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 10대 미디어 프리 - 주체적 삶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푸른들녘 인문교양 41
강병철 지음 / 푸른들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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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질문을 던지세요.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미디어의 메시지가 곧 내 삶의 양식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길든 뒤에 남는 것은 스스로 갈 길을 잃고 휩쓸려 다니는 무기력한 껍데기뿐입니다.

『프리한 10대 미디어 프리』 에필로그 중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타인과 소통하며 혼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미디어는 우리 삶과 깊이 관련돼 있는 것은 물론 삶의 양식 자체를 바꾸었기에("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다") 더 이상 미디어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미디어에 의지하는 것을 넘어 의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밀려 몇 시간을 허비하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미지에 이상할 정도로 치중하고 있었다는 걸 퍼뜩 깨닫고 자괴해도, 문명의 집약체라는 스마트폰을 잠시 노려보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멍한 얼굴로 돌아와 미디어가 재현한 세상 속을 떠돌곤 했다. 그렇게 나는 나로부터, 나의 현실로부터 멀어졌고 주체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미디어와 연결돼 있었던 걸 생각하면 '잊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배우지 못한 것도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문제의식이 강하지 않았다. 근거는 어리석게도 '다들 나처럼 사니까' 였다. 그런데 복작거리기로 유명한 서울 지하철에 타서 꽤 오랜 시간 타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같은 공간에 있으며 알아차렸다. 미디어 특히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거나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 일행과 눈을 맞추고 조곤조곤 대화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더라.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줄 두 줄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느라 정작 나는 폰을 내려놓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늘 꽂고 있던 이어폰도 빼고 가만히 눈을 감는 순간도 많아졌다. 한 번 어떤 계기로든 거리를 두게 되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막연한 느낌을 품고 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10대 청소년의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었지만 성인이 되었음에도 주체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이기에 분명 도움이 되리라, 오히려 눈높이에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민망한 상상이지만 나중에 교사가 돼서 학생들과 미디어를 주제로 얘기하거나 공부할 때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었구.


미디어의 특성과 기능을 간단히 설명하는 '소통' 프롤로그를 지나면 총 6장의 챕터와 만나게 된다. 각각 '놀이, 일상, 진실, 권리, 권력, 폭력'이 대주제이며 각 주제에 맞는 미디어 이슈가 담겨 있다. 독자가 처음부터 너무 어렵거나 무겁게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가볍고 재밌는 내용부터 진지하게 반성하고 생각해봐야 할 내용 순으로 배치했다는데 현명하고 탁월한 전략이었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제시해 미디어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궁금하게 만들고 미디어의 명과 암을 두루 조명한 후 결국 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하는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을 인지시키는데, 그 흐름이 정말 자연스러워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잘 짜인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내용 중간중간 그리고 챕터 끄트머리마다 주체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들이 제시되는데 그것도 아주 좋았다. 교사나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인 시민이 되기 위해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은 것들이었다. 나중으로 넘기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바로 했다. 인터넷 사용 기록 및 검색 기록 삭제였다. 하는 김에 구독했었던 유튜브 채널도 싹 정리했다. 쇼츠를 넘기다 잘못 눌렀는지(일부러 버튼을 거기 배치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처음 보는 채널들도 구독돼 있었는데 '이래서 내 알고리즘이 더 이상해졌군' 싶었다. 다 정리하고 나니 무척 속이 시원했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고민해왔거나 근래 화제가 되고 있는 문제들이 등장할 땐 반가운 느낌이 들어 이것저것 메모를 했다. 새로 알게 되었거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중요성을 느낀 내용도 많았다.


본문 내용도 좋았지만 이 책은 에필로그가 정수였다. "미디어를 곁에 두고 살아가지만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라는 간명한 구로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주체성과 비판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질문을 그치지 않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 문장이 이 포스팅의 처음에 제시됐던 문장이다)


미디어에 종속돼 지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미디어의 곁에 있으면서도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심성을 굳건하고 날카롭게 벼려 진정 미디어의 주인이 되고 말겠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이 되어서, 내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무해하고 선하고 모범적인 것이 되면 좋겠다.

이 글을 읽어주신 고마운 당신도 당신의 곁에 있는 미디어에, 그 속에 숨어 있는 자본과 힘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 현대의 자유인으로 거듭나시기를... 지난한 과정 끝에 진정한 '나'로 바로서는 즐거움을 느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

우리 각자가 만물의 척도가 되는 길은,

먼저 남들이 제시하는 척도에서 해방되는 것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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