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문장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집의 첫 장을 넘낄때의 느낌은 사뭇 오묘하다. 이번에도 역시 실망할거란 야릇한 안도감과 그래도 이번에는 무언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좌절할 기대감의 혼합은 늘상 오묘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행히도 야릇한 안도감보다는 좌절할지 모르는 기대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집을 하나 만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애현 작가의 첫 작품집 <오후의 문장>은 그간 신춘문예에서 수상한 작품과 자신이 힘들게 낳은 몇개의 작품들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모두 9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오후의 문장>은 각각의 작품 속에서 묘하게 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며 흡사 하나의 작품에서 봄직한 분위기의 일관성을 이룬다. 그 일관성은 각각 작품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분위기와 전혀 특이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의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백야>는 몸에서 자체적으로 빛이 나는 '눈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내세울것이라는 자신의 특이체질밖에 없는 전형적인 아니 전형적이지 않은 은둔과 고독이 생활화된 젊은이다. 그리고 그를 단숨에 알아본 '눈사람'을 만들어낸 그녀. 어둠이 익숙하고 밝은 빛에서 살수 없는 그녀는 '눈사람'의 은은한 광채속에서 그녀의 닫혔던 미간을 서서히 풀어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만남으로써 결핍을 채우고 희미한 밝음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밝음의 세계 뒤로 펼쳐지는 8편의 단편들은 모두 그 앞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하듯 그리고 그것들을 백야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그녀의 노력으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그 밝음은 무한정 밝아지는 여명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다. 그녀가 말하는, 짜내는 노력은 결국 희미한 채로 결말을 맞는다. <빠삐루파>와 <오후의 문장>, <실러캔스>와 같은 작품들을 읽어내고 있노라면 우리가 여실히 느끼는 어둠속에서 딱 한웅큼만의 빛으로 그 어둠을 다 채우려는 듯한 결말 속에서 이것이 그녀의 희망인지, 희망을 빙자한 삶의 소용돌이와 반복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녀의 희망은 딱 그만큼이다.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카리스마스탭>역시 그와 닮았다. 인간이 인간을 상실하고 비(非)인간의 매력으로 성큼 다가서고 그를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모든걸 잃어버리고 있는 바비와 그녀를 그 끝자락에서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시 인간을 찾아주려는 혜주의 마지막 안간힘은 그래서 이 작품집의 마지막에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본적으로 김애현 작가의 시선은 무심한 듯 따듯하다. 그 따듯한 시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나'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척, 누구나 그러는 듯, 덤덤히 살아가는 아무도 모르고 신경쓰지 않는 삶의 열꽃어린 시점을 세세히 노래하는 모습이 간만에 반갑다.
  


얼마전 한 책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박완서씨의 문학상 수상 작품집 <환각의 나비>를 읽었다. 그동안 얼핏 얼핏 접했던 박완서 작가의 문학을 온전히 처음 접한 나는 그분이 왜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불리웠는지를 새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뒤늦은 나이에 문단에 입문한 박완서 작가. 그녀의 작품은 그 작가의 원숙함에 걸맞게 이미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자욱한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박완서 작가가 젊은 날, 인생의 단맛, 쓴맛을 막 알아가기 시작한 그 어느날 작품을 썼다면, 그 작품들은 어떤 색채와 떨림을 가지고 있을까. 이 작품의 책을 덮는 순간 왠지 모르게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다시금 내 머리에 맴돌았다. 물론 김애현 작가가 박완서 작가와 견줄만 하다던가, 글을 쓰는 스타일과 풍김새가 비슷하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 의문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