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맨얼굴 - 8인의 학자, 박정희 경제 신화 화장을 지우다
유종일 엮음 / 시사IN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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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안가에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환락에 빠져 있던 그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쏜 것이다.

18년에 걸친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은 그렇게 끝났지만, 박정희의 영향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많은 사람이 박정희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고, 박정희의 딸은 대권을 노리고 있다.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성장지상주의 경제정책에서도 박정희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의 중심에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박정희의 경제 신화가 놓여 있다. 박정희가 독재는 했지만, 경제성장은 이뤘다는 것이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이들은 민주주의도 다 먹고 살만할 때나 가능한 것이라며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풍족하게 살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도 굳건한 박정희의 경제 신화를 반박하기 위해 8인의 경제학자가 뭉쳐 한 권의 책을 냈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이끄는 유종일, 노무현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맡았던 이정우,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재벌개혁에 앞장서온 김상조를 비롯한 8인의 학자는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을 꼼꼼히 살피며 박정희의 경제 신화에 도전한다. 

박정희 시대의 거시경제와 재벌 중심 체제

유종일(1장)은 총론에 해당하는 1장에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도 비슷한 시기에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며, 여기에는 수출 지향적 성장에 유리했던 세계시장의 여건, 경제발전을 위한 초기 조건을 잘 갖추고 있던 점,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문화적 역량 등 박정희 개인의 역량과는 무관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박정희 시대는 여러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유종일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구조 저변에 재벌 중심 성장과 적대적 노사관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곧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이정우(2장)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이 지가와 물가를 폭등하면서 추진됐고, 후대에 큰 부담을 안겼다고 주장한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지가 상승과 관련한 통계다. 1953년에서 2007년까지 54년 동안 한국의 지가 총액은 1만 배 넘게 폭등했는데, 이정우는 전체 상승 중 절반 이상(50.5%)은 박정희 정권의 책임이라 분석한다. 또한, 비싼 땅값은 세계 최고의 공장부지 가격, 주택난,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등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큰 해악을 끼쳤다고 비판한다. 

박헌주(3장)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를 '왜곡된 통제경제체제'라 부르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재벌 중심 체제를 의미한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 통치에 대한 선호와 거대 사적 자본에 대한 혐오, 빠른 성장을 달성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일본의 메이지 근대화를 의식적으로 모방했으며, 그 결과 재벌 중심 체제가 등장했다. 박헌주는 왜곡된 통제경제체제가 상명하달식 권위주의, 편중화된 지원, 성장만능주의, 전투적인 성장 속도 등의 부작용을 낳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라도 인간 중심적 발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로 3장을 끝맺는다.

김상조(4장)는 박정희 시대 금융과 재벌의 관계를 살핀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민간기업의 자금 조달 및 운용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통제함으로써 관치금융을 초래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재벌이 1980년대를 거치며 독점자본으로서의 지배력을 확립했다고 주장한다. 김상조는 독점자본으로 성장한 재벌이 국민경제를 통제하면서부터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많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왜곡을 가져와 외환위기라는 비극을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박섭(5장)은 수출산업 육성과 중화학공업화 등 박정희 정권의 산업정책을 다룬다. 박섭은 다른 연구자와는 달리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박정희 정권이 경제성장을 이룩한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박정희 정권은 전략과 정책을 상황에 맞게 바꿨고, 국민소득 증대를 위해 노력했으며, 외환위기의 조짐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의 한국 사회는 공업화, 도시화, 지식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1960년대 초와는 판이했고, 박정희식 성장은 계속될 수 없었다. 강조점이 다를 뿐, 박정희식 성장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에는 박섭 역시 동의하고 있다. 

성장의 그늘

윤진호(6장)은 박정희 시대의 노동정책과 노동운동을 조망한다. 박정희 정권은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기획원의 임금 가이드라인 제시와 이에 따른 공기업의 임금인상 상한선 발표 등 인위적인 임금억제정책을 사용했고, 법률과 정부행정기관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통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임금노동자가 크게 증가했고, 질적으로도 노동계급이 성장했다. 윤진호는 박정희 정권이 억압적 노동정책을 유지한 결과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 노동운동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고 평가한다. 

조석곤(7장)은 한국경제가 '압축성장'한 시기에 한국 농업은 '압축쇠퇴'했다고 주장한다. 양적인 측면에서 농업도 성장하긴 했지만 농업 부문의 성장세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었으며, 그에 따라 농업 부문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조석곤은 박정희 정권이 초기에는 농어촌 고리대사업을 실시하는 등 중농주의적 모습을 보였지만, 농업구조 개선방안 마련 실패와 외향적 성장전략의 선택에 따라 농업의 성장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성장을 포기하게 됐으며, 그 결과 한국농업은 '압축쇠퇴'를 경험하게 됐다는 결론을 내린다. 

신동면(8장)은 박정희 정권의 사회복지정책을 살핀다. 신동면은 오늘날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보장 수준이 낮고,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국가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한 원인을 박정희 정권에서 추진되었던 잔여적․선별적 사회보장체계에서 찾는다.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의 건설이었다"고 말했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복지국가는 말 그대로 '꿈'에 그쳤고, 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복지 없는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다른 성장은 가능했을까

이 책은 박정희 시대에 경제가 고도성장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경제성장이 재벌 중심 체제, 적대적 노사관계, 사회 양극화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고,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박정희식 경제 성장에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당시에 다른 방식의 성장이 가능했을까? 경제 성장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면서 빈곤에서 벗어난 신흥공업국이 있었던가? 장하준은 노동자·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미국·영국 등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민주주의를 우리보다 더 혹독하게 억압하면서 경제성장도 이루지 못한 제3세계 국가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박정희의 경제 성장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지 회의가 든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장하준을 비롯한 발전국가론자들을 비판하지만, 아직까지는 발전국가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다른 방식의 경제 성장이 얼마나 가능성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이종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니까 '박정희 개발 독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결론은 대충 이렇게 정리되겠군요.
 '박정희라는 인물이 꼭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독재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 개발이 필요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도 박정희의 경제 개발과 같은 적극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방식의 경제 개발이. 그 과정에서의 착취와 저임금 구조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했으면 좋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학은 정말 우울한 학문 같다고…

-<쾌도난마 한국경제> 70p~71p

<박정희의 맨얼굴>을 읽고도 박정희식 경제 성장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토머스 칼라일이 말한 '우울한 학문'이라는 별명이 경제학과 너무나 어울린다는 생각만 든다.

다음에는 박정희식 경제 성장 외에도 다른 성장은 가능했음을,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고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성장도 가능했음을 입증하는 책을 읽고 싶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박정희의 경제 성장은 과장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우울하지 않은 경제학은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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