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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 두 친구
이수연 지음 / 여섯번째봄 / 2022년 4월
평점 :

[내 어깨 위 두 친구-Two Friends On My Shoulder]
이수연 작가님의 작품인 이 작품이 처음인데 앞으로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토끼의 모습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철조망 같은 구멍 속을 빠져나와 발견한 병아리 한 마리, 그 병아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토끼는 병아리가 걱정되어서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옵니다. 어린 토끼가 불안할 때 나타난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불길한 말을 하죠. '너는 그 새를 지켜줄 수 없어. 책임질 수 없는 것은 데려오는 게 아니야. 그건 무책임한 짓이라고.' 그런 말 한 번쯤 자기에게 해 본 적 다들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 병아리를 파는 것을 보면서, 데려와서 한 마리 키우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부모님은 데리고 와서 키우면 다 죽는다고 허락해 주지 않으셨죠. "넌 병아리를 키울 수 없어. 식물도 하나 잘 못 키우잖아." 그랬던 말들이 지금의 저에게도 작용을 여전히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가를 키우려고 할 때 안된다는 나는 키울 수 없다는 마음부터 먼저 드니까요. 물론 현실성을 더 많이 보게 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시도를 하기가 두려워졌다는 것도 있습니다.

어린 토끼의 어머니가 떠난 날 병아리도 사라집니다. 슬픈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일까요? 돌봄이 필요한 토끼 옆에서 보듬어 주었을 엄마란 존재가 가족에게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토끼가 바라보던 세상이 다른 빛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깨어 있어도 꿈 속의 어두운 숲속을 끊임없이 헤매는 기분이라는 토끼의 표현에서, 깊은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독자를 바라보는 듯한 토끼의 모습에서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네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에서는 마음 속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구요. 토끼의 주변 어른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나오는 어른의 경우는 토끼를 아프게 하거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으로 나와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토끼의 옆에 있던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라 표범이었습니다. 토끼보다 더 빠르게 커지는 표범은 토끼 옆에 늘 있으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냉소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 표범의 존재. 토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데, '나는 표범을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였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기 보다는 함께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투덜대고, 비난하고, 냉소적인 표범이지만 토끼 옆에 늘 함께 합니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 아직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표범이 토끼에게 어떤 존재였나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어렸을 때, 이런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하염없이 몇 시간이고 햇빛을 바라보고,
그 안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바라보았다.
(중략)
그 작은 먼지들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해서 눈을 떼 수가 없었다.
토끼는 생각합니다. '표범은 내 어깨 위로 찾아온다. 나를 짓누르기 위해서일까, 나를 지켜 주기 위해서일까.' 토끼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계속 응원하면서 읽게 됩니다. 토끼 주변에 있는 곰, 수달, 살구 그리고 표범까지 사랑스러웠음을. 훌쩍 커버린 토끼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마지막 장면에 특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가슴 깊은 곳부터 울컥하면서 함께 울어버렸는데, 나의 표범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를 제 자신에게 묻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다시 이 책을 읽을 때 나에게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곰, 수달, 살구, 그리고 표범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세상의 수 많은 토끼들에게,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손을 내밀고 꼬옥 안아주고 싶었던 작가님이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이렇게 따스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선사해 주시는 걸까요? 깊고 어두운 숲을 헤치고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이 그래픽 노블 덕분에 오늘은 마음이 먹먹하지만, 내일은 따스함으로 나 또한 손을 내밀 수 있기를. 제일 먼저 내 안의 표범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