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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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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책과 더 밀접한 우파, 좌파]

“보수•진보와 달리 우파•좌파는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하는 태도에 따라 나누는 게 좀 더 바람직합니다. (중략) 자본주의의 장단점과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생각할 때, 사회주의 쪽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등을 떠올리지는 마세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놓고 보면 오른쪽에 미국이나 영국, 왼쪽에는 (북유럽 국가 중)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떠올리는 게 더 옳고, 좋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정점’일까, ‘미래의 출발점’일까]

“보수는 신•가족•질서•법•역사•전통•권위•규범•도덕•윤리•자립•근면•절제•책임•품격•안보•애국심 등을 중시합니다. 진보는 인권•정의•해방•관용•미래•참여•연대•변화•혁신•저항•파격•공정•개방성•투명성•다양성 같은 단어를 좋아합니다. 어떤 단어들이 모인 쪽에서 가슴이 뛰는지, 어떤 단어를 보고 ‘이건 나랑 좀 안 맞는데’ 하는 마음이 드는지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갈립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신문의 첫 페이지에 실렸던 사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유난히 또렷한 그 기억의 이유는 나도 모른다. ‘강성 노조’라는 굵은 글씨로 시작된 기사의 제목은 폭력적인 시위대를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도가 다분한 기사였고, 부산에서 자라오면서 오랫동안 그 신문을 읽었다. 보수 일간지라고 불리는 신문을 지금의 나는 극우 일간지라 부른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조금 달랐다. 나의 좌표는 그 만큼씩 이리저리 이동했고, 떨리고 설레었던 첫 대통령 선거 날, 엄마 아빠와는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했다. 


“역사는 인간의 행동으로 만들어지지만 행동할 당시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나의 눈앞에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중 어느 쪽 일까. 시대정신과 정책에 따라 나의 이념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올바른 정당과 정치 문화가 우리 사회에 형성되려면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이롭고’ , ‘의로운’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들을 세계사에서 시작해 영화와 드라마, 책을 폭넓게 넘나들며 쓰인 글로 다시 배웠다. 번역서가 아닌 우리말로 쓰인 정치 교양서였기에 읽기 쉬웠고, 무엇보다 재미있었고, 마지막에 실린 ‘보수 유승민의 가장 진보적인 연설’ 과 ‘진보 노무현의 가장 보수적인 연설’을 뭉클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밝고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빛의 혁명’의 결과물을, 세계 정치사에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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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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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부산으로 내려갔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다시 들었다. 기차 안이었고,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나의 엄마는 ‘‘없다’와 ‘있었다’의 간극’에 머물러 있다. 기차 안에서의 기억이 없는 그 날은 상복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희미하게 시작 된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먼 친척들과 그 보다는 가깝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종종 엄마의 지난 날을 이야기를 했다. 엄마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엄마를 모르는 사람들이 빈소에 모여 엄마의 장례식을 치뤘다. 


“세상에서 사람을 지우는 장이 아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예요. 기억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저는 장례라는 의식을 프로듀싱한다고 생각해요. 장례지도사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보조출연자이기도 한 거죠. 이 무대의 주인공은 고인이고요.”


 책 속에 실린 20년 경력의 이안나 장례지도사의 말이다. 어떤 쇼를 연출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 마다의 죽음과 우는 모습이 다르듯이 장례도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만든 무대의 주인공인 엄마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전장례식을 하시겠어요?

생전장례식 기획자 한주원씨의 인터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지만 너무 급작스럽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남은 사람들과 눈 맞추며 인사할 수 있길, 아니면 간단한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길, 무엇보다 지나온 나의 삶을 후회 없이 되돌아볼 수 있길. 나를 기억하고 나를 말해줄 나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박한 나의 생전장례식을 상상해본다. 

그래, 그 날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죽음과 장례, 애도와 존엄, 그리고 죽음의 순간과 그 이후에도 이루어지는 돌봄과 장례 노동자들의 이야기.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죽은 다음’으로 이어져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삶이 귀해진다. 잘 살고 싶어진다. 

 

“나는 나의 세계와 어떻게 이별하고 싶은가?”

나의 생전장례식에 초대받을 나의 사람들과 느리고 깊게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날을 그려본다.

"나는 나의 세계와 어떻게 이별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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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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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5000년의 문화 민족이지만 문화 쇄국주의는 안 된다. 문화는 가둬 둘 수 없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만나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였지만, 수용만 한 게 아니라 해동 불교와 조선 유학으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오히려 중국에 영향을 줬다. 백제 문화가 일본 문화의 터전이 됐다.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하면 된다. (김성재 간사의 기억)”


1995년 야당시절 <신동아>에 기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글이다. 

