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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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라는 글은 앞서 언급한 두 구절에 대한 주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고, 그분은 성부의 독생하신 아들’, 즉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창조 이전부터 창조 사건 그리고 인간의 타락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다 아셨고, 결국 그 죄의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이 피조물로서의 자리를 거부하려 약속을 파기한 것이 타락이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피조물을 그대로 두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소멸하실 수도 없는 딜레마를 성육신이라는 해법으로 풀어 내셨다. ‘성육신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취하셨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동정녀 탄생이라는 신비로 자연인의 몸과는 철저한 구별을 이루시고, 이것은 인류 구원이라는 재창조를 필요를 충족시키리 위한 선택이었다(p48).

 

성육신한 말씀은 생명이신 그 분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가 하늘로 올라갈 을 만드셨다(p73). 하지만 성육신한 말씀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죽음의 종식과 승리는 완성될 수 없다. “죽음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삼일 후에 곧 일으키(p75)”셨다. 그리고 말씀께서 내주하신 몸이 죽은 것은 본질적인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구주의 권능으로 그 몸에서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p76)”을 명백히 드러내신 것이 바로 부활의 사건이다.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의 성육신의 신비를 마치 눈앞에 실재하는 그 무엇을 설명하듯 그림을 그려 우리에게 보여준다. 미술관의 도슨트(그림 해설사)’가 되어 정재 된 언어와 적확한 알레고리(풍유)로 우리를 말씀의 성육신의 아름다운 여정으로 안내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성육신을 교리의 틀에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신비를 분석하고 논증하려하기보다, 담백하게 그림을 두고 설명하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성육신의 신비를 경험하게 하는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 아름다운 여정의 티켓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의 책에서 우리는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 관해 몇 가지 주된 사항을 아주 충분히 다루었고,그 그릇된 두려움이 원래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도 알아보았다.... <중략>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자, 마카리우스여, 이제 우리의 거룩한 신앙 체계에 따른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이 인간이 된 일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신적으로 나타나신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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