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 도서관 소설집 꿈꾸는돌 33
최상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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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라는 제재를 갖고 일곱 명의 작가가 단편을 썼다. 클럽보다 카페, 카페보다 서점, 서점보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이었다. 요새 이런저런 핑계로 책과 도서관을 멀리했는데 "마음 둘 곳 없으면 도서관에라도 와. 네 편이 되어 줄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라는 초대가 달고 반가웠다. 허나 당장 내가 사랑했던 도서관에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도서관 앤솔러지를 읽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청소년문학과 성인문학을 구분 짓는 건 여전히 내겐 낯설고 어쩐지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따지자면 이 책은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될 것 같다. 청소년문학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들의 글이기도 하고, 대개 청소년 화자가 등장해 서사를 끌어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화자가 등장하는 만큼 성장과 변화가 주요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청소년 소설이 몇 개의 단어로 압착되지 않았으면 한다. 청소년 화자와 독자 모두에게 성장과 변화가 매우 중요한 토픽이고 인간 발달 시기상 성장의 시기와 성숙의 시기는 다른 것이 '팩트'라 해도, 존재는 끝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따라서 비청소년(?)에게도 그러한 메시지를 담은 서사는 여전히 긴요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여하튼 그래서 부러 이 책과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대충 흘리고 이야기를 읽었다. 내게 이 책은 그저 흥미로운 '도서관 앤솔러지'였다. 완독자로서 권하건대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청소년문학이 아니라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고 그 의미를 높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집으로서.


다 다른 의미로 맘에 와닿아서 어떤 단어 문장 소설이 맘에 닿았는지 정리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걸 궁금해할 미래의 나를 위해 짤막하게 남긴다. 「우리가 아주 예뻤을 때(김려령)」를 읽으며 설렘과 귀여움에 들떴고 「황혜홀혜(김해원)」를 읽으며 내가 사라진 것을 잘 애도해 보냈는지 돌아봤으며, 「덜컹거리는 존재(신현이)」의 소심하고 섬세한 화자에게 많이 공감했고 「책내기(이희영)』를 읽고 나서 '책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책지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유령이 머무는 숲(허진희)」을 읽으며 두 번 울었다.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사실 모든 이야기가 그랬다. 일곱 편의 이야기로부터 받은 공감과 위로, 책과 도서관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나 자신과의 연결감이 아늑하고 편안했다.


본문도 좋았는데 이 책은 작가의 말이 진또배기다. 밑줄을 긋는 걸로도 모자라 네 장의 귀퉁이를 접었는데 그중 세 장이 작가의 말이었다. 본문 대신 그 일부를 공유한다.


"겉으로는 영 차이 나 보일지라도 함께할 때 꽉 찬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이 곧 황금 비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 내 인연의 비율은 겪으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정이든, 사랑이든, 보이는 차이만으로 미리 피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는데, 전쟁은 끝이 나고 세상에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지난한 날들의 반복이 모여,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이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 그 책 한 권 한 권에 슬픔보다 기쁨이, 아픔보다 평화가 기록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재밌을 거다. 말했듯 도서관은 제재일 뿐 이 책의 단편들이 "책/도서관 아묻따 최고~ 사람은 자고로 책을 읽어야~"라는 고리타분하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책과 도서관으로 도망쳐본 적 있는 사람, 도서관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사람, 도서관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특별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을 확신에 가득 차 권하고 싶다.



※ 본 포스팅은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썼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경험 및 감상만을 담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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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 도서관 소설집 꿈꾸는돌 33
최상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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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는 게 개인적으로 아쉽다.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성인 독자인 내게 이 책은 써준 게 고맙고 곱게 내어 팔아준 게 고맙고 고마운 ‘도서관 앤솔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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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갈등 -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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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이 아니다. 선악, 승패, 우열, 귀천 등의 비합리적 이분법으로 사람과 사람을 갈라 모두를 파국에 이르게 하는 고도 갈등의 예시, 전제 조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담은 '실용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문학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몰입 잘 되는 소설. 미간을 찌푸리고 허리와 목을 있는 대로 굽혀가며 독서를 하다 아차차, 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실존 인물들의 서사를 가져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전자 변형식물을 극구 반대했으나 자신의 주장을 정반대로 전환하고 과거 자신의 신념과 행보를 "후회한다"고까지 공개선언한 영향력 있는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 갈등 중재 전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했으나 고도 갈등에 휘말려 명예와 신뢰를 잃고 만 게리 프리드먼, 어린 시절부터 갱단에 몸 담아 평생을 경쟁 갱단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 복수심으로 살아왔으나 고도 갈등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후 흑인 인권 신장, 비폭력이라는 새로운 신념이자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된 커티스…. 저자는 학자들이 다루는 먼 이론 대신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갈등을 말하길 택했다. 그 효과는 독자1인 내가 입증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쨌든 재밌다.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뤘어도 서사가 풍부해서 재밌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돌아보면 핵심은 깔끔하게 들어 있는...

