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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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 성과 속을 읽고

 종교학이 어떤 학문인지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이가 권한 책이 엘리아데의 『성과 속』이었다. 적어도 내겐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었으나, 기존 사회과학의 학문적인 논증이나 분석과는 성격이 다른 엘리아데의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엘리아데는 고대인에서 근대인에게 이르기까지 인간의 깊은 속성 안에 길러지고 양육된 ‘종교성’을 성과 속이라는 다른 범주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면, 그가 말하려는 것은 성(聖)과 속(俗)의 분리가 아닌, 종교를 인간 본성의 양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성과 속의 구분을 ‘인간이 관련됨’으로써 가능하다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엘리아데가 말하는 종교학 탐구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하며 바로 그 부분이 중요한 분기점이기에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면 종교학에 대한 정의도 판이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엘리아데가 말하는 ‘성과 속’은 인간 속성의 같은 부분에서 출발하는 다른 장(場)이다. 엘리아데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기존 학자들과는 다른 삶, 즉 다양한 종교 체험과 함께 ‘종교학’이란 학문의 체계를 세운 인물이다. 학문 이전에 존재한 종교가 후대에 이르러 다른 학문 사이에서 태어난 ‘종교학’은 역사의 종횡을 가로지르는 학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타고난(?) 예술성으로 학자로서는 드문 ‘작가’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보더라도 학자로서의 엘리아데는 새로운 학문적 가능성 이외에도 학계의 주목과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고대인의 치유와 정화 의식 사례였다. 엘리아데는 에밀 뒤르켐의 토테미즘 사례를 들면서 성이 속에서 분리되는 순간, 종교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즉,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성(聖)에 대한 인간 본연의 본능적인 추구가 세속에서 하나의 무형의 형태로서 세상과 인간 안에서 독립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엘리아데는 고대인의 토테미즘을 설명하는 데, 고대인은 자연물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물을 통해 현현(顯現)하는 성을 숭배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는 인간의 신(神)에 대한 추구와는 별도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엘리아데가 말하는 성(聖)은 인간 안의 신성성(神聖性)만이 아닌, 인류 역사 안에서의 모든 의례와 현대에까지 계속되는 국가라는 제도와 관습, 각 민족의 풍속 등의 모든 범주를 포함한 개념이다. 그렇기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현대의 무신론자들마저도 그들 의식 안에 종교성에 대한 잔재가 남아있음을 말한다. 한 가지 강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인간 종교성의 원천을 어디로 보는 것일까’이다. 엘리아데는 심층적으로 분화되는 문제들을 다른 학문의 영역으로 넘기며 종교학의 한계를 규정한다. 그러나 고대인의 의식을 이야기하는 데 느낀 것은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속성을 통한 하나의 가설(假說)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과 종교성과의 관계, 한 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종교 현상의 분기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러한 논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며, 엘리아데의 사고와 주장이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자신의 영적 체험과 직관(直觀)이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엘리아데의 연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지적 여정과 언어 습득 과정은 종교학이란 학문 체계 안에서만이 아닌, 인간에 대한 탐구, 좁게는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과정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이 책의 전체- 1장 성스러운 공간과 세계의 정화, 2장 성스러운 시간과 신화, 3장 자연의 신성과 우주적 종교, 4장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생명-에서 다룬 각각의 내용은 종교학의 심화된 영역으로 나아갈 부분이라 생각한다. 책은 비교적 짧은(203쪽) 분량임에도 담고 있는 포괄성은 깊다. 아쉬운 점은 책의 번역 상태다. 역자는 곳곳에 저자가 엘리아데임에도 마치 제3자가 쓴 표현인, “엘리아데는, 엘리아데가 말하길” 이라고 했다. 또한, ‘그레이트 북’ 시리즈이니만큼 한국어 사용에 대한 심화 교정 작업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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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말하고 겸손하게 침묵하라
도널드 코젠스 지음, 박건홍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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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 것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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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증정] 파고다 50% 수강 할인권
알라딘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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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어요, 파고다 학원에 좋은 강좌 많이 있다는 것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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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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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마저 삼켜버린 길 위에 서다 
 

코맥 메카시의 소설, 로드의 책장을 덮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어떻게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세상에 행복을 심어주고 자기계발의 계획을 세워주는 책이 분명히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 안에 숨어있어 감히 꺼내고 싶지 않은 절망을 불끈 앞에 내어 놓아 독자는 다른 것은 생각할 틈마저 없게 하는 당혹감 앞에 선다.  

