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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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풀린 전차가 질주한다.

첫번째 상황, 앞쪽 선로에는 인부 다섯 명이 있고 갈라진 선로에는 한 명이 있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대로 다섯 명을 치게 할 것인가, 방향을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킬 것인가? 

두번째 상황, 앞쪽 선로에 인부 다섯 명이 있고, 선로는 바꿀 수 없다. 이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는 방법은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려 전차의 진행을 막는 것뿐. 당신이 육교 위에서 이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고 마침 앞에 엄청난 뚱보가 서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책에서

마이클 센델교수가 만든 문제인줄 알았는데 기존에 철학계에서는 유명한 질문이었구나. 몰랐네. 그건 그렇고 이 문제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싸우는데 이문제를 21세기로 대입하면 문제를 조금 바꿔야할듯하다. 논쟁에서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문제가 있다. 트롤리, 전차다. 누가 타고 있고 왜 고장났는가? 트롤리는 과격하게 이분법으로 분류하면 부자들을 위한 트롤리였다. 국가라는 트롤리는 서민도 가끔 황송하게 얻어 타지만 원래 국가라는것이 기득권을 위해 만든어진 것이다. 브레이크 고장날 만큼 신나게 달리고 인부들은 전차가 오는줄도 모르고 일한다. 안전조치도 없고 대책도 없다. 우리 사회와 같다. 그런데 이 논쟁은 다 같은 시민, 서민, 백성들중에서 누구를 죽여야하냐, 누가 희생해야하냐며 말싸움하고 있다. 물론 논쟁을 위해 다른 조건을 감추고 단순화 했다고 하지만 난 다른 조건을 끄집어 내고 싶다. 트롤리에는 누가 왜 타고 있었고 왜 인부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일해야 하는가?  왜 고장 안나게 미리 조치하지 않으며 왜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조건을 만들지 않는가? 왜 시민들 중에서 희생양을 찾고 누군가 죽기를 원하는가? 



처음에는 고상한 철학적 논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햇볕을 덜 쪼여져서 그런지 심사가 뒤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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