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권력 - 자기-경영적 주체의 탄생과 소수자-되기
사토 요시유키 지음, 김상운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2008,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쳤을 때 수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말했다. 1%의 탐욕에 맞선 99%의 저항, 점령하라(Occupy)' 운동은 월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주류 언론들마저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경향신문>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신자유주의는 살아있다. 금융위기의 타격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느 학자는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라고 탄식했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잘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 몰랐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올바르게 저항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와 권력>(사토 요시유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을 펼쳐들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를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하면 거기에는 민영화’, ‘감세따위와 더불어 작은 정부라는 말이 빼놓지 않고 들어갈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항상 주장한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자신들의 주장을 쉽게 뒤엎었지만, 그들의 기본 주장이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미셸 푸코의 담론을 빌려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정부 개입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시장에서의 경쟁을 중시하는데 여기서 경쟁이란 결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내적 논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경쟁이 개개인의 활동을 조절하고 사회를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생산되어야 한다.”(36p~37p)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 정부는 시장의 조건, 즉 법제도에 개입함으로써 경쟁을 생산한다. 예를 들면 정부는 종신 고용 제도의 철폐, 능력별 급여의 도입 등을 통해 기존에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 적극적 경쟁을 창출한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환경 개입 권력이라 칭하고, 기존의 규율 권력과 대비시킨다. ‘규율 권력은 학교, 감옥 등의 규율 장치를 통해 개개인에게 규범을 내면화시킴으로써 권력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경쟁을 생산함으로써 시장 원리를 사회 전체에 관철하고, 그것을 끝내 개인의 내면으로 침투시켜 자기-경영을 하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기-경영이란 말이 낯설지도 모르지만, 자기-경영은 우리의 일상이다. 자신의 시간과 인맥을 관리하고, 스펙과 경력을 관리함으로써 더 매력적이고, 유능한 인간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 우리 자신이 각자의 CEO가 되어 자신의 삶을 경영하도록 만드는 게 자기-경영이다. 취업을 위해, 혹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이미 자기-경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정부는 경쟁을 생산하는 것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개입한다. 주권 권력의 강화, 즉 치안과 안보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조지 부시 정권이 대테러 전쟁을 벌이고, 사르코지 정권이 이민 문제에 강경 대응한 것이 좋은 사례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강화된 주권 권력이란, 안전 확보라는 패러다임 아래서 예외 상태를 규칙화시키고, 정치체제에 통합시킬 수 없는 자를 물리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통치성을 의미한다.”(112p)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의 시조쯤 되는 레이건 정부가 노동조합을 탄압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주권 권력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레이건 정부는 1981년의 항공관제사 노동조합 파업 당시 12,000명의 파업참가자 전원을 해고하고, 항공관제사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대표권을 빼앗았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에 대한 공격을 주요한 특성으로 삼고 있고, 그들의 저항을 분쇄시키기 위해 치안 논리를 강화한다. 그것은 레이건 정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통치는 통념과는 달리 정부의 개입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정부는 시장의 조건에 개입함으로써 경쟁을 생산하고, 치안과 안보 논리를 강화함으로써 을 배제한다. 여기까지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특성을 분석한 1부 내용이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일의 어려움

 

1부를 읽고, 평소 내가 생각하던 신자유주의의 특성을 명쾌하게 설명해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을 모색한 2부를 읽으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2부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탈주체화/탈복종화 전략이 필요하고, ‘소수자-되기를 실천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 권력의 내면화를 내부에서부터 해체하는 탈복종화 전략을 채택하고, 주권 권력의 강화가 사회적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나타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소수자-되기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따라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팔루스니 탈영토화니 지층화니 기관 없는 신체니 하는 낯선 용어가 마구 등장하는데 들뢰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따라가기 힘들다. 1부에서 주된 이론적 근거로 삼은 미셸 푸코의 책도 안 읽었는데 2부가 유독 1부보다 어려운 것을 보면 들뢰즈와 가타리의 논의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듯하다. 2부를 읽으며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상징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자유주의와 권력>을 읽을 생각이 있다면 들뢰즈와 가타리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가 먼저 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2부는 어려웠다는 말만 할 수는 없으니 아쉬웠던 점을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2부가 1부보다 훨씬 난해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구체적인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을 인용해 신자유주의가 경쟁을 생산한다는 점을 설명했고, 주권 권력의 강화를 이야기할 때는 조지 부시나 사르코지를 예로 들어 저자의 분석이 한층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반면 2부는 구체적인 사례 적용이 거의 없어서 내용 자체가 현실과 별 관계없는 탁상공론처럼 느껴졌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전략을 설명하면서 현실의 사례, 이를테면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이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중남미의 좌파 정권을 예로 들었다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설득력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1부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명쾌하게 분석하며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정부 개입을 요구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반면 2부는 난해한 데다 구체적인 사례도 거의 없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2부의 난해함은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려는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를 명쾌하게 분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대중적 전략은 없는 현실. 어쩌면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아직도 살아남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일찍이 마르크스가 말했듯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지 않도록, 주권 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대중적인 저항 전략을 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짜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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