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벼랑 끝의 교사, 다시 교실 문을 열다 -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의 시대, 교육을 살리는 회복과 연대의 기록
실천교육교사모임 지음 / 푸른칠판 / 2026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경험했고, 이제는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는 일이 더 이상 뉴스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 씁쓸했다.
나는 스스로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법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평범한 교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아동학대 관련 법을 마주하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교사일수록 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법은 대부분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다. 아동학대처벌법 역시 가정 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피해 아동을 신속히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목적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이 법은 때때로 본래의 취지와 다른 모습으로 작동한다. 학생의 주관적인 감정이 곧바로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많은 교사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최근 시행되는 '학생맞춤통합지원(학맞통)'도 비슷한 고민을 안겨준다. 기초학력 부진, 경제적 어려움, 심리·정서적 위기를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또 하나의 행정업무(폭탄)가 추가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학교마다 예산은 지원되지만 정작 학생을 직접 지원할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전교생이 700명 정도인데 사회복지사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근무했던 학교 역시 모두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반 교사가 복지 업무와 학맞통 업무까지 떠맡게 되고, 학생을 만나는 시간보다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사람 없이 운영되는 정책은 결국 '페이퍼 워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은 법의 무서움이었다. 법은 한번 제정되면 바꾸기 어렵고,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 수많은 교사들이 같은 문제를 이야기해도 제도가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책 속 사례들이 인상 깊었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교사들의 상당수는 교육활동을 매우 원칙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생활지도의 모든 절차를 지키고, 기록을 남기고, 학부모와 소통했음에도 신고를 피하지 못했다. 결국 대부분은 '혐의없음'으로 끝났지만, 수개월 동안 조사받으며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은 혐의없음이라는 결과만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자신이 더 걱정되었다. 평소 교실에서 학생들과 농담도 많이 하고 즉흥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학생들과 관계가 좋을 때는 유쾌한 유머가 되지만,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나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만큼 자신의 말 한마디까지 끊임없이 검열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아동학대 혐의를 소명하는 과정이었다. 경찰 조사만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는 사건 경위서를 제출해야 하고, 학생인권센터의 민원에도 답해야 하며, 교육청에는 교육활동 확인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한 번의 신고만으로도 여러 기관을 상대로 반복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교사를 얼마나 쉽게 의심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처럼 느껴졌다.
물론 학교에도 부적절한 교사가 존재한다. 그래서 학생을 보호하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바라보는 시스템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최근 체벌 부활 논의가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체벌을 원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도 체벌을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고 믿는 교사는 없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학생 시절부터 체벌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인 만큼 체벌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크다.
나 역시 체벌을 해도 되는 세상이 오더라도 체벌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사랑스러워서만이 아니라, 체벌이 학생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 또한 체벌을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결국 체벌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문제는 결코 하나의 법만 고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동학대 관련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학교가 악의적인 민원에 대해 무한정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장치도 필요하다. 반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책임을 묻는 제도 역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유튜브 시사일황 정영진 씨는 악성 민원인의 자녀를 강제전학시킬 권한이 학교에 있다면 상당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학교가 일방적으로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결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민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학교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민원도 존재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는 교사를 존중하고 학교의 교육을 신뢰한다. 결국 문제는 극소수의 악성 민원인이다. 학생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동학대를 주장하거나, 학교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앞으로 교육 현장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단순히 교사들의 억울한 사례를 모아 놓은 책이 아니었다. 학생 보호와 교권 보호가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을 통제할 권한이 아니라, 정당한 교육활동을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와 보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책에서 사례를 전해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