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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죽음마저 삼켜버린 길 위에 서다
코맥 메카시의 소설, 로드의 책장을 덮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어떻게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세상에 행복을 심어주고 자기계발의 계획을 세워주는 책이 분명히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 안에 숨어있어 감히 꺼내고 싶지 않은 절망을 불끈 앞에 내어 놓아 독자는 다른 것은 생각할 틈마저 없게 하는 당혹감 앞에 선다.
그렇게 소설 『로드』에서의 길은 죽음마저 삼키는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길이다. 소설을 읽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길’을 소재로 글을 쓰다면, 나는 어떤 길을 그릴 수 있었을까?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갈 길은 없다. 그들에게 나아감은 곧 죽음이고 죽음과 직면하는 길에 서 있음을 매 순간 알게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은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심장’마저 차라리 돌이 되었으면 하는 절망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세상의 전부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을 시종일관 작가는 냉정한 거리를 두고 묘사한다. 마치 외줄타기 위에 두 명의 광대를 세워놓고 줄을 당기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임무는 빳빳이 줄을 당기는 것이지, 만일 느슨하게 줄을 놓는다면, 이 두 명의 주인공은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남자는 일어선다. 균형을 잡으려고 두 팔을 펼친다. 비틀거리되,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세상에 홀로 남겨 두어야 함을 알고 있다. 암흑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마저 묻혀버린다. 깊이나 차원이 없는 암흑 속에서도 남자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신이 그에게 건넨 마지막 줄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쥐여준 ‘생명’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홀로 일어서서 길을 가는 아들에게 이어진다. 격려와 위로가 아닌 고통 속에서 함께 하는 신이 그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소설은 심오한 사상을 자상하게 풀이하지 않는다. 아니 지극히 건조한 묘사로 인간 안에 자생하는 ‘생명력’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마치, 지독한 인생의 구렁텅이에 건져 나온 인간에게는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는, 그렇게 오지 않을 꿈에 대한 환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하다. 상실과 절망 앞에 직면하여 파헤쳐 가는 이에게 죽음조차 파멸할 수 없는 길을 열어준다. 그들은 세상의 파괴 앞에서 세상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본다.
굳이 인류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삶에서 만나는 죽음과 상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작가는 그 길 앞에서 불을 붙이고 홀로 서 있는 그 가느다란 희망에 빛을 비춘다. 절망을 넘어선 희망, 상실의 두려움을 거쳐 살아난 인류 생존의 마지막 생존자에게 생명을 이어가는 길을 밝힌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그 길 앞에 서 있음을, 죽음을 넘어선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빛을 비추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