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 돌봄 소설집 꿈꾸는돌 41
강석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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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한숨이 잦은 날이었다.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다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을 태환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어?”
적당한 핑계와 이유를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아이가 나의 등 뒤로 돌아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오늘 엄마가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어깨에서부터 퍼지는 아이의 마음이 가라앉은 나를 일으켰다. 얼마 전에 산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내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30분 남짓 한 시간. 저녁 시간을 보낼 만큼의 힘이 났고 저녁메뉴를 고민하는데 어머님의 전화가 울렸다.
“시장 갔는데 닭이 좋아 보여서 닭볶음탕 했다. 가지고 올라가거라.”
요즘 태환이가 제일 좋아하는 어머님표 닭볶음탕이다. 점심 즈음에 어머님의 세금 신청을 도와드렸다. 우편으로 온 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다고 민망한 듯 부탁을 하셨는데, 그런 도움을 받고 나면 과일이나 저녁 반찬을 만들어 주시는데 같이 먹자는 소리는 하시지 않는다. 편하게 먹으라는 어머님의 배려다. 집에 들어오니 태환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도마뱀들의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저녁상을 차렸고 우리는 한 공기의 밥을 온전히 비웠다.

책을 다 읽었던 날의 저녁이었다. 돌봄으로 이어지는 풍경. 어깨를 주물러주는 아이의 작은 손과 요리를 만드는 어머님의 손, 그리고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는 손까지. 육아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돌봄의 주체로 살아가는 고됨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빈자리와 결핍을 채워가며 나도 돌봄 노동의 주체이자 객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야 안다.

"“낙원”
소리 내어 단어를 말해 보았다. 낯설고 어색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겠지만 악어도 없을 것이다. 등에 멘 가방을 한 번 추켰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가방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언젠가 나도 라마처럼 지금보다 훨씬 큰 가방을 몸의 일부처럼 업고 다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랑을 바라고 청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될 것이다."

소설 속 10대 주인공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돌봄의 몫을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막연한 희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낙원] 속 ‘장해요’처럼 조금씩 무거워지는 가방을 메고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말하는 이야기가 그래서 좋았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고, 우리 모두 그랬다.

“말하기 전에는 막연했다. 선명하지 않으면 모른 척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기록하는 순간, 더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이 무슨 문학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 되고 기록이 되었기에 ‘돌봄’이라는 개념과 가치를 알게 되었다. 삶의 어떤 시기에도 돌봄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각자의 몫으로 수행하는 사소하고 위대한 돌봄의 가치를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알아 가면 좋겠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특히 좋았던 김다노 작가님의 [낙원]. 해요는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한참을 머물렀던 작가님의 말을 남긴다.
“끝을 만들어 가는 건 각자의 자신이라고 믿고 있다.”

"낙원"
소리 내어 단어를 말해 보았다. 낯설고 어색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겠지만 악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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