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리더십 - 후진타오의 이노베이터, 개정판
김기수 지음 / 석탑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자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향후 10년 간 중국을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의 이름이다. 지난 1일 이후 돌연 종적을 감춰 차기 권력 이양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2주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진핑으로의 권력 승계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리더십>은 장차 중국을 이끌 시진핑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한국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현직 기자로 20년 가까이 취재활동을 해온 저자는 시진핑의 발자취를 쫓아 중국 전역을 답사하며 시진핑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 나선다.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탁월한 친화력

1장 '시진핑의 삶과 리더십'은 시진핑의 생애를 다룬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눈앞에 둔 시진핑이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낸 잘 나가던 관료였고, 시진핑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1962년 시중쉰이 '류즈단 사건'(마오쩌둥이 소설 <류즈단>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한 사건. 이 사건으로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숙청되었다)에 휘말려 실각하면서 시진핑의 고난도 시작됐다. 

시진핑은 9세 때 아버지의 실각으로 충격과 혼란,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고, 13세 때 문화대혁명이 시작돼 반동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뒤 집단 따돌림과 학대를 받아야 했으며, 16세 때부터 하방생활로 어려운 노동생활에 시달렸다. - <시진핑 리더십> 42p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진핑은 량자허촌의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3달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홍위병에게 붙잡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량자허촌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가 다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지만, 시진핑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농촌 여성보다 못했지만 밤낮없이 일을 했다. 처음에 노동점수는 6점으로 여자들보다 낮았지만 2년 후 건장한 노동자 노동점수인 10점을 받았다. 벼룩과 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농촌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 농민들을 이해하면서부터 농민들과 편안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 논의했다. (중략) 시진핑은 마을 사람들 신뢰를 얻었다. 지부 서기마저 무슨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와 상의했다. 시진핑 지식과 식견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량자허촌에 온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 <시진핑 리더십> 24p  

마침내 시진핑이 하방생활을 마치고 량자허를 떠날 때는 10여 명이 60리 길을 걸어 그를 배웅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다. 

시진핑의 끈기와 친화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복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입단 신청서를 낸다. 대대 지부 서기가 시진핑의 신청서를 원안역공사 공청단위원회 서기에게 전달하자 그는 버럭 화를 낸다.

"감히 부르주아 부패분자 시중쉰 아들의 입단 신청서를 전달해? 이런 눈치도 없는 놈."

그러나 시진핑은 기죽지 않고 계속 신청서를 쓴다. 자신을 "부르주아 부패분자 시중쉰 아들"이라고 비판한 서기를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절친한 친구가 됐고, 마침내 8번째 신청서를 써서 승인을 받아낸다. 말 그대로 7전8기다. 

시진핑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1978년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 아버지 시중쉰의 명성과 인맥이 크게 작용했지만, 농민들 틈에 섞여들고 반대파까지 자기편으로 만드는 친화력과 7전8기 끝에 목적을 달성하는 끈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경제는 '개방', 정치는 '보수'

시중쉰은 덩샤오핑에게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자고 처음 제안한 '개방파'이자 톈안문 사건 이후 후야오방의 편에 서서 정치개혁을 주장한 '개혁파'다. 시진핑 역시 "시중쉰의 개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시진핑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시진핑의 경험과 인식, 그리고 역할을 볼 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중국공산당 기본 방침으로 최고 통치자가 누구든 관계없이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 <시진핑 리더십> 229p

중국에 수년간 근무한 외교통상부 한 당국자도 "시진핑은 국내파라는 점에서 보면 상당한 민족주의자다,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시진핑의 행보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08헌장' 서명 파동, 2009년 중국공산당 원로의 정치개혁 촉구와 농민공 시위, 신장 위구르 폭동, 2010년 류사오보 노벨평화상 수상, 2011년 재스민 혁명 상륙 움직임 등 시진핑은 '화약고'를 떠안아 뇌관을 제거하고 적절히 관리했다. 2009년 신장 위구르 폭동에 대한 강력한 진압을 총괄 지휘해 마치 장쩌민의 톈안먼 사건에 대한 대응과 후진타오의 티베트 시위 대응과 맞먹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개혁개방에는 진보적이지만 정치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지도부의 성향과 자격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 <시진핑 리더십> 167p 

이 같은 그의 행보로 미루어볼 때,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여정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이런 것까지... 너무 딱딱하고 원론적인 책

평범한 독자로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4장 '시진핑 리더십의 과제'와 5장 '시진핑과 한반도'다. 시진핑이 어떤 정책을 펴고, 그에 맞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이 책의 핵심일 텐데 너무 딱딱하고 학술적이어서 잘 안 읽힌다.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취재도 열심히 했지만, 그것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시진핑 리더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중국의 7대 성장산업을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신에너지산업부터 첨단장비산업까지 7개의 산업을 10여 쪽에 걸쳐 각종 수치와 함께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마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다. 

그게 시진핑 리더십과 무슨 관계인지도 잘 이해가 안 된다. 7개의 성장산업을 설명하는 10여 쪽에서 시진핑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시진핑이 주도적으로 이들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이러이러한 산업을 7대 성장산업으로 선정, 육성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의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부분도 아쉽다. 미국과 중국 양강(G2)에 맞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인도를 묶은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 '천하삼분지계'를 펴야 한다는 주장 등 참신하고 독특한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원칙을 지키는 외교가 중요하다'거나 '중국통 양성하고 인재풀 양성하라'는 제안은 너무 원론적이고 당연하다는 느낌을 준다. 

다행히 저자가 "시진핑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며, 그 결과물을 "이 책의 개정판을 통해 독자들께 선보일 것"이라니 개정판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장차 미국과 어깨를 견줄 중국의 위상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을 고려할 때, 시진핑 리더십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앞날과 직결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저자의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이 더욱 확장된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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