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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에 너를 보낼래 - 고등어 작가의 유쾌한 중고거래 실전기 ㅣ 청색지산문선 8
고은규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8월
평점 :
당근!
나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에게 당근이라 함은 당근 당근당근 당근과 같은 말놀이의 당연하다는 뜻으로 쓰이던 주황 채소가 잇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요즘의 사람들에게 당근!은 중고매매 장터 어플의 알림이다. 당근에서 뜨는 반가운 메시지, 어떤 사람이 내 물건을 산다고 했을까? (물론 그세 트랜드가 바뀌어 아이들은 번개장터를 이용한다고 한다.)
고등어 작가 고은규는 단과 수업 강의를 하며 별명을 얻게 되고 지금은 글쓰는 일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97년도의 데뷔와 07년도의 단편 소설 당선으로 시작된 소설가의 길 그리고 [트렁커]라는 책의 중앙장편 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그가 쓴 에세이라니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는거 아닌가 하는 비 소설가의 소설가에 대한 권위에 기가 눌려 책을 펴 들었다.
그런데 왠일, 이 책은 고은규 작가의 당근거래 후기를 추려 만든 에세이집인데 누군가의 수다를 듣는듣 하면서도 작가의 판단이나 감정이 지나치게 들어가지 않으면서 상황이 전개되고 풀어져 있는 덕에 가벼우면서도 유쾌하고 시원스러운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와 흔하지 않은 감동들, 그렇다고 너무 오글거리지 않는 사연들. 정말 유쾌하다.
에세이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게 해주어서 좋았다. 한편으로 읽고 있으면서 나라도 쓰겠다는 오만한 자신감이 아닌 작가처럼 내가 즐기던 분야의 이야기를 남들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그게 글이라면 더 좋겠다는 욕구를 느끼게 해주었다.
책에서 에피소드 말고 인상깊었던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진과 그림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남의 읽기를 마냥 읽고 있는 듯한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생생한 거래의 현장을 더 맛깔나게 해주는 듯 했다. 일종의 아이들이 배우는 흉내내는 말 같다고나 할까. 그냥 문장을 더 맛깔스럽게 해주는 흉내내는 말.
사실 중고거래를 하면서 좋은 일만 있지는 않게 마련이다. 당근을 애용하지는 않지만 과거 중고나라를 잘 사용하던 나에게도 일종의 룰과 편견이 생겼었는데 누군가와 쓰던 물건을 거래한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도 200건의 거래 중 정말 남들과 나누어 보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모아 책으로 만든 작가 덕분에 내가 하지 않은 거래지만 훈훈함을 전해 받는다. 거래의 위험과 피곤함도 없이 훈훈함을 맛볼 수 있으니 이거 참 득템이로다.
언젠가 고등어 작가의 당근 후기를 읽고서 읽고 쓰는 재미를 느낀 아이가 쓴 번개처럼 너에게 보낼래라는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