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다. 졸업을 앞두고 아무런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터.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한 번 간 적 없고, 그럴듯한 자격증 하나 없는 내 모습을 보며 '대학 다니는 동안 뭘한 걸까'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래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집어든 것은.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야 하는 아픈 그들을 따뜻한 위로의 말로 보듬어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지금 느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조금이라도 위안받고 싶었다. 더구나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멘토'가 쓴 책이라면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아쉽게도 '모든' 청춘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렇게 '빨리' 취업하려고 하느냐고?

이 책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꽃마다 제각기 피어나는 계절이 다르듯 그대라는 꽃이 아직 피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피어날 때가 오지 않았을 뿐 때가 오면 어느 꽃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게 꽃피울 것이니, 그때를 위해 당장의 취업에 연연하기보다 훗날을 위한 내공을 쌓으라고 권한다.

지금 당장 어떤 성취를 이루지 못한 것에 불안해하지 말고 훗날을 위한 내공을 쌓으라는 그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의 조언은 지금 당장에 연연하지 않고 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청춘들에 그 조언은 공허하다.

최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발언으로부터 재발된 반값등록금 논쟁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등록금 때문에 고통받는 많은 대학생은 반값등록금에 지지를 보냈고,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보도했다. 6월 10일자 <경향신문> 기사 <등록금 이것이 문제다 - 요즘 대학생 등록금 해결법> 역시 등록금 때문에 고통 받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등록금을 대출받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해 경기 성남시에 소재한 경원대를 졸업한 김모씨(28). 올해 어렵게 취직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팍팍하다. 대학시절 등록금을 대출받았기 때문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등록금을 대출받았던 김씨의 빚은 3000만 원. 

김씨는 어머니와 둘이 사는 모자가정이지만 자신이 성인이라 기초생활수급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등록금은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장래를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결혼할 자금도 문제지만 자신의 빚을 여자친구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또 번듯한 직장까지 구해도 등록금 빚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어려운 사람들도 공부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울먹였다.

울산지역 사립대 4학년에 재학 중인 박모(25)씨는 취업 준비에 바빠 아르바이트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 탓에 커진 것은 빚더미. 지금까지 빌린 학자금은 1500만 원에 달한다. 박씨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빚이 될 것 같다"며 "친구 중에는 벌써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인 영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지만 빚 때문에 무조건 취업해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아니 대학생일 때부터 이미 빚쟁이인 대학생들에게 빨리 취업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빚 때문에 무조건 취업해야 한다"는 이에게 '그대라는 꽃이 필 계절은 따로 있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오늘날 청춘들이 빨리 취업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조급증에 걸려서가 아니다. 빨리 취업해야만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상당 부분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 등록금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당수의 대학생들에게 '조급해 할 필요 없다. 빨리 취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조언은 그래서 허망하다. 그러나 이처럼 가난한 대학생을 고려하지 않은 조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경험한 것, 그것이 자신의 세계다

김난도 교수는 "대학생 때 수입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과외를 의뢰하는 건수도 많았고, 단가도 높았"기 때문에 과외로도 충분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야단쳤다. 저자는 과외로 얻은 수입 덕분에 목표의식을 잃고 나태해졌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젊은 날의 경제적 풍요는 때로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저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이 조언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사에 나온 것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수많은 대학생이 이러한 충고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독이 돼도 좋으니 한번 경제적 풍요를 누려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특히 다음 대목에서는 거부감마저 든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긴다. 알바가 가혹하게 저임금이면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힘들고 허탈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입이 지나치게 좋은 경우다. 일부의 사례이지만, 그 알바의 수입이 꽤 좋은 경우에는 '굳이 졸업을 해야 하나?' 혹은 '취업을 해도 초봉이 형편없다던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하니 말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279p~280p

김난도 교수에게 묻고 싶다. 수입이 지나치게 좋아서 독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게 정말 알바가 가혹하게 저임금인 것보다 더 큰 문제인지. 혹시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저자의 이 같은 인식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대학생 때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풍요'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었다. 대학교수가 된 후에 만난 학생들도 서울대라는 한정된 세계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들 중 다수는 김난도 교수가 그랬듯이 과외를 통해 경제적 풍요까지는 누리지 못하더라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벗어난 세계, 즉 가난한 대학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했기에 '알바가 가혹하게 저임금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수입이 지나치게 좋은 경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서울대 교수라도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자기 혼자 살아남는 것뿐... 바뀌는 것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청춘들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도 청춘들이 직면한 문제가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A 박사의 이야기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과 면담했던 A 박사의 이야기를 꺼낸다.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던 A박사에게 "보수가 넉넉한 데다 기업문화가 좋기로 유명한 어느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입사를 제안해왔"는데, 그는 결국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다. 저자는 A 박사의 그 결정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참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 바보 같음이 그를 더 빨리 꿈에 데려다 주리라. - <아프니까 청춘이다> 30p

일단 개인적으로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을 좋아하며, 그런 점에서 A 박사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 A 박사의 결정이 "그를 더 빨리 꿈에 데려다" 줄 것이라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저자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교수 채용의 문은 너무도 좁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린다고 어떤 보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우리 전공은 학계가 좁은 편이어서 채용공고가 자주 나지 않는다. 1년만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기대는커녕, 통상적인 예측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27p

김난도 교수가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 A 박사의 결정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단정하는 듯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A 박사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교수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꿈이 이뤄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A 박사가 자신의 꿈을 이뤄 교수가 됐다고 해도 문제다. 그가 꿈을 이룬 대신, 또 다른 수많은 A 박사가 교수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애정을 갖고 청춘에게 건넨 말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그가 말한 대로 빨리 취업하는 데 연연하지 않고 장래를 위한 내공을 쌓는다면, 그의 조언에 따라 내공을 쌓은 사람은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취업하는 대신 떨어져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혼자 살아남는 것일 뿐.

혹은 수많은 청춘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내공을 쌓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제는 취업시험에서 내공을 가진 이들끼리의 대결이 시작된다. 스펙에서 내공으로 평가의 잣대가 바뀌겠지만, 그뿐이다. 이제 내공의 깊이가 달리는 수많은 청춘들이 낙오할 것이다.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위로가 아니다 

김난도 교수는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청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20대에 겪었던 경제적 풍요처럼 공감하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이나 실패담까지 털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김난도 교수의 진정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쟁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대단한 비법을 제시하더라도 누군가는 낙오하고 아플 수밖에 없다. 청춘 개개인이 아니라 청춘이라는 집단을 놓고 봤을 때, 개인적인 해법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글의 서두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모든' 청춘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별 의미 없는 조언, 때로는 조언이라 할 수도 없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우리가 아픈 게 단순히 청춘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청춘들은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프고, 취업의 벽이 너무 높아서 아프고,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가기에는 대기업과의 격차가 너무 커서 아프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은 상당부분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 속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그러나 김난도 교수는 청춘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 그 속에 담긴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김난도 교수의 위로가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건 그의 안일한 현실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위로가 아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이다. 우리의 고통이 모두 청춘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볼 수 없다. '그냥 청춘'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픔과 '2011년 한국사회의 청춘'이기에 겪는 아픔을 분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청춘을 괴롭히는 '사탄의 시스템'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탄의 시스템'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청춘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위로받지 않아도 좋으니 위로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문제의 해결이다. 

물론 청춘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청춘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의 문제에 공감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인생 선배, 위로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위해 나서는 인생 선배가 있다면 그 문제는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생 선배들의 존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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