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홀로코스트(Holocaust). '완전히 타버리다'는 뜻의 그리스어 'holokauston'에서 나온 이 말은 본디 대참사를 일컫는 일반 명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는 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벌인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된다. 대참사를 일컫던 일반 명사를 고유 명사로 바꿀 만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유별나게 끔찍했다.

20세기를 상징하는 비극적 사건으로 꼽히는 만큼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예술 작품도 적지 않다. 우리에게 친숙한 <안네의 일기>를 비롯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등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 역시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이다.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쥐>는 "나치학살을 소재로 다룬 것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잘 된 서사문학"(<월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복도를 가득 메운 시체..."이제 내 차례군"

<쥐>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히틀러 치하의 유럽에서 살아난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들려주는 2차 대전 당시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블라덱의 경험을 만화로 그리는 아들 아트 슈피겔만의 이야기다. 두 이야기 중 핵심은 유대인 블라덱이 나치 치하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에 찬 생존담이다.

블라덱이 보고 듣고 경험한 아우슈비츠(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설치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는 한 마디로 '비일상성의 공간'이었다. 평온한 일상을 박탈당하고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 앞에는 끔찍한 현실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치 독일은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유대인에게 사이즈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셔츠와 신발을 지급한다. 블라덱의 친구 만델바움은 너무 큰 바지를 지급받았는데 허리띠로 쓸 끈도 없어 늘 한 손으로 바지를 잡고 있어야 했고, 신발 한 짝은 너무 작아 들고 다녀야 했다. 운 좋게 감독관의 눈에 든 블라덱은 만델바움을 위해 그의 몸에 맞는 신발과 허리띠를 얻어 오는데, 신발을 받은 그는 감격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럴 수가…블라덱. 이건 기적이야. 신께서 자네를 통해 신발을 보낸 거야."

만델바움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보이고, 블라덱 역시 함께 눈물을 흘린다. 몸에 맞는 신발과 허리띠 같은 평범한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은 비일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일한 동료는 블라덱에게 그곳의 참상을 털어놓는다.

"우리가 갈고리로 시체를 헤쳤어. 엄청난 시체더미였는데 제일 위에 힘 센 사람이 있고 노약자나 아이들은 아래에 깔려 있었지. 두개골이 으스러진 사람도 있었어…. 벽을 기어오르다 손가락은 부러지고 거기다 팔이 탈구되어서 몸길이만큼 늘어난 것도 있었지."

아우슈비츠를 떠나 다카우에 있는 강제 수용소로 옮긴 후에도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갔다.

"밤엔 화장실을 내려가야 했어. 그런데 복도 전체가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죽은 사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단다…. 머리를 밟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끔찍했던 게 살갗이 너무 미끈거려 넘어질 것 같았거든. 그것도 밤마다였지. 이제 내가 그 티푸스에 걸렸고, 나는 화장실엘 가야만 했어. 그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어. "이제 내 차례군.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 날 밟고 가겠지!"

인용한 몇 개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쥐>는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하고도 참담한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나치 독일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몸서리치게 된다. 

유럽, 학살의 공범

그러나 이 모든 장면보다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한 유대인은 그의 집을 차지한 폴란드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히틀러가 너희를 다 끝장낸 줄 알았는데. 꺼지라고, 유대인! 여긴 이제 우리 집이야."

갈 곳이 없던 그는 집 뒤의 헛간에서 밤을 샜는데, 밤중에 폴란드인들이 들어와서 그를 때리고 목을 매단다. 혹독한 나치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한 유대인의 허망한 최후였다. 

이 에피소드는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반유대주의의 실상을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때문에 나치 독일이 반유대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반유대주의는 나치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헝가리는 1920년 유대인을 '모세 신앙을 가진 헝가리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 구분하는 법령을 공포했고, 폴란드농민당은 "유대인은 절대로 동화될 수 없으며 폴란드와는 이질적인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심지어 "유대인은 스스로 다른 민족과 동화를 거부하는 별난 공동체로 행동해 왔다"는 내용을 헌법의 한 조항으로 삽입했다. 

"이렇게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을 통틀어 민주주의든 권위주의 체제든 상관없이, 근대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엘리트들 사이에는 반유대주의가 자연스럽게 퍼져갔으며, 결국 이런 배경을 이용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나치 정권이 특별히 비정상적인 정권이 아니었으며, 인종 청소라는 정책을 최초로 시도한 정권도 아니었다. -<암흑의 대륙> 93p"

뿐만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을 넘겨달라는 나치 독일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대인 학살에도 간접적으로 동참했다.

"몇몇 정부들, 특히 프랑스·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 등은 독일만큼이나 반유대주의에 열광했고 유대인을 '동쪽으로' 추방할 절호의 기회를 환영했다.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운동이 잠깐 집권했던 루마니아와 헝가리에서 발생한 끔찍한 유혈 사태는 독일인 당사자들에게조차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리스나 네덜란드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들조차 독일 당국과의 다양한 협조를 통해 수많은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냈다. -<암흑의 대륙> 240p~241p"

이처럼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는데 협조했던 유럽 국가들이 유대인의 귀환을 기꺼워했을 리 없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유대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되찾으려 하면서 오히려 반유대주의가 강화됐고, 그 결과가 앞서 소개한 에피소드였다. 

히틀러와 그 일당은 악마였고, 유대인 학살은 몇몇 악마들의 소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이 에피소드는 홀로코스트에서 유럽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블라덱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이 겪었던 비극은 1차적으로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책임이지만, 2차적으로는 유대인 학살과 차별을 묵인·동조했던 유럽 국가들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 역시 참혹했던 학살의 공범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치 독일은 사악했다고,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잔혹했던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히틀러나 나치 독일의 악마성에만 돌리는 것은 학살에 동조한 유럽 국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홀로코스트가 지금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쓰이지만 본디 대참사를 일컫는 일반 명사였듯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이들 역시 나치 독일이라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유럽 국가라는 일반 명사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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