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 -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개정판
이태 지음 / 두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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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남부군>을 읽는 내내 니체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말은 산속에서 외롭게 죽어간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남부군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근거로 활약했던 남한 빨치산이다. 그들은 남한 빨치산 중 가장 완강했던 무력집단이었고, 그래서 가장 처참하게 스러져갔으면서도 북한정권에 의해 버림받고 마는 비운의 병단이었다. 남부군의 일원이었던 저자가 그 비운의 병단이 겪었던 운명을 기록한 책이 <남부군>이다.


그래서 <남부군>은 한마디로 몰락에 관한 서사다. 이 작품은 한때 군경을 공포에 떨게 했던 남부군이 결국은 몰락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실 남부군의 몰락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남한은 시베리아나 만주와는 달리 근거지로 삼을 공간도, 보급수단도 없었다. 고작해야 반경 15의 지리산 속에 갇혀 군경에게 포위된 채로 싸우다 죽거나 항복해야만 했던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북한의 전문가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남한 빨치산의 최대 수명을 2년으로 예상했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들의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끝내 이들을 버렸다. 휴전회담 막바지에 유엔군 측이 남한 빨치산을 데려가라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이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처절한 패배와 죽음, 그리고 몰락이었다.


그래서 <남부군>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들의 비극적 운명을 동정하게 된다. 이를테면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란 어느 빨치산의 말이나 바로 어제까지 생사를 함께 했던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서글픈 마음을 가누기는 쉽지 않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도 있었을 이들이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분단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그저 희생자로만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이 고독한 죽음과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신념,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평가하지 않고, 그들을 불쌍한 희생자들로만 보는 것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다시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남부군이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었다면 그들이 건너가던 저기 저편은 어디였을까. 그건 결국 김일성 독재로 귀결된 북한 아니었을까?


그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을지

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빨치산 활동을 통해 한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후방으로 군단 규모의 군대를 이동하게 만듦으로써 북한을 도왔다. 그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다 해도 그들의 실천은 분명 북한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남부군의 비참한 운명에 느끼는 인간적 연민과는 별개로 나는 그들을 끝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꿈꿨던 이상은 대단히 숭고하고 고귀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그들의 투쟁이 성공했을 때 나타날 결과는 지독히도 끔찍한 것이었으리라고, 그 결과는 김일성 독재 체제가 남한에서도 구현되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결론은 전형적인 보수의 논리다. 보수주의자들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좋은 의도가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를 즐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 속에 분명 어떤 진실이 담겨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적어도 남부군에는 이 말이 적용된다.


그래서 <남부군>을 읽는 일은 두 가지 의미로 착잡하다. 첫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비극적 운명을 맞아야 했던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워서이고, 두 번째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꿈이 때론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에 부정하기 힘든 진실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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