K-콘텐츠의 발판이 된 일본 문화 개방을 오랫동안 고민해왔음을 알 수 있는 글에서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앞장서서 대수롭지 않게 법을 무시하고 위반하는 일상에서 친필 메모로 꼼꼼하게 쓰인 대통령의 국정 노트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정치적 승패에 좀 더 민감한 야당 대표의 입장은 대통령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dj가 국정 노트에 적은 첫째 항목, ‘상대를 파트너로 보고 정도(正道)로 대응한다’는 자세가 정치적 대화와 타협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역설적이지만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이 심해질수록, 국민을 위한 성과를 내려면 여든 야든 상대방과 타협하는 길 외에는 달리 길을 찾기 어려워 진다. 대화의 손은 대통령이 먼저 내밀어야 한다. 국정 성과를 내야 할 1차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와 싸우더라도 다시 만나며 재임 기간 동안 여덟 번의 영수회담을 했다는 김대중 대통령. 국정을 협력하기 위해 파트너와 타협하고 소통하려는 정치력이 다른 어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들 보다 빛났다.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는 장미 대선이다. 정치인들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우르르 나온다. 어쩌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이렇게 가벼워졌나. 되돌려야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당신의 진심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일상은 공부-사색-메모-말하기-글쓰기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모든 게 공부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시의 적절한 책을 읽는 동안 플라톤의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곱씹었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 우울이 옅게 깔린 일상을 위로받았다. 누구보다 위대한 우리는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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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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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끊어보려 했던 결심은 그저 조금 줄여보자는 다짐으로 타협했다. 커피와 초콜릿은 나에게 그랬다. 뛰어넘고 싶은 계절인 추운 겨울은 호떡과 군고구마 때문에 기다려지기도 하고, 투박하게 뭉텅 베어먹는 만주는 하나만 먹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디저트를 먹기 위해서 밥을 덜어내는 내가 읽을 수밖에 없었던 달콤함 이었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탄산음료), 초콜릿, 군고구마, 그리고 빙수.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고단했을 암흑의 식민지 조선에서 디저트들은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커피는 삶의 여정에 지친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우아한 음악과 포근한 자리를 제공했던 다방과 함께 인 듯하다. (중략) 이상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다방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크기와 소를 넣기도 했던 이름마저 사랑스러운 호떡, 나의 최애 간식. 우리 동네 시장 입구에 작은 호떡집이 있다. 어묵과 핫도그를 함께 파는데 언제나 나의 선택은 호떡이었고 남편과 아이와 나란히 서서 동그란 반죽이 넓적한 호떡이 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반으로 접어 종이컵에 넣어주시는데 설탕물이 끈적하게 배어 나온 호떡 한 장에 우리는 칼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아주머니가 호떡을 구우신다면 겨울이 시작되겠지만 나는 그 날을 기다린다. 그 시대의 호떡은 중국에서 들어와 만주를 밀어낼 만큼 인기를 끌었고 학생들이 가장 즐겨먹는 간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음식이나 중국인에게는 왜 이렇게 어둡고 불결한 꼬리가 붙어 다녔던 것일까? 영세한 자본을 밑천으로 가게 문을 열었으니 실제 호떡집이나 중국음식점이 어둡고 불결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중국음식이나 중국인을 비하하거나 모멸하게 된 것에는 중국을 부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본의 의도 역시 작용하고 있었다. (중략) 이러한 모멸과 차별은 앞서 말했듯 일본의 의도가 투영된 것이기도 했다. 중국을 부정적 타자로 규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하는 한편, 아시아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 하려던 것이다. 모멸과 차별로 상징되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확신되어갔다.”

 

작은 방석만 한 크기여서 든든한 한 끼가 되었지만 ‘어둡고 불결하다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던 호떡집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었기에 부끄러워하며 먹었다는 나의 호떡의 과거가 어쩐지 슬프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야기에 나의 호떡이 더 애틋해진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음식은 단순히 맛으로만 기억되지 않는 것. 달콤하지 않았을 그 시절의 디저트 이야기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낭만과 눈물과 웃음이 고달프고도 달콤하게 배어 있었다.

 

“바다 없는 항해에 피곤한/ 무리들이 모여드는/ 다방은 거리의 항구......

주머니를 턴/ 커피 한 잔에 / 고달픈 사고를 지지하는

......나.......너”

이용악 <다방>

이상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다방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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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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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나무씨는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일을 하면서 서른 살을 지났다. 그는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도 충실히 살아내고 있었다.

나무씨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조금씩 사회 속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비와 바람과 햇살이 되어준 가족들의 희생과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행했던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자기 돌봄의 가치들이 행간에 빼곡히 심어진 글이었다.

 조현병은 기질적으로 취약한 뇌가 스트레스 상황을 만나 발병하는 질환이며, 100명 중 한 명은 인생에서 만나는 질병이며, 명확한 것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는 것, 그리고 완치란 없고 완화만 있을 뿐이라는 것. 나무씨와 가족들이 애썼던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니 조현병을 바라보던 나의 편견이 희미해졌다.


“그렇다. 글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후 눈을 뜨면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다시 마음의 평정을 잃더라도, 한숨 돌리고 다시 기도하면서 첫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읽고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작가이자 엄마이자 이웃이자 시민으로 쓴 단단한 글이 우리 사회 안에서 돌봄과 교육,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본다. 

불안이 사라졌을 때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심사가 수시로 바뀌는 바쁜 청년. 이 불안 안에서도 이 사람은 생을 꾸리고 자신을 돌보면서 살아간다.

나는, 나와 조금 다른 이 사람의 세계를 알아갈 것이고, 단어가 굶주리지 않도록 자꾸자꾸 말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여기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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