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자들의 브런치
정유나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외로운 자들의 브런치> _정유나/메이킹북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글자인데 그림처럼 보이는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림도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잖아요.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나가면 이 책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별을 맛보다

“언젠가 옅어질 것들, 그것들의 냄새와 색은 내게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잔상에 혀끝을 가져다 대는 게 내가 할 일. 잔뜩 묻어난 별 부스러기들은 내게 녹아든다. 그런 일들이다. 내게 펼쳐지는 것들은. 나의 조각, 나의 일부, 나의 전부. 그래서 나는 뿌리내리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문장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퇴색되고 촉감마저 사라집니다. 밤하늘에 떠있던 별이 아침이 밝아보면 몸을 숨기는 것처럼 언제 있었냐는 듯 상상 속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언젠간 옅어질 것들’. 그래서 오늘은 지금만이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날의 마음들을 오롯이 느끼려고 합니다. ‘그 잔상에 혀끝을 가져다 대는 게 내가 할 일’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많이 담으며 미소 지었던 날인데 이날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행복했었냐는 듯 사라지는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에 인어공주의 결말처럼 눈을 적십니다. ‘그래서 나는 뿌리내리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매일 시간 날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꼭 일기장에 적어 놓습니다. 생각은 사진으로 찍어 놓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잔뜩 묻어난 별 부스러기들은 내게 녹아든다.’
별을 실컷 맛봤던 날이었기를 바라며, 오늘의 별을 밤하늘에 띄어 놓겠습니다.

🌙왼쪽 손
“사실 있잖아, 그런 것들 말이야. 내 왼손을 잡아주고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숨을 느리게 만들어주는 것들. 대충 그런 것들이 내겐 소중하더라고. 오래된 종이에 스민 눈물이, 김이 서린 창문이, 비 오는 오후 차가운 공기가. 그런 것들이 나만의 것이 되어 마음 속에 번져갈 때 나는 꽤나 우쭐해지더라. 내 삶이 낭비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특별히 저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고 또 저만의 해석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쭐해지는 저만의 것은 왼손잡이입니다. ‘내 왼손을 잡아준다’는 것은 제 편이 되어 믿음을 주는 거라고 받아들인다면 ‘하늘로 향하게 하’는 것은 제 꿈을 함께 응원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을 떠오르게 합니다. 숨 가쁘게 쉬며 달려 나갈 때 옆에서 물을 건네주고 있겠죠. 그런 사람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내가 나에게 소중해지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종이에 스민 눈물’ 같은 기억은 ‘김이 서린 창문’ 밖으로 느껴지는 비 오는 오후 차가운 공기’ 같은 분위기를 형성해냅니다. 오늘 흘린 눈물이 분명 빛났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섬광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영원히 당신만의 아우라로 재탄생할 겁니다. 그러니 어떤 날도 낭비인 날은 없으며 내일은 우쭐한 표정으로 아침 햇살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고난의 시대
“고난은 붉은 장미가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가시 돋친 줄기로 몸을 옥죄어 오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아름다움이니, 살이 찢기는 고통은 방관자의 눈살을 찌푸리게만 할 뿐 소용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 그래서 무성하고 탐스러운 장미꽃이 피어있는 곳을 게걸스럽게 탐닉하며 몸을 기울인다. 그 이야기엔 고난과 슬픔과 사랑과 권태가 묻어있다.”

고난을 이보다 아름다운 잔혹 동화처럼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요. 적어도 제가 겪은 고난을 생각해본다면 저는 이 동화 속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몸을 옥죄어’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결국 남는 것은 아름다움뿐이니’ 스스로가 방관자가 되어 고통에서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과 슬픔이 묻어있는’ 장미라도 겁 없이 기꺼이 피를 붙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장미는 몇 송이인가요. 정유나 작가님은 수많은 꽃들을 간직하신 채, 이제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로 우리들 곁에 향기를 남겨주고 계십니다. 외로운 날 달이 뜬 밤 꽃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운 자들의 브런치>였습니다.

*이 리뷰는 작가님으로부터 책을 선물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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