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 재특회, 왜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
히구치 나오토 지음, 김영숙 옮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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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주노총한국노총이 공동 주최하는 '일제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합동추모행사'에 참석해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다당시 갔던 곳 모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였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했던 탄광을 개조해 만든 단바 망간 기념관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단바 망간 기념관은 2년 전 기념관 부지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운 이후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극우세력이 한 달에 일백여 통씩 '일본은 강제동원을 한 적이 없다'는 항의 전화를 하고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넷우익(인터넷에서 주로 활동하는 일본 우익 단체를 일컫는 말-기자 주한 명이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와 기념관에 들어와 노동자상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렸다고 한다경찰도 오기 힘들 만큼 외진 곳이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게 아닌지 나까지 불안할 정도였다.

 

일정 내내 우리를 안내했던 분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일명 재특회 이야기를 했다주로 재특회가 이야기하는 재일조선인의 특권이란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2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꼭 재일조선인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재특회 등 일본 극우세력들의 활동에 얼마나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동시에 재특회는 대체 어떤 조직인지왜 있지도 않은 재일특권을 주장하는지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재특회왜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란 부제가 달린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히구치 나오토 저미래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양한 이론과 실증조사를 활용해 재특회로 대표되는 '일본형 배외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분석한다.


"재특회를 낳은 것은 장기불황이 아니다"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표지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표지
ⓒ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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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특회에 대한 기존 담론은 일본사회의 구조변동에 따른 불만과 불안이 재특회의 탄생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가 쓴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 대표적인 사례다이 책은 일본에서 고단샤논픽션상과 일본저널리스트상을 수상했고한국에서도 일베를 재특회와 견주어 설명하는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야스다 고이치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서 "지금의 차별적배외적 운동은 현실의 온갖 불만과 불안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고 있다"(7)고 주장한다그는 재특회 회원들을 "다들 힘들어보이는 사람들"(367)로 표현하면서 1990년대 일본사회의 구조 변화 속에서 경제적 불안정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고용 유연화 정책 탓에 기업이 정규직 사원을 큰 폭으로 줄이고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을 찾아 나서면서 배외주의 운동이 성장했다는 주장이다.


야스다 고이치가 인터뷰한 프리랜서 작가 시부이 데쓰야도 비슷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급증했습니다정규직 자리를 두고 가혹한 의자 놀이가 시작된 거죠의자가 남던 시대라면 외국인에게 신경 쓰지 않고 관용적일 수 있었어요그런데 의자가 부족해지면서 먼저 앉아야 되는 건 일본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거죠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외국인은 나가라는 욕설로 바뀌었고요."-<거리로 나온 넷우익> 350


이런 설명이 사실이라면 "우리(재특회)는 일종의 계급투쟁을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주장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고엘리트 비판입니다"(재특회 홍보국장 요네다 류지)라는 주장도 그저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물론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재일조선인은 특권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재특회의 '계급투쟁'은 망상에 기반을 둔대단히 기괴하고 비틀린 '계급투쟁'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는 "재특회를 낳은 것은 장기불황이나 사회 불안의 증대라는 지금 현재의 문제가 아니다"(<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6)고 단언한다.

 

그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등장하는 인물 중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해도 좋을 사람은 7명에 불과하며그 중 다수가 체포자가 속출한 '팀 간사이'(재특회를 중심으로 간사이 지역에 거주하는 우익 활동가들이 만든 모임교토 조선제1초급학교 앞에서 "조선학교를 부숴라"면서 집회를 하고도쿠시마 현 교직원 조합 사무실에 난입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벌여 다수의 체포자가 나왔다-기자 주관계자이며양키 문화를 농후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외주의 운동에서도 특이한 존재라고 반박한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등장하는 인물 38명 중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해도 좋을 사람은 7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파란색 표시가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이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등장하는 인물 38명 중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해도 좋을 사람은 7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파란색 표시가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이다.
ⓒ 히구치 나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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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나오토 교수가 재특회 25명을 비롯한 배외주의운동 활동가 34명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정규직이 30명인 반면 비정규직은 2명에 불과하다. 학력과 직업 면에서도 대학(중퇴, 재학 포함) 24명, 화이트칼라 22명으로 고학력 화이트칼라가 많은 편이다. 통념과 달리 재특회의 주류는 하층계급이 아닌 것이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가 배외주의운동 활동가 34명을 조사한 결과 대학(중퇴, 재학 포함) 24명, 화이트칼라 22명으로 고학력 화이트칼라가 많은 편으로 나타났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가 배외주의운동 활동가 34명을 조사한 결과 대학(중퇴, 재학 포함) 24명, 화이트칼라 22명으로 고학력 화이트칼라가 많은 편으로 나타났다.
ⓒ 히구치 나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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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특회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재특회에 뛰어들었는지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저자는 "야스다의 저작에 등장하는 인물 중 '나무 심는 기술자'였던 다르비슈의 경우도 문제는 학력이나 직업이 아니라 어머니가 이란인이라는 사실이었다(중략)'생선가게 점원'인 게이지로도 팀 간사이 리더의 멋있는 모습에 매혹되어서이지 그것이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116)라고 지적한다.


