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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사회문화사 - 정부 권력과 담배 회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ㅣ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990년대의 강준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지금의 강준만이 다소 낯설어 보일지 모른다. '조선일보', '김대중', '전라도' 같은,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금기와 성역에 거침 없이 메스를 들이대며 실명 비판을 감행했던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히 사회적 발언에 앞장섰던 지식인이었다.
사회적 논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전투적 자유주의자', '지식전사'가 변했다. 2003년의 민주당 분당은 강준만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강준만은 시사적 글쓰기보다 교양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모든 것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야심 찬 포부 아래 '커피', '축구', '강남', '어머니' 등의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담배의 사회문화사> 역시 그중 하나다.
그의 변화를 두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지만, 강준만의 작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담배의 사회문화사>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담배의 사회문화사>는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에 담배가 들어왔을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담배와 흡연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담배 산업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였다.
'페미니스트'가 된 담배회사 사장
담배 산업은 판매촉진을 위해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이용해왔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예가 바로 '자유의 횃불(torches of freedom)' 행진이다.
1929년 초,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의 사장인 조지 워싱턴 힐은 '미국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던졌다. 여성의 담배 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이에 버네이스는 담배를 여성해방과 연결한 '자유의 횃불' 행진을 조직했다. 맨해튼, 보스턴,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버네이스는 배후에 아메리칸토바코가 있다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이 퍼레이드를 철저하게 문화적 사건으로 포장했다.
'자유의 횃불' 행진 이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전보다 관대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잡지에는 "이제 여성도 남편이나 형제들과 함께 맞담배를 즐길 수 있다"는 광고가 실렸고, 힐의 의도대로 여성의 담배 소비량은 늘었다.
1929년의 여성 흡연은 1923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페미니즘 담론을 이용해 담배 산업을 성장시킨 것이다. 1967년, 미국에서 출시된 담배 '버지니아 슬림' 역시 광고문구를 여성해방 메시지와 연결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은 페미니즘이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페미니즘 역시 남성 우월주의에 맞서기 위해 담배를 이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담배의 사회문화사>에서는 미국의 사례만 나와 있고, 한국에서 페미니즘과 담배 산업이 결합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담배의 사회문화사>는 어디까지나 한국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기에 더 그렇다.
애연가이기보다 애향가이고 싶다... '내고장 담배사기운동'
1989년 담배소비세가 국세에서 지방세로 편입된 후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수입 확대를 위해 '내고장 담배사기운동'을 벌였다. <한국일보>(1991년 6월 2일자) 사설은 "지방공무원들이 지방재정의 확보를 위해 전단, 스티커에 심지어는 일회용 라이터까지 돌리며 '내고장 담배피우기'의 홍보 선전원으로 뛰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내고장 담배사기운동'에 열을 올리는 행태를 비판했다.
담배소비세가 지방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열심이었던 것일까?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정성을 쏟을 만했다.
1991년 담배소비세가 전체 시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서울 18.1퍼센트, 5개 직할시 21.5퍼센트, 기타 지방의 시는 평균 37.4퍼센트였고 군은 평균 53.7%에 달했다. 특히 경상남도 통영군과 강원도 양구군은 담배소비세 비중이 전체 군세의 75%를 차지했고,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인제군, 화천군, 전라남도 신안군, 경상북도 금릉군 등도 70%를 넘어섰다. 담배소비세로 먹고사는 농촌과 지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107p
이처럼 담배소비세가 지방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기에 지방공무원들은 애향심을 이용해 담배 판매에 열을 올렸다.
"애연가이기보다 애향가이고 싶다."
부천시에 설치됐던 '내고장 담배사기운동' 홍보판 문구다. 그래도 지방재정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을 동원한 것보다는 양심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골초들의 확신은 '담배 마케팅'의 산물"
강준만은 '맺는말'에서 앨런 브랜트의 "담배는 선천적인 특성보다 판촉에 의해 의미가 정의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담배의 역사는 곧 판촉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담배 회사와 정부 권력이 페미니즘이나 애향심 등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며 이익을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강준만은 "골초들이 담배에 대해 나름대로 품고 있는 확신은 실은 '담배 마케팅'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흡연의 이유를 단지 '담배 마케팅'에만 돌릴 수는 없다. '담배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의 마음 한구석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뭔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아메리칸 토바코의 상술이 통했던 것은 흡연에 있어서도 남녀가 불평등한 현실에 불만을 품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내고장 담배사기운동'이 성공한 것 역시 지방민들이 애향심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배회사와 정부의 마케팅 전략만 탓할 것이 아니라 왜 그 전략이 먹혔는지, 근본적으로 흡연자들은 왜 담배를 피우는지에 대한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어리석어 '담배 마케팅'에 넘어갔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다행히 그에 대한 실마리는 있다. 강준만은 담배와 전쟁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며 "전쟁하듯이 사는 사람들에게, 금연의 필요성은 그만큼 약화된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소득층, 저학력층일수록 흡연자가 더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담배 마케팅'뿐만 아니라 전쟁하듯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에도 있지만, <담배의 사회문화사>는 실마리만 제공할 뿐 이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 분석을 좀 더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쉬움 남지만 비판하기는 망설여지는 책
<담배의 사회문화사>는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책이었지만, 막상 읽고 난 후에는 조금 아쉬웠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담배의 사회문화사>를 과하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강준만의 수많은 책 가운데는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는 책들도 여럿 있다. 그 자신도 부끄럽게 여기는 책이 많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생각할 점이 있다. 강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책을 쓸까. 학문의 상아탑에서는 어떤 논의가 오가고 있는지 몰라도, 대중을 상대로 '한국 담배의 역사와 사회상' 같은 주제로 쓴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강준만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담배의 사회문화사', '커피의 사회문화사', '룸살롱의 사회문화사' 같은 것들이 기록될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그 작업을 해야 하지만, 누구도 그런 작업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강준만은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때로 강준만의 작업이 미흡하다 여기면서도 그를 비판하기 망설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그 같은 작업을 하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거대 담론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일 듯싶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거대 담론은 공허하다.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이 만날 때, 비로소 거대한 이야기들은 현실감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매일 타는 자동차, 매일 마시는 커피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한국 사회의 문제가 결코 나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지식인들이 강준만의 작업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축구 전문가가 쓴 '축구의 사회문화사'나 보수의 시각에서 쓴 '담배의 사회문화사'가 한 권쯤 있으면 하고 바란다. 적어도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나는 항상 강준만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