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마흔네 명의 노동자이자 작가는 나보다 훨씬 강하고 현실적인 사람이어서(보통 이런 분들을 어른이라 하지 🙂) 화내고 서러워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개인들에게 분노를 돌리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람 아니게 하는 기득권의 행태와 안전망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제도를 문제 삼는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한다. 서로 다른 우리(We)를 비정규직이라는 우리(cage) 안에 넣고 부당한 대우를 일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용기를 내겠다고 다짐하고,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운동의 언어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연결과 상생을 도모하는 연대의 언어로 매듭지어지는 글들이 참 좋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노동자들을 갈등하게 하고 와해시키는 제도'라는 말이 있었다. 그 말에 동의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듯 모든 노동은 값지고 모든 노동자는 귀하다. 업무의 특성, 노동 시간 등에 따라 지급되는 비용이 달라질 순 있지만 고용 형태가 인간을 차별할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현 한국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천부 인권, 국민으로서 권리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난 비정규직 아닌데. 그런 대우 받기 싫으면 다른 일 찾지 그랬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 서로 연결되어 공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거라고. '그들'이 곧 '우리'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차근차근 악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는 반드시 배드 엔딩을 맞을 거라고 말이다.
기대가 컸는데 그보다 더 좋은 책이었다. 나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언론이 제시하는 단편적인 노동자의 목소리와 이미지에 지쳤거나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 노동자가 존중 받는 사회가 곧 사람이 존중 받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사실 노동하고 있거나 노동하게 될 모든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마흔네 명의 노동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따라가다 보면 어떤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잘 쓰인 기사도 느끼게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