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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 - 간호천사 아닌 간호전사 이야기
알앤써니 지음 / 읽고싶은책 / 2023년 1월
평점 :
지금은 다른 일을 하시지만 나의 어머니께선 대학병원 간호사셨고 지금은 절친한 친구가 규모 있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간호계에 몸담고 있고 그들에게 이것저것 전해들은 이야기가 많아 다른 업보다는 간호사를 친숙하게 느꼈고 가혹한 업무량, 인내해야만 하는 수많은 불합리, 뿌리 깊은 태움(괴롭힘) 사건 등을 접할 때마다 깊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정작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들을 각종 부정적 감정, 번아웃,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는지는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 나는 간호사인 사람들을 가까이 두었을 뿐 간호사가 아니고 짧은 뉴스나 기사는 간호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결코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 한 권의 책이 그걸 해냈다. "간호천사 아니고 간호전사 이야기"라는 부제를 읽을 때부터 '아, 저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정말 많았구나. 그야말로 전사처럼 칼을 벼리면서 때를 기다렸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제목인 "Fake(가짜, 거짓)"는 처음엔 그닥 와닿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뒷표지 문구를 다시 읽으니 이 문장들을 써내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고 승화시켜 결국 자신의 무기이자 동력으로 만들었는지 좀 감이 왔다.
"간호사로서 일하는 나는 어쩌면 매일 '페이크(가짜, 거짓)'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나 자신을 가리고 속이며 사는 삶. 간호사 유니폼을 입는 순간 진짜 나는 유니폼 뒤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페이크가 나서서 일을 한다. 나쁜 페이크든 좋은 페이크든 모두 나의 모습이기는 하다. 페이크를 사용하는 목적은 단 하나이다. 더 나은 간호를 수행하기 위해서."

어머니야 간호사 시절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시지만 현재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고통, 분노, 무기력 등을 전해들을 때마다 '내가 간호사의 삶을 더 잘 안다면 친구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공감해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또 많은 간호사들이 간절히 외치는 처우 개선, 간호법 제정 등의 이유와 동기를 더 잘 알고 싶어서 기대감 반, 심란함 반으로 책장을 넘겼다.
저자가 자기 경험담이자 아마도 간호사 대부분이 현장에서 겪(었)을 어려움을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적어놔서 장면 상상과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됐다. 환자고 의사고 동료고 선배고 후임이고 뭐고 '으유 저걸 죽여 살려?'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책에 글로 옮긴 게 다가 아닐 텐데(심지어 글로 쓰는 과정에서 정~말 날것의 감정들은 다 떨어져나가고 필터링됐을 텐데 그게 이 정도..?)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런데 저자는 몇몇 개인들의 무지와 무례를 지적하기보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든 간호사가 겪는 보편의 문제, 곧 구조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저자는 대학병원에서 3년 일한 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호계를 떠나 15년 동안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다시 간호계로 돌아온 사람인데 오히려 그래서 '그때 그 시절 문제'였어야 할 것들이 변하지 않고 잔존함에 큰 충격을 받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같다.
난 간호사가 아니고 앞으로도 간호사가 아닐 거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고 살리는 이들이 적어도 사람 대접은 받으며 살았음 좋겠고 그들이 그들의 일, 일터,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울, 분노, 무기력을 느끼며 움츠러들고 사그라들다 사라지진 않았음 좋겠다. 사람이니까. 어느 한 명 빼놓지 않고 모두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지 않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건 어떤 일을 하건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는 사회는 나쁜 사회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이기적인 말이지만 간호사들이 지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 돌아갈 것은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자명하다.
(간호사도 사람이고, 간호사는 의사 비서가 아니고, 일반인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간호사의 업무는 무궁무진하게 많고... 따위를 모두에게 이해시킬 수 없다면 이 간명한 논리("간호사들 처우 구리면 결국 늬들이 손해보고 피해봄 ㅅㄱ")를 퍼뜨려서라도 간호사 처우가 개선되게 하고 싶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상 내가 행복하려면 저 사람이 행복해야 함을 제발 깨달으라고...)
+) 본문 뒤에 사람들이 간호사에게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 정리돼 있는데 재밌기도 했고 "자신이나 가족이 응급실에 갔는데 빨리 봐주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고는 혹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됐을 때 정말 안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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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흥미만 가지고 펴든 책은 아닌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깊고 진실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인상 깊게 남은 책이다. 저자는 간호사 지망생이나 간호사들도 읽으면 좋을 거랬지만 나는 나와 같이 간호사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일반인이 읽으면 가장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멀게만 느껴지는, 그러나 병원에 가면 의사보다 자주 가장 가까이서 환자인 우리를 돌보아주는 간호사들이 어떤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는지 살피는 것은 간호사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서비스를 받는 환자와 보호자(우리)를 위해서 분명 중요하고 가치로울 테다. *
★ 본 포스팅은 도서를 증정 받아 쓰였으나
가감 없는 개인적 경험 및 감상만을 담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