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언뜻 느껴지기는 했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유미주의자의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게 매섭기 그지없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그리는 내내 19세기 후반의 유럽사회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날카롭게 해부했다. 그리고 그 번뜩이는 기지는 단편집 <별에서 온 아이>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별에서 온 아이>는 너무도 유명한 단편 '행복한 왕자'를 더불어서 그가 낸 두 권의 단편집[행복한 왕자]와 [석류나무 집]을 묶은 작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권의 단편집을 동화, 혹은 어른을 위한 동화로 분류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 동화란 무엇일까? 동화란 작품에서 교훈이나 무궁한 상상력을 안겨주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뜻함이 보통의 시선이다.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라면 조금 더 작품의 구조와 구성이 조금 더 어른들의 소설에 맞게끔 변형된 것을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보통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그의 두 작품집이 어른을 위한 동화로 묶이는데 반대할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그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그의 가슴과 달리 그의 눈과 머리는 서늘하기만 하다. 이 두가지의 조화가 <별에서 온 아이>를 만들어 낸다. <별에서 온 아이>에서 동화라고 할 만한 착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아홉편의 이야기 중 정말 동화라는 범주에 넣을 만한 것은 단 두편, '행복한 왕자' 와 '자기만 아는 거인'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행복한 왕자에 속한 5편의 이야기와 석류나무 집에 속한 4편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방향이 너무도 갈리는데 행복한 왕자의 5권이 그나마 보다 교훈적이라면 뒤의 4편의 이야기는 그런 교훈들이 모두 허황되다는 인식하에서 쓰여진 것만 같은 의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전(前)5편의 이야기보다는 뒤의 4편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매력적이고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앞의 5편의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의 매력이 그다지 많이 풍기지 않는다. '행복한 왕자'와 '자기만 아는 거인'은 전형적인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헌신적인 친구'와 '비범한 로켓 불꽃'은 풍자를 통해서 역시나 교훈적인 이야기로 방향을 이끌어 간다. 그나마 '나이팅게일과 장미꽃'만이 오스카 와일드 답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만한 매력을 풍기는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교묘한 현실의 풍자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동시에 잡아가는 그의 능력이 한껏 발산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다는 듯이 뒤의 4편의 이야기에서 찬연하게 펼쳐진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품이자 백미는 '어부와 그의 영혼' 그리고 '별에서 온 아이' 이다. '어부와 그의 영혼'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도 경직되었던 사랑에 대한 관념, 정신적인 사랑이 육체적인 사랑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이며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영혼과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과감히 깨부순다. 또한 그 과정에서 튀어져나온 정신과 영혼, 육체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서유럽을 지배하던 마르크스의 총화인 유물론까지 그 경계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주제의식을 다룬다.

그리고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한번에 뒤엎어버리는 재미있는 작품이 뒤이어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별에서 온 아이' 이다. '별에서 온 아이'의 초 중반은 흥미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석류나무집의 4편의 이야기중 가장 무난한 진행속에서 너무도 예상 가능한 결말로 흘러간다. 우리가 모두들 짐작할만한,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만 같은 이야기의 착한 진행은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진행되며 별에서 온 아이는 모든 착한 이들의 바람대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리고 여기서 이 책의 모든 것을 한번에 뒤엎는 마지막 한 줄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 곳에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가 바라본 세상이 모두 함의되어 있다. 그는 세상을 전혀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별에서 온 '그 아이' 역시 지구에 와서 느꼈던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야기가 그 한줄 전에서 끝났다면 이 책은 정말로 어른을 위한 동화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방점을 찍는 그 한 줄로 그는 이 책은 동화라는 인식을 모두 날려버리고 독자에서 엄청난, 그리고 과연 그 답다는, 그리고 그 한줄로 완성되는 작품을 남겼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한줄을 위해 그 기나긴 작품들을 쭉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찬연도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순차적인 작품인 두권의 단편집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별에서 온 아이는 별에서 지구에 와서 무엇을 보았을까? 오스카 와일드가 그 아이를 대신하여 남긴 이야기. 그 결말이 별에서 온 '아이'가 본 세상의 모습이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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