사실 서구의 극우 연구를 봐도 희소자원 획득을 둘러싼 집단 간의 경합이 민족적 분쟁의 배경에 있다는 '경합론'은 현실과 그다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단순히 실업률이 높은 지역의 유권자는 오히려 극우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실업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극우가 아니라 경제 정책을 기대할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재일 특권은 신빙성 낮아... 진짜는 자학, 반일 프레임"

저자는 재특회를 보수주의 정치의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일본 정부는 1980년대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이유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제재를 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배외적인 정책을 취했고재특회의 주장과 행동도 일탈적인 스타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제까지 일본 정부나 매스컴이 해온 이야기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수세력이 이제껏 주장해온 근린제국 문제(한국북한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분쟁영토분쟁 등을 가리키는 말-기자 주)와 역사수정주의(이미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해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려는 경향여기서는 일본이 침략전쟁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부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기자 주)가 배외주의로 들어가는 입구다.

 

앞서 언급한 배외주의운동 활동가에 대한 조사에서 배외주의운동에 관계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한국북한중국에 관련된 사건을 꼽은 사람이 11이와 관계되는 역사수정주의까지 포함하면 동아시아 관련 사건을 든 사람이 19명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문제를 든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가 재특회 25명을 비롯한 배외주의운동 활동가 34명을 조사한 결과 배외주의운동에 관계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한국, 북한, 중국에 관련된 사건을 꼽은 사람이 11명, 이와 관계되는 역사수정주의까지 포함하면 동아시아 관련 사건을 든 사람이 19명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문제를 든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히구치 나오토 도쿠시마대학 교수가 재특회 25명을 비롯한 배외주의운동 활동가 34명을 조사한 결과 배외주의운동에 관계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한국, 북한, 중국에 관련된 사건을 꼽은 사람이 11명, 이와 관계되는 역사수정주의까지 포함하면 동아시아 관련 사건을 든 사람이 19명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문제를 든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 히구치 나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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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일특권은 가짜 쟁점에 가깝다히구치 나오토 교수는 "재일 특권에 관하여 경험적 신빙성이 발생하는 사례는 현실에서는 소수였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은 '자학', '반일'이라는 우파 사회운동 전체를 결속시키는 마스터 프레임의 존재였다재일 특권을 공언하는 정치가를 찾기는 어렵지만역사수정주의나 근린제국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정치가는 끊이지 않는다재일 특권 프레임은 그러한 자학반일의 하위 프레임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재일 특권이라는 경험적 신빙성이 낮은 프레임은 자학반일이라는 근린제국재일 코리안일본의 좌파라는 적수를 하나로 취급하는 프레임에 의해 보강된다."-<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215


실제로 히구치 나오토 교수가 조사한 재특회 회원 A씨는 "전후 문제는 재일 문제에 집약돼있다"고 말한다.


"(재일 특권에 매달리는 것은전후 문제는 재일 문제에 집약되기 때문입니다아사히신문의 니시모토 기자가 훌륭하게 고찰해주셨습니다만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전후문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기 모인 목적은 재일 특권 문제라고재일 특권 문제는 전후 문제의 상징이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어주셨어요...GHQ가 일본에 재일이라는 쐐기를 박고 사라졌다는 것이죠...결국은 재일이라는 존재를 남겨두면 일본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사실 그렇게 되었지만."


말하자면 전승국들이 일본에 전후 체제를 강요한 것이 전후 문제이고재일조선인은 전승국이 박은 '쐐기'이기 때문에 재일조선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재일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도 여전히 재일조선인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 재일특권 문제는 표면적인 쟁점일 뿐핵심은 일본의 식민통치 등 과거사 문제인 셈이다.


"역사문제 해결이 배외주의에 대한 근본대책"

현재 재특회는 과거 무섭게 성장하던 기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일본사회 안에서 재특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재특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재특회가 재일조선인들에게 '바퀴벌레한반도로 돌아가라등의 혐오발언을 하며 벌인 시위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1,20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올해 4월에는 재특회 간부 니시무라 히토시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히구치 나오토 교수는 재특회를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그의 표현을 빌리면 "배외주의운동은 단순히 민족차별주의로서의 재일 코리안 배척이 아니다. '주류의 역사에 대하여 불협화음을 내는존재인 재일 코리안을 오욕의 역사와 함께 말살하려는 욕망이 바탕에 있다."(372~373따라서 "역사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배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6)

 

결국 1945년 종전 이후 70여 년 간 해결되지 못한 역사 문제가 일본의 침략전쟁위안부 문제 등을 부인하는 역사수정주의를 낳았고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한 정보가 1990년대 이후 인터넷 등을 통해 대중화되면서 오늘날 재특회라는 혐오의 결정체를 탄생시킨 셈이다.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과거는 죽지 않으며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그의 말처럼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어중간하게 방치해뒀던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기는커녕 더 악화돼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이미 지나간 일이라고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될 거라고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대신 "오욕의 역사를 말살하려는 욕망"에 맞서 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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