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갈등 -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문학이 아니다. 선악, 승패, 우열, 귀천 등의 비합리적 이분법으로 사람과 사람을 갈라 모두를 파국에 이르게 하는 고도 갈등의 예시, 전제 조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담은 '실용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문학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몰입 잘 되는 소설. 미간을 찌푸리고 허리와 목을 있는 대로 굽혀가며 독서를 하다 아차차, 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실존 인물들의 서사를 가져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전자 변형식물을 극구 반대했으나 자신의 주장을 정반대로 전환하고 과거 자신의 신념과 행보를 "후회한다"고까지 공개선언한 영향력 있는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 갈등 중재 전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했으나 고도 갈등에 휘말려 명예와 신뢰를 잃고 만 게리 프리드먼, 어린 시절부터 갱단에 몸 담아 평생을 경쟁 갱단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 복수심으로 살아왔으나 고도 갈등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후 흑인 인권 신장, 비폭력이라는 새로운 신념이자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된 커티스…. 저자는 학자들이 다루는 먼 이론 대신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갈등을 말하길 택했다. 그 효과는 독자1인 내가 입증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쨌든 재밌다.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뤘어도 서사가 풍부해서 재밌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돌아보면 핵심은 깔끔하게 들어 있는...

미국인이 미국 사회의 갈등을 주로 이야기했음에도 위험하고 파괴적인 갈등의 본질은 주제나 영역이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음을 놀랍도록 잘 이해시켜서 "아 맞아 맞아" 한 대목도 많았고 "아 어떡해..." 한 부분도 많았다. 저자가 설명한 바를 따라 한국 사회에 자리한 여러 갈등들을 거리 두고 다시 보게 되어 외려 좋기도 했다. 아, 이것도 이 책이 문학 같이 느껴진 이유 중 하나인가.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한국인/한국의 사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문학의 본질은 돌려 말하기, 에둘러 말하기고 기묘하게도 그 방법은 직면하기 어려웠던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하곤 하니까.

이 책의 단점을 얘기해보라면, 척 봤을 때 자칫 압도될 수 있을 정도의 두께를 들겠다. 검은 배경에 강렬한 표지 디자인이라 더 그런가... 주석을 제외하고 총 446쪽의 분량이다. 짧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변호하자면 종이 양이 많다고 내용이 어렵고 방대하다고 할 순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평생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갈등'에 대해 다룸에도 몰입감 좋은 소설처럼 쉽고 재밌다. 게다가 '남 얘기가 아니고요~ 당신 일이기도 하니까 잘 들어놨다가 때 되면 써먹으라고요. 알겠죠?'라며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오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책의 표지와 두께만으로 책을 짐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