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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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델핀 오르빌뢰르 (북하우스)

“내가 몰두했던 건, 내 장례식이었어.”

미리암은 의욕도 욕망도 남아 있지 않던 지난 몇 년 동안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기력이 없어 집 밖을 나가거나 모임에 참여할 어림도 없었다. 그 시절 몰두했던 유일한 관심사. 온통 그 생각뿐이고 온 정신이 쏠려 있던 것은 ‘장례식’이었다.

만약 우리 주변의 누군가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을 한다면 걱정부터 하지 않을까? 혹여나 미리암의 얘기에 동조하는 것조차 타인의 원치 않던 걱정을 껴안게 되는 건 아닐까?

미리암은 여러 해에 걸쳐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했다. 혹시나 편견의 인과관계에 맞아 떨어질까봐 나 역시 염려되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갔다.

미리암은 굉장히 세밀하고 자세하게 장례식의 모든 요소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만들어지도록 구성했다. 장례식장과의 계약서에는 꽃장식 색깔, 고급 음향 설비, 의자 배치, 음악 순서, 조문객이 앉을 자리 등을 작성했다.

그런데 미리암의 이런 태도는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장례식과 죽음에 대한 편견을 환상적인 정원을 바꾸어 놓았다.

“장례식이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 하고 세세하게 계획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 예식의 핵심에 자리한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즉 우리 삶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심을 드러낸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죽음과 관련된 장례식을 계획대로 밀어 붙이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미리암 역시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할 때에만 무기력과 의지 부족에서 벗어나 삶의 욕구가 생겼다.

“Summertime and livin is easy. (여름날에는 삶이 수월하다네.)”

여름날에 삶이 다시 수월해질 수 있다고 했던 바버라 헨드릭스 말처럼, 미리암은 장례식 이후 과거 자신 안에 있던 무언가와 작별했다. 끝을 의미하는 장례의 순간에 무언가 죽어 이제는 그것 없이 지내는 법을 배웠고, 이때부터 자신의 여생이 시작됨을 깨달았다.

랍비 전승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두 가지 세계로 구분한다. 그들은 살아생전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여행할 수 있을 사람들을 위하여 두 세상의 공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있을지 모를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둘 수 있다. 죽음은 두 세상을 분리하지만 때로는 죽음을 실제로 만나야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죽음이란 말을 금기시하고 의심하게 하는 어항 사회 안에서 눈을 꿈뻑꿈뻑, 입도 뻐끔뻐끔한 채 갇혀 있길 원치 않는다. 물고기에게 숨 쉴 수 있는 물을 제공해준다 해도 한계를 자각하는 순간 답답함 밖으로 튀어올라 자신의 세계를 벗어난다. 그럼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p.56 “생애 전체가 그 생의 결말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삶을 결코 그 삶의 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살면서 ‘끝없이’ 계속되리라 여겨지던 모든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말하기 전에,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었을 모든 것을 말할 줄 아는 것.”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벙쩌서는 뭉클해지기도 하고, 한동안 이 페이지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 표시해둔 페이지를 다시 펼쳐 보는데도 처음 읽었을 때와 같은 여운이 그대로 또다시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게 이토록 신비하고 장엄한 일이라는 건 애써 외면하기만 했던 죽음을 직면한 결과다.

내일은 우리의 오늘을 이야기해봐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bookhousebook
#북하우스서포터즈 #책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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