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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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일기 - 시간 죽이기’라는 제목의 에세이는 덕후가 아닌 사람이 쓴 덕후일기라는 사과부터 시작한다. 책의 목차를 훑어봤을 때, 게임에 대한 방대한 내용의 글을 읽었을 때, 좋아하는 주제와 관련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는 걸 알았을 때…….이 정도면 덕후인데? 라고 자주 의심했었다.

“야, 나는 너희들이 솔직히 부러워. 무언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프롤로그에서 정체성을 부인하던 작가님은 “내가 지속해온 오타쿠와의 거리두기 자체가 일종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로 에필로그에서 인정한다.

‘자전거를 좋아해서 자전거 나오는 것만 골라서 봤다 1,2,3,4’ 는 기억에 남았던 챕터. 자전거는 나도 ‘호(好)’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그 온도가 미지근 했나보다. 작가님의 글에 언급된 영화나 다큐멘터리 중에서 본 것이 없다. 우선 ‘이카로스’를 먼저 봐야지.
내가 덕후 일기를 썼다면 제목은 달라졌겠지.
‘책을 좋아해서 책 나오는 것만 골라서 봤다 1,2,3,4’
북 샵, 그레구아르와 책방할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파리의 도서관,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 클럽, 너무 시끄러운 고독,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이제 그것을 보았어,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 군요…….뭐가 더 있었더라?

“탁자 위에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은 거의 다 가물가물 잊혔지만, 우리가 그렇게 잊어버린 시간이 좋은 시간이었다는, 그런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중략) 그런 무용한 것을 위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허황한 한순간은 현실을 사는 내게 조금이나마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신성한 취미를 오래 지켜내고 싶다.”

‘시간 죽이기’라는 말은 언뜻 무용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하루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마저 기꺼이는 아니더라도 끝끝내 마무리를 해낸 사람만이 시간도 죽여 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표현이 격할 뿐, 나를 살리는 시간이라는 의미.
뭐랄까…….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인 설거지를 행주를 빨아서 널고, 설거지통을 깨끗이 씻어내는 마무리 과정 까지 끝끝내 해내고 나서 욱신거리는 발꿈치의 고통을 이겨내며 터덜터덜 걸어 식탁에 앉아 진하게 탄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단편 소설 한편을 읽거나 한 챕터분량의 글을 읽으며 마음의 힘을 회복하는 것과 어쩐지 통하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든 무용한 시간은 없다.

책으로 시간을 죽이는 익숙한 세계에서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를 다녀오는 여정 같았다. 내 세계가 조금 확장된 기분. 엄마와 게임을 하는 게 소원인 태환이의 그 부탁만은 거절해 왔는데 오늘 로그인을 해 볼까라는 고민을 해본다. 분명 10분 내로 꺼버리긴 하겠지만…….무용한 고민인가?

“오늘도 삶을 버텨내고자 다양한 작품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사랑하시기를.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의 총합이 여러분 그 자체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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