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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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명작 동화의 세계는 곧 교훈의 세계다.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개미와 베짱이>는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명작 동화 속에 담긴 교훈 때문에 오늘도 부모들은 잠자리에 든 어린 자녀의 머리맡에서 명작 동화를 읽어준다. 

그러나 이 도덕적이고 건전한 명작 동화는 교훈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무서우리만치 가혹하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분홍신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빨간 구두> 이야기다. 가난한 소녀가 '분수도 모르고' 분홍신을 욕망했기로서니 그게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일까? 교훈도 좋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명작 동화가 왜 이렇게 잔혹한 것일까?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박현희 저, 뜨인돌 펴냄)는 그 오래된 질문의 답을 알려줬다. 명작 동화 속에 담긴 수많은 교훈은 사실 권력자들이 만들어놓은 규율임을, 그래서 그 교훈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피노키오가 코가 길어진 이유?... 착한 아이의 필수조건 '학교'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다. <피노키오>는 온갖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명작 동화의 전통적인 공식에 충실한, 대표적인 명작 동화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피노키오가 그렇듯 온갖 고난을 겪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착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노키오가 착한 아이가 아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학교에 가는 대신 유랑극단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납치되고, 당나귀가 되어 죽도록 일하고, 고래 뱃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온갖 고난을 겪는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고생을 해야 할 만큼 학교는 <피노키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노키오>가 발표된 19세기 말은 근대적인 학교가 성립되던 시기였고, 학교는 공장주들이 필요로 하는 미래의 노동자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나아가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습관을 길러줌으로써 당대 사회가 요구하던 노동자를 양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죽을 만큼 고생해야 할 정도의 '죄'다! 

그렇다면 학교를 싫어하던 피노키오는 어떻게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노동자가 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병든 제페토를 간호하기 위해 피노키오는 양수기를 돌리고 여러 종류의 갈대 바구니를 만들어 팔았다. 그 순간 피노키오는 착한 아이가 됐고, 요정은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즉,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거나 노동을 해야 한다. 학교 역시 노동자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임을 고려하면 착한 아이의 필수요건은 노동이다. 이처럼 <피노키오>는 표면적으로는 "착한 아이가 돼라"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교훈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가 돼라. 자본주의에 순응하라. 이 규율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대가를 치를 지어니."

우리는 '샛길'을 택한 이들에게 빚지고 산다

'자본주의에 순응하라'는 '교훈'을 설파한 <피노키오>. 이제 '교훈'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그토록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교훈'을 어기는 것은 곧 체제에 도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균열에서부터 체제의 붕괴가 시작될 수 있으니 사소하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가난한 소녀 따위가 분홍신을 욕망한 것은 '죽을 죄'다.

<빨간 모자> 역시 '교훈'을 어긴 자에게 엄중한 시련을 마련했다. 빨간 모자 소녀는 샛길로 빠지지 말고 곧장 할머니 댁에 다녀오라는 분부를 어겼다가 늑대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빨간 모자>의 교훈은 "큰길 천국, 샛길 지옥"이다. 

그러나 만약 빨간 모자가 샛길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빨간 모자는 무사히 심부름을 마쳤겠지만, 사람들은 계속 늑대를 피해 큰길로만 다니고 샛길로 다닐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빨간 모자가 샛길을 선택했기에 샛길은 또 하나의 길이 됐다.

결국 빨간 모자는 늑대를 물리쳤고, 이제 누구든 마음 놓고 들판의 어느 길이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쁜 꽃이 유혹하면 꽃을 꺾으러 가도 되고 산딸기를 따고 싶으면 따러 가도 된다. 빨간 모자 덕분에 세상은 사방팔방으로 길을 내며 우리를 맞게 되었다. 고마워, 빨간 모자야.-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88p

일찍이 루쉰이 말했듯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샛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군가 용기 내어 길 밖의 길, 길 아닌 길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수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고, 그러면 지금은 샛길에 불과한 길도 큰길이 될 테니.

물론 큰길이 물리적 의미의 큰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따라야 한다고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규율들 역시 큰길이다. 명작 동화들은 항상 우리에게 큰길을 권한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 성실해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을 꾸지 마라 등등. 그리고 이 큰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늑대가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샛길이 있음을. 거짓말이 때론 상대방을 위한 배려일 수 있고, 조금 불성실하더라도 그게 죽을 죄는 아니며, 지금 내 처지가 보잘것 없더라도 누구나 꿈꿀 권리는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샛길이 우리의 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빨간 모자와 같은 '샛길족'을 지지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샛길을 택한 이들에게 빚지고 산다" 어쩌면 진짜 인생은 샛길에 있는지도 모른다.

명작 동화의 교훈을 의심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의 장점은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명작 동화의 숨은 모습을 쉽고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현직 교사로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동원해 능숙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솜씨는 독자를 명작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저자는 <토끼와 거북이>에서 '불공정한 규칙을 조롱하라'는 주제를 읽어낸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애초에 토끼 입장에서는 이겨봤자 얻는 것이 없고, 지면 개망신만 당할 경주였다. 여기서 저자는 제3자의 존재를 상상한다. 이 경주는 토끼와 거북이의 의도와 관계없이 제3자가 이득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토끼는 경주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고, 경주 중에 낮잠을 즐김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조롱했다.

그렇다면 거북이는 어땠는가? 저자는 거북이가 야단스럽게 토끼를 깨우지 않고, 토끼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더 멋진 쪽은 거북이라 말한다. 하지만 거북이가 토끼를 깨우지 않은 것은 정말 토끼의 선택을 존중해서일까? '괜히 깨우지 말고, 이 기회를 잡아서 우승하자'는 계산이 깔렸던 것은 아닐까? 

나는 거북이가 토끼처럼 규칙을 조롱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거북이는 토끼 옆에서 잤어야 했다. 누가 나중에 왜 그 좋은 기회를 놓쳤느냐고 질책하면 "토끼가 자는 걸 보니까 갑자기 나도 너무 졸려서"라고 능청을 떨었어야 한다. 혹은 심판을 찾아가 "이 경기는 무효야! 난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거나, 아예 출발선으로 역주행해야 했다. 그러나 거북이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토끼가 자거나 말거나 경주는 계속 진행됐고, 거북이는 승리했다. 나는 거북이가 비겁했다고 생각한다. 거북이는 이기고 싶었을 뿐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명작 동화가 전하는 '교훈'을 의심함으로써 그 '교훈'이 사실은 권력자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규율임을 보여준다. '교훈'의 세계가 강요하는 큰길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샛길을 보여줌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명작 동화의 세계를 의심하는 순간 우리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 셈이다. 그러니 더 많이 의심하라, 그러면 더 넓은 세계가 열릴 테니.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는 이처럼 우리가 이제까지 몰랐던 샛길의 세계,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위한 우리의 의심 여행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도 오랜만에 '샛길족' 빨간 모자의 이야기나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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