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Nez입니다
김태형 지음 / 난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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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향, 향의 서술
향이 그려지고 문장이 맡아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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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 작가 ‘위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다가 아마 작년에 출간한 그의 산문집 제목 때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책 번역본 제목(원제목은 생각보다 촌스럽다)을 오마주 해봤다. ‘문장의 향, 향의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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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향’ -
주위를 둘러보니 거리마다 작은 풍선을 달아 올린 듯 가로등에 불이 켜져 있었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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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냄새, 사랑하는 이의 살내음, 에디온, 아랫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 아버지가 맡고 싶었던 모든 향기. p.68(‘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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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사람과 닮았다. 향수의 놋 드 떼뜨, 즉 톱 노트는 그 사람의 첫인상이다. 단박에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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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조향사의 문장은 ‘향’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도 이 책에서 향이 날 거 같아 종이 냄새를 맡아봤다. 아무 냄새가 안 나서 내가 좋아하게 된 히쇼 가 22번지를 살짝 뿌려주었다. ‘문향’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는데, 김태형 조향사의 문향은 ‘소설가’의 문향과 닮은 것 같다.
그도 알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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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내 곁에 스며들어와 있었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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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기 위해 그렇게나 반항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어머니의 가치와 꽤나 닮아 있었다. 나의 향기는 문학을 닮아 있던 것이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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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소설가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도 도망쳐 보려 했지만, 자신에게 부모님의 문학과 예술이 흐르고 있음을 인정했다. 24페이지에 묘사된 그라스는 1부 후반부에 나오는 가로등 켜진 언덕 마을과 일치했다. 그 사진이 그라스가 아니라면 민망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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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그가 말하는 향은 서술이 된다.
향의 서술-
조향사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다. ‘조향사’라는 직업은 적어도 나에게는 흰색 배경의 연구실에서 비커에 온갖 화학물질을 섞어서 인공적인 향을 만드는 ‘연구원’으로 그려졌는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사용하는 원료가 자연에서 온 것임을, 그들이 예술가 보다 장인에 가까운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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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베로즈와 일랑일랑, 이 두 플뢰르 블랑슈 계열의 만남은 향에 신비스러움과 관능미를 더해줄 것이다.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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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사람과 닮았다. 향수의 놋 드 떼뜨, 즉 톱 노트는 그 사람의 첫인상이다. 단박에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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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브리엘 샤넬)는 작품 속에 고귀함과 우아함을 부여하기 위해 검은색과 흰색의조화를 애용했고, 나는 과거와 미래라는 흑백의 이미지를 향으로 칠해가는 작업을 즐겼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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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에 대해 이렇게 풀어낼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김태형 조향사보다 뛰어난 조향사는 있을지라도, 김태형 조향사만큼 ‘향’을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성장 과정 속에 ‘문학’이 얼마나 깊게 스며 들었을까. 난다에서 5년 전에 기획한 이 책, 책이 완성되는 동안 그는 꿈 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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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나는 “아버지가 아노스미인 조향사라니, 이 얼마나 멋진 아이러니인가!” 하며 흥분하기까지 하였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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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 위에 올라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새롭게 발을 디딘 별의 하늘에는 또다른 별이 빛나고 있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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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관계가 된 향까지도 극복하고 바라보던 별이 있는 하늘길 위에 선 그의 비행이 또 다른 별이 빛나고 있는 곳을 향해 찬란하게 날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한다.

낯선 곳에 있는 이민자의 서러움을 달래는 위로,
햇살의 찬란함,
아련한 사랑의 기억
이렇게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 그의 향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현재의 삶과 닿아 반응을 일으키길 바라며.

책을 덮고 보니 향이란 게 참 신기하다.
향을 쌓아간다는 말을 살펴보면 그 밑바탕엔 각 사람의 추억이 있다.

마치 아내가 피르망 가오 10번지 향을 맡고 베이징에서 유학하던 시절 외국인들로 붐비던 오도구를 생각해 내듯.
내용도 만듦새도 고급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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