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인기척 이규리 아포리즘 1
이규리 지음 / 난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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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인기척’이라 쓰고, ‘시인의 인기척’이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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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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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줄여가며 본질에 다가가는 사람(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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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있지 않은 걸 보게 하고 없는 걸 있게 하며 우울을 별로 바꾸거나 공포를 장미로 보게도 하는, 그 환상에 언어를 담아 시로 만드는 사람, 괴로움은 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걸 아는 사람(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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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를 보았다, 라고 할 때 그것이 정말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금 슬프다. 그러나 그걸 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슬프다. 라고 말하는 사람(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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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독의 방 문을 열고 심연으로 들어가는 사람,
슬픔과 비참을 친구처럼 옆에 두고 나란히 걷는 사람,
비린내 나는 기억을 기꺼이 끄집어내어 시어로 엮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깊은 밤이 드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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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시인으로 시를 쓴다는 것, 시어를 낚는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깊은 사유 속에 ‘인기척’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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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닫으며, 너무 외로워 보여서 아름답고, 너무 아름다워서 외로워 보이는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건 ‘시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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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불완전한 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지만 해답을 구해야 하는 일에 직면할 때면 더 아름다운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는 덜 부끄러운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입을 닫는다. P.33
금요일부터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 말이 참 와닿습니다. 잘 사는 건 어쩌면 쪽팔리지 않게 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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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돌아보게 한다. 잘 돌아보게 한다. 저 어둡고 낮고 누추한 곳에서 어찌 빛이 나오는지. 그 빛 따라가다보면 헐했던 몸의 둘레가 환해진다. 그것이 변화이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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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써 시대를 해석한다면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선善에 가깝고 김수영의 부끄러움은 진眞에 가깝다. 진은 강직함이며 선은 따뜻함이다. 두 개념은 거의 서로를 공유하고 있다. 이토록 지극함에 이르는 이들의 노력은 수정처럼 맑은 소리로 남는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거 공히 미美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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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길면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 P.153
시가 갑자기 좋아진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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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닐 불자를 좋아한다. 불안, 불편, 불리, 부족, 불가능 등. 그 단어들을 오래 함께 의복인 양 입을 것이다. (...)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불자도 있다. 불법, 불신, 부정, 부실 등. 이는 어떤 말씀에 의해 구별할 수 있는데 전자가 갈끝을 자기에게 두고 있다면 후자는 칼끝을 상대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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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가 들고 있는 칼끝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주 고뇌에 빠지고, 나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워 하나 봅니다. 이를 ‘고독’이라고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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