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터의 재발견 - 질문, 저항, 소통, 새로운 공동체
최주훈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9월
평점 :
‘칼빈의 후예’라 자청하는 장로교 배경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그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루터’라는 단어는 ‘비공식적 금기어’였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도 공식적으로 그의 이름과 사상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1호라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분명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인 장로교에서 왜 루터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왔었다. 루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성찬에 대해 ‘실재설’을 주장했다는 것 외에 문외한인 나에게 ‘루터의 재발견’이라는 책은 새롭게 루터를 이해하고 그가 남긴 귀중한 ‘신학적 발자취’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울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루터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와 나누고 싶은 내용에 대해 이렇게 갈무리한다. “프로테스탄트 제1호. 새로운 교회의 창립자. 보편 교육과 복지의 초석을 놓은 사람.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 종교적 천재. 탁월한 설교자이자 목회자 등등 루터는 다면적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한 루터도 아니고, ‘내가’ 이해하는 루터와 ‘오늘 우리 시대 한국 땅’에서 건져 올릴 종교개혁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p34)
그렇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의 첫 횃불을 들어 올렸던 루터의 모습을 재조명해 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해한 루터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주워댄다면 그것은 아니한 만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을 감싸고 있는 ‘띠지’에 적혀 있는 문장, “우리의 루터 이해는 여기가 최전선이다!”에 나타난 것처럼 저자 최주훈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저마다의 ‘루터’를 만나고 호흡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목사라는 직분 때문에 지금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루터의 예배에 대한 이해(p174~183)’이다. 루터는 철저하게 예배를 ‘받는 것’으로 본다. 종교개혁의 5가지 기치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지향하는 바를 따라간다면 우리의 예배는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부어지는 은혜로 충만함 그 자체’이다. “구약의 제사가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것이고, 신약에서 나오는 말씀과 떡은 위에서 아래로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p178)”인 것처럼 개신교 신학에서 중요한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이다. 루터는 그러하기에 ‘주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쳤다. 예배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예배는 ‘드림과 받음’이 공존한다. 그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예배의 ‘받음의 측면’에 대해 더 깊은 관심과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있어서 ‘나로부터 먼저’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의 자리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주어’라는 명제가 지켜지고 있는지 물음표를 그릴 수 밖에 없다.
루터가 로마 카톨릭과 끊임없이 싸웠던 부분이 바로 이 것이었으리라. ‘방향의 전환’이었다. 말씀을 독점하고 자신의 욕망과 명예를 투영하여 지껄여대는 말에 불과한 것에 ‘하나님의 뜻’부여하는 당시 사제들의 모습 속에서 ‘나로부터 그 무엇이’라는 방향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부어짐’이라는 방향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루터는 일어났다. 종교개혁 500년 기념 해인 2017년은 루터가 돌이켰던 그 ‘방향성을 회복하는 원년’이 되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나의 ‘루터’를 만난 것 같아 고맙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