미국인이 미국 사회의 갈등을 주로 이야기했음에도 위험하고 파괴적인 갈등의 본질은 주제나 영역이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음을 놀랍도록 잘 이해시켜서 "아 맞아 맞아" 한 대목도 많았고 "아 어떡해..." 한 부분도 많았다. 저자가 설명한 바를 따라 한국 사회에 자리한 여러 갈등들을 거리 두고 다시 보게 되어 외려 좋기도 했다. 아, 이것도 이 책이 문학 같이 느껴진 이유 중 하나인가.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한국인/한국의 사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문학의 본질은 돌려 말하기, 에둘러 말하기고 기묘하게도 그 방법은 직면하기 어려웠던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하곤 하니까.

이 책의 단점을 얘기해보라면, 척 봤을 때 자칫 압도될 수 있을 정도의 두께를 들겠다. 검은 배경에 강렬한 표지 디자인이라 더 그런가... 주석을 제외하고 총 446쪽의 분량이다. 짧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변호하자면 종이 양이 많다고 내용이 어렵고 방대하다고 할 순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평생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갈등'에 대해 다룸에도 몰입감 좋은 소설처럼 쉽고 재밌다. 게다가 '남 얘기가 아니고요~ 당신 일이기도 하니까 잘 들어놨다가 때 되면 써먹으라고요. 알겠죠?'라며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오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책의 표지와 두께만으로 책을 짐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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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갈등 -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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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신청해서 받은 책인데 과장 안 보태고 정말 재밌고 유익함. 미국인이 미국인/미국 사회의 사례를 주로 들어가며 갈등을 설명해서인지 한국의 여러 갈등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음. 갈등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싶거나 갈등에 지쳐 피하고만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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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백지선 지음 / 또다른우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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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단 서평


서문만 읽고 울었다. 비혼 입양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워하는 삶을 당연히, 자연스레,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루며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사랑스럽다. 나도 진정 내가 원하는 가정을 이뤄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이 책은 그런 희망과 용기를 준다. 너무나 담백하고 재치 있는 방식으로.


2) Detail;

연애 욕구도 결혼 생각도 없었던 몇 해 전 나는 멍한 마음으로 밤 공원을 거닐다 문득 나의 딸을 생각했다. 상상력이 모자라 얼굴도 이름도 흐릿했지만 딸이 있으면 참 좋겠다, 내 세계를 부수고 들어와 기꺼이 자기 세계를 내어줄 그런 존재와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 존재라면 기꺼이 함께 살고 싶다 생각했다. 웃기지만 상상만으로도 명치 부근에 뜨뜻한 온기가 번져올라서, 그 느낌이 기묘하게 벅차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상상하는 데서 그친 것을 현실로 만든 사람("엄마")이 있다. 심지어 그가 책을 썼다. 불특정 다수를 가정하고 썼겠지만, 아니 어쩌면 당신이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 썼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노트북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홀려버렸다. 왜 홀렸다고까지 표현하냐면, 기묘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구나.'라는.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란 부제목이 시원했다. 인생이란 어찌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것. 지금은 결혼이고 출산이고 생각 없는 내가 나중에 그것들을 경험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사회가 당연함, 자연스러움의 범주에 넣기를 희한할 정도로 꺼려하는 (그러나 실은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임을 시원스레 밝히는 소개글이 반갑고 반가웠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든 건 타지로 향하는 버스 사이 1시간 정도 시간이 들떴을 때, 즉 적잖은 사람들이 앞뒤옆을 오가는 버스터미널에서였는데 서문밖에 안 읽었으면서 주책 맞게 눈물을 훔쳐냈더랬다.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 때문이었다. 잊은 듯하면 밀려오고 극복한 듯하면 무너뜨리는 불안에 지쳐 '그래, 인간은 원래 혼자고 외로운 거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심지어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까지 단언하며 마음을 어르고 달래기 급급했었는데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자는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처럼, 물 위에 떠다니는 부평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지 않아도 내가 꿈꾸는 존재를 만나, 아니 그와 함께 살 수 있다고 했다. 미련으로 가득한 과거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현재)를 그런 존재들(심지어 '들!')과 함께 살고 있는 저자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독자인 내가 감히 이야기하는 바 저자는 자신이 진정 바라는, 그러나 남들이 선뜻 가기를 저어하는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당당히 걸어간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대단함보다 더 눈에 마음에 와닿은 것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 무엇이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지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긴 저자의 치열함과 행동력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점 때문에 저자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비혼도, 입양도, 성적과 성과를 중시하는 공부를 중시하지 않는 부모도, 실은 대단하지 않다. 대단하지 않은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은 내게 일깨워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거다. 남들과 달리 사는 것, 그렇게 살며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힘 '빡' 주고 세상에 '저항'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란 거. 치열하게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려 노력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나도 저자와 같은, 아니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만의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것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누군가와 함께. 평생 동안 충만하게. *



※ 본 포스팅은 도서를 증정 받아 쓰였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경험 및 감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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