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허수경이 사랑한 시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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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죽어나가야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친구여, 대답은 바람과 함께 흩날리네

답은 바람 속에 날려가네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바람에 날려가다, 밥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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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60년대를 상기해 보면 그 시기는 냉전 시대였다……지금과 그때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게 된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겪어야 이 노래 속에 든 진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될까? 그 답은 정말 바람 속에 날려간 것일까?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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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명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줬어도 여전히 빈부의 격차는 존재하며, 여전히 허난설헌과 같이 남의 결혼식 옷을 만들어야 하는 처참함도 반복되고 있다. 결국 가난이고 결핍이다. 돈이 많아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다. 반복되는 세월 속에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게 있다. 바로 ‘시’와 시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다. 왜곡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하겠지만 성문화된 ‘시’를 보며 우리는 자유롭게 상상한다. 마치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허수경 시인을 상상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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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세 번째 유고집은 ‘시’와 ‘사람’을 소개하는 글 같다. 정확하게 ‘시인’을 소개해 주고 싶었던 거 같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주선해 주는 소개팅이라니 읽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50편의 시와 50명의 시인. 다양한 국적과 시대를 살아갔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 가난과 반복과 공허와 쓸쓸함 속에 시는 단단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리고 나에게 전달되었다. 중세를 살았던 사람도, 근대를 살았던 사람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시’를 썼다. 독일 국적의 독일어를 구사하는 유대인의 마음. 독일어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시는 힘이 있어 나치라 할지라도 그 시를 건들지 못했다는 멋진 말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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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타국에서 밀려오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이 한국에 올 때마다 가져왔던 시집들로 위로받았을까? 문우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나 이메일이, 혹은 간헐적인 방문이 시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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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어느 해거름’, 진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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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타계한 진이정 시인은 나에게는 문우였고, 시에 대해서라면 긴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다방에 앉아서 토론을 하곤 했던 벗이었다…… 우리 세대에는 빛나는 시인 기형도가 있고 나에게는 진이정이라는 벗이 있다…… 진이정. 그의 제는 어느 절에 모셔져 있었는데 어느 해 나는 서울에서 그의 제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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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같이 제를 올리고 있다고... 허수경 시인과 나의 세대는 꽤 차이가 난다. 나의 세대에는 어떤 시인이 있을까? 20년 뒤에 나는 아들에게 어떤 시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시인 이름 다섯 명 말하는 것도 벅찼었는데 어떻게든 시에게 다가가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이제는 열 손가락 열 발가락도 부족하다. 우리 세대 역시 찬란한 세대는 아니다. 1960년대, 아니 1500년대와 달라진 게 많진 않아 보인다. 그래서 시인들이 여전히 시를 쓰고, 우리는 여전히 시를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삶에는 항상 고난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아파하면서도 아픈 시를 찾을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추길 희망하지만 밥 딜런의 노랫말은 바람을 타고 반복 될 것이다. 허수경 시인은 2020년을 예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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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부터 남을 먹어야만 살아남는 존재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연이 우리를 먹을 것이다. 옳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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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이 부분을 읽는데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는, 이라고 말했던 때가 지금인가.

희망을 잃진 않는다. 다만 버틸 뿐이다. 그리고 그 버팀의 삶 속에 함께 하는 시와 시인들이 있어 조금은 덜 쓸쓸할 거 같다. 50명의 시인과 시를 소개받았다. 그것도 허수경 시인이 사랑한 이들이다. 그리고 부탁이다. “나는 떠나가지만 너는 기억해 달라.”는. 근사한 소개 감사하게 받고 그 부탁 기꺼이 들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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