된다‘는 논리다.

서두부터 나는 강하게 뒤통수를 두드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청소년들은 동거권뿐만 아니라 아무런 경제권도 없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벽인가, 싶어졌다.

학생이 무슨 독립이고 동거고 임신이야? 하는게 너무도 당연한 정서가 아니였던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XX와 사랑에 빠졌으니 독립하겠다‘하면 당장 난리난다.

학교는? 대학은? 벌이는? 집은?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최저임금이 이렇게 낮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때문에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로 ‘지체’ 될 뿐이다.

취업은 기본 20대 중반에, 결혼은 30대 이후에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10여년이나 유예 된 채

앞으로 나아갈 능력발달의 기회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늦은 사회진출에, 감당이 안되는 대학등록금과 집값, 게다가 자녀 부양비까지.

지체된 인생들은 사회의 지체발달 장애로 이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나혼자 가끔 자조적으로 의문을 갖곤 하던게 또 하나 있다.

‘모두가 다 서울대, 모두가 다 서울....그 이후엔?’ 이란 거다.

전국민 모두가 다 서울대에 갈수가 없고, 전 국민이 모두다 서울에서 살수 없는데,

그 다음 차례로 서울을 등지고 또 모두가 다 미국으로 떠나는게,

과연 더 나은 삶을 위한 진짜 대안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싫어지면 그 후는 달나라인가? 달나라가 싫어지면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우스운 질문이 아닌가.




이 책도 그런 점에서 내 생각과 관점의 궤를 같이 한다.

모두가 다 대졸-써먹을 데 없는-인 현 세태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서 이 책의 첫 번째 키워드인 ‘승자독식의 구조’가 나온다. 일명 '배틀로얄게임'.

지금 우리나라의 기업구조나 자본생산구조 모두 철저히 승자 독식의 구조라는 거다.

적자(fittest)가 아닌 승자(strongest)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만약에 청소년 동거권과 경제생활을 인정한다고 가정한다면,

공부가 길이 아닌 이들은 자영업이나 제조업으로 활발히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온 국민이 일류대학 간판을 위해 공부-그것도 4당5락의 중노동-에 매달리기 때문에

완전히 패배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럽처럼 청소년 고용에 정부나 지역사회가 완충제 역할을 하기엔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허접할 뿐이라는 현실이 너무도 절실히 다가온다.




승자 독식의 구조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 이후 대기업의 독과점화,

특히 프렌차이즈 사업이 자영업을 패배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승자 독식의 구조는 곳곳에 만연해 있다. 이미 할수 있는건 30,40대가 다 해먹었고,

남아있는건 전체 취업자수의 20%도 안되는 공무원 및 몇몇 대기업 정규직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 중의 약자는 ‘20대 여성 고졸자’다. KTX여승무원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구가 집중화된 서울(승자)만봐도 그렇다. 지방(패자)민들은 착취당하는 구조일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일찍이 민주화에 앞장섰던 386세대가 후배 세대들을 위해 남겨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면 그들은 지금의 기득권 사회의 완전한 승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승리에 혜택을 받을 세대는 20대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세대인 10대들이라고 한다.

너무도 서글픈 대목이질 않는가. 이러니까 모모 사회 유명인사라는 분들로부터

‘한심한 20대, 니네가 한게 뭐가 있냐’는 이 따위 소리나 듣고 있는거다.




여기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째 키워드는 ‘인질의 경제구조’다.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현 연금제도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구절이다.

즉 3,40대가 10대(대학 및 교육부), 20대(실업 및 부양)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거다.

이는 곧 경쟁의 범위가 세대 내에서, 세대 간의 경쟁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지금 20대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같은 세대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함은 물론,

기득권이 쥐고 있는 조직결정권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나이들면 저절로 승진하고 월급 상향되는 그런 시대가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20대는 물론 앞으로 10대들의 경우에도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책에서는 70년대 연공서열제가 파괴되면서 세대 간의 경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변화를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와 비교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너무도 현실적이라 다른 토를 못 달게 할 정도로 면밀히 분석해 놓았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숫자.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를 대변해 주는 말인가. 곱씹을수록 억울해지는 이유는 뭘까.

문제는 현재 20대들이 자신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거다.

왜? 자기 앞가림하기도 급급하니까. 서글퍼진다.

저자가 말하듯 막말로 ‘토플 책을 집어치우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질’ 용기가

우리에게 남아있기나 한 걸까?!

언제까지 줏대없이 사회의 주변에서 머뭇거리기만 할텐가.

20대의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3,40대엔 나아질거란 뜬구름만 잡고있질 않은가.

그보다 더한 삭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부터 정신 바짝차리고 덤벼도 모자랄판에.

저자가 제시하는 몇 가지 대안이나 답들은 여전히 우리와 요원하기만 하다.

그 대안이라는게 정부나 사회, 심지어는 선배세대들의 몫이라,

그것마저도 20대가 할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 누구도 가장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20대의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는걸까.


 

이 책에서 하고 있는 논의는 여러 가지 많다.

교육에서 자영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문제, 알바시장, 부동산정책까지.

총 망라하면서도 경제학적인 관점이라 설득력있고 명쾌하다.

굳이 구절을 일일이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나와 같은 20대라면 정말 꼭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현재 무능한 20대를 탓하는게 아니라,

벼랑끝에 몰린 20대를 유일하게 두둔해주는 책이다.



왜 이렇게 사는게 어려운지-에서부터

IMF이후의 현 위기에서, 또 다음의 위기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완벽한 대답이란 얻을순 없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의 스스로들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분석을 해놓은 책이라고 확신한다.

 

그 예전의 무기력했던,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던 친구가 생각난다.

아직도 그녀는 절망한채 살고 있을까, 아니면 어디서 비정규직이라도 취직했을까.

한창 날개를 펴도 좋을 나이에 혼자 세상을 다 짊어진듯

무거운 어깨의 그녀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모든것을 체념한채 살고 있는건가.

앞으로 문제의식조차 없이 무엇을 타계하겠다는 말인가.

승자독식, 인질경제, 세대간의 경쟁-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얼른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를 던져버리길 진심으로 갈구한다.



기성세대들처럼 승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은 패배자들을 양산할것인가.

아니면 제 3의 대안으로 우리의 이름표를 단 '세대'가 될것인가.

선택은 지금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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