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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대한민국에서 진보세력이란 어디를 의미하는가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자. 통상적인 개념에서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정책이라든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보여주었던 정책들은 진보라기보다는 중도 보수 혹은 보수에 어울리는 부분이 더욱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두 분의 대통령이 보여준 정도의 정책들도 줄곧 빨갱이들의 정책으로 저급한 비난을 받아왔으며, 그것은 기존의 수구 기득권 세력의 야합에 의한 결과임이 자명하다.
책에서도 밝히지만 친일파 청산의 부재와 수구 기득권 세력의 독재, 남.북한의 대치 상황 등의 특수한 상황이 대한민국에서의 진보,보수의 개념을 조금 많이 바꾸어놓았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우파의 정책을 지향하는 민주당이 친숙한 빨갱이정당이 되었으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등의 진보정당은 상종도 못할 친숙하지도 않은 빨갱이 정당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개혁/진보세력이란 조중동과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수구 기득권 세력에 반하는 모든 집단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 책 역시 현재의 정치지형을 그대로 담은 책이므로 이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언제고 이 개념이 바뀌는 날이 진정으로 진보가 집권하는 그날이겠지만 그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으므로 일단 진보의 개념을 반수구세력으로 정의하고 책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책은 오연호 기자와 조국 교수의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오연호 기자가 질문을 이끌어 나가고 그에 조국 교수가 답하는 식으로 쓰여있는 이 책은 조국교수가 생각하는 현 정치상황과 진보/개혁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조국교수는 그 명성에 걸맞게 현 정치상황에서의 진보진영의 역할과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경제, 교육, 통일문제, 검찰과 권력형비리 문제등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서 자신의 내공을 뽐내고 있다. 특히 기존의 어려울것만 같고 우리네 생활과 관계 없을 것만 가득한 빨간 냄새 자욱한 책과는 달리 현실적인 이야기들, 특히 6.2지방선거까지의 최근의 사회적 현안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강점이 잘 살아있다.
이 책에서 조국교수와 대담자 오연호 기자가 강조하는 부분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보/개혁진영의 자기성찰과 반성, 그리고 준비성이다. 책은 투사에서 영주가 되어버린 386세대의 기성정치인들을 철저히 비판한다. 그들은 더이상 사회정의를 위해 뛰어온 지난날의 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덧 계파를 관리하고 자신의 텃밭을 관리하며 굳이 집권하지 않아도 자신의 세력을 지킬 수 있는 영주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이 책은 얘기한다. 그와 동시에 지난날 운동권에 몸담았던 그 시절의 관성대로 살다보니 시민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이끌어나가려고만 하며 그에 걸맞는 정책제시에 매우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충분히 개혁/진보 세력이 선도할 수 있는 여러 현안들을 수구세력에게 빼앗긴 것은 이러한 부분때문이라고 통렬히 비판하며 오히려 지금의 시기를 잘 활용하여 앞으로는 보다 정책을 선도할 수 있는 진보/개혁세력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집권하기 위해서라면 왜 통일이 민생에 도움이 되는지, 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이 민생에 도움이 되는지, 왜 부자를 감세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감세하는 것이 민생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국민들과 함께하고 정책으로 제시하고 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진보/개혁 세력의 정책을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거나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진보/개혁진영의 사람들은 그러한 비난과 비판에 대해 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로 대꾸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태도를 호되게 비판한다. 이제 더이상 국민들은 기존의 운동권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이상은 국민과 함께가고 국민과 같이 고민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생운동하던 그대로 우리가 옳고 우리만 따라오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반성하고 다가가야 할 부분은 민생문제에 대한 보다 절실한 대안과 국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으며 흔히 자신을 진보/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진보/개혁진영이 집권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왜 서민들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지, 국민들이 문제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국민들에게 어떻게하면 더 이러한 정책들을 알리고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은 국민들이 문제라는 안일한 마음속에서 그저 사그라졌을 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부분을 한번 환기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한번 즈음 읽어봐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만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테고 한가지는 조금 미진한 부분이다.
일단 첫번째는 개혁/진보세력에서 문제가 되는 종북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모든 진보/개혁 세력이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종북단체들은 연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은 충분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개혁/진보세력의 극히 일부분은 북한의 권력세습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까지 말한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누가보아도 잘못된 북한의 잘못은 내팽겨치고 남한 정권에만 서슬퍼런 비판을 가하는 것은 수구세력에게만 좋은 먹을 거리를 주는 일이다. 물론 책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분명하게 짚어내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의 새 대표가 된 이정희 의원이 이러한 일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할지 귀추가 주목된다고도 이야기했다. 물론 북한은 감싸주어야 한다. 목숨이 아닌 돈으로 평화를 살수 있다면 우린 기꺼이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북한의 잘못에는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해야한다. 무조건적인 북한 찬양과 그러한 세력까지 연대해야한다는 말은 수구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는 집권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 연대를 어디까지 함께할 것이냐에 대해서, 특히 북한문제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책에서 이부분을 조금 더 짚었으면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가지 어쩔 수 없는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내공'이다. 조국교수는 전방위적인 질문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회 현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보기에는 조금 쉬운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진보가 집권하기 위한 '진짜' 플랜을 보고 싶었을 독자에게 이러한 부분은 아주 약간의 서운함이 남았을 부분이다. 그러나 이부분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쉬운 이야기들을 주로 담고 있다. 하지만 그래야 진보가 집권할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 책은 쉬운 이야기이지만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당장 취업이 급한 사람들은 신경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의 실마리를 잡아가고 무언가가 구체화되고 조금의 생각이라도 바뀐다면, 그것이 진보가 집권하는 한걸음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의 아쉬움은 이 책의 강점이 된다. 누구나 보아도 어렵지 않고 관심을 환기시키며 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먹고 살기가 힘들어 정치에는 신경쓸수 없는 사람들에게 먹고살기 위해 정치에 신경써야 함을 다시 한번 자연스레 알려줄 수 있는 책. 이것이 <진보집권플랜>의 강점임과 동시에 진정 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한번 집권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