그렇게 소설 『로드』에서의 길은 죽음마저 삼키는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길이다. 소설을 읽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길’을 소재로 글을 쓰다면, 나는 어떤 길을 그릴 수 있었을까?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갈 길은 없다. 그들에게 나아감은 곧 죽음이고 죽음과 직면하는 길에 서 있음을 매 순간 알게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은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심장’마저 차라리 돌이 되었으면 하는 절망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세상의 전부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을 시종일관 작가는 냉정한 거리를 두고 묘사한다. 마치 외줄타기 위에 두 명의 광대를 세워놓고 줄을 당기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임무는 빳빳이 줄을 당기는 것이지, 만일 느슨하게 줄을 놓는다면, 이 두 명의 주인공은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남자는 일어선다. 균형을 잡으려고 두 팔을 펼친다. 비틀거리되,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세상에 홀로 남겨 두어야 함을 알고 있다. 암흑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마저 묻혀버린다. 깊이나 차원이 없는 암흑 속에서도 남자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신이 그에게 건넨 마지막 줄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쥐여준 ‘생명’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홀로 일어서서 길을 가는 아들에게 이어진다. 격려와 위로가 아닌 고통 속에서 함께 하는 신이 그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소설은 심오한 사상을 자상하게 풀이하지 않는다. 아니 지극히 건조한 묘사로 인간 안에 자생하는 ‘생명력’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마치, 지독한 인생의 구렁텅이에 건져 나온 인간에게는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는, 그렇게 오지 않을 꿈에 대한 환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하다. 상실과 절망 앞에 직면하여 파헤쳐 가는 이에게 죽음조차 파멸할 수 없는 길을 열어준다. 그들은 세상의 파괴 앞에서 세상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본다. 
 

굳이 인류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삶에서 만나는 죽음과 상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작가는 그 길 앞에서 불을 붙이고 홀로 서 있는 그 가느다란 희망에 빛을 비춘다. 절망을 넘어선 희망, 상실의 두려움을 거쳐 살아난 인류 생존의 마지막 생존자에게 생명을 이어가는 길을 밝힌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그 길 앞에 서 있음을, 죽음을 넘어선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빛을 비추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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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살아라 -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감정치유
에스더 & 제리 힉스 지음, 김우열 옮김 / 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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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마음의 지도를 그린다’



이 책을 받아든 첫 모습은 ‘모딜리아니 그림을 연상하는, 단발머리의 목이 긴 여인이 양손으로 화분을 받쳐 든’ 것이었다. 역시 약간의 애조를 띤 모습이긴 하지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목이 길다는 것이 ‘슬픔’으로 각인되었던 생각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그 목의 길이가 행복을 찾아가는 감정의 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구체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구체적인 현실에서의 사례를 들어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가는지를 제시한다. 바로 ‘우주’라는 큰 지도에서 나의 감정이란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것을 바로 보고 인정하여 ‘순방향’이라는 선의의 돛대가 내면의 참 자아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니, 그 물결에 몸과 마음을 맡겨 유유히 떠나라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각각의 상황에 적용하여 어떻게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시크릿’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시크릿 저자는 아님)는 ‘끌어당김’와 ‘내려놓음’의 법칙을 적용하여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우주의 강력한 법칙이며, 존재하는 만물의 파장을 관리하는 힘이다. 저자는 자신 내부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는 원리로서 이 법칙을 설명하며 그 외의 다른 일은 ‘강물에 떠있는 배’의 비유를 통해 ‘자연의 법칙’에 맡기라고 한다. 즉, 우리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순방향으로 진행하게 하는 의식에 집중하면 우리 소망의 원천에 저절로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만일 불쾌한 일이 생겨난다면, 그것의 생각을 점검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현 지점을 확인하고 우리 내부의 근원적인 힘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저절로 강력한 욕구가 발동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알게 될 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는 것을 수차례 반복한다. 즉, ‘대립’은 새로운 생각의 창출이며 강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더 나은 환경을 창조하는 힘이 강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을 수년 동안 해왔기에 이 부분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는데 아쉬운 것은 이에 대한 사례가 풍부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오랫동안 힘들어 했던 ‘(심리적인) 불감증’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책에 따른다면, 아마 나는 오랫동안 ‘느끼지 말고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무장하며 살았고 감정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억압하고 통제했었다는 것, 바로 그렇게 굳어버린 감정의 한 부분을 자유롭게 풀어주려면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며 그 대립이 강한 근원의 에너지를 창출하는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앞의 그림을 보았을 때엔 그 뾰족한 양손이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을 거쳐 생명의 화분을 받쳐 든 행복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동안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가려놓았던 ‘감정’이라는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글로 잘 풀어 설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떠올리는 몇 구절을 보며,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임과 우연히 만나는 기분이었다. ‘아… 그분의 철학이 현대에 와서 이렇게 적용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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