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영화를 만나다
김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그림책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말인가.
그림만으로 책이 될수 있고
글로써 이야기를 진행하고 그 위에 그림이 깔려있을 수도 있고
그림만으로 말하고 싶은 바를 다 보여주지 못할 때 글로 조금조금 보충해줄 수도 있고
그림만으로도 좋고 글로도 좋은데
그것이 함께라니 더 없이 좋고 또 좋은게 그림책일 것이다.

 
그림이라는 글자에 '책'이라는 글자 하나만 더해졌을 뿐인데,
그림과 그림책은 엄청난 간극을 불러온다.
미술전,그림전시회에는 관심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도
그림책이라는 단어에는 무언가 아이들 취향,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책이라는 건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읽어주던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초등학교시절 그림일기의 영향인 걸까?
그림일기를 더이상 그리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그림과 글의 결합은 나와는 더이상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는 이런 우리들에게
그림책이 어린아이들만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은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책이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너무도 쉬울 것 같아서 그림책을 멀리했던 우리들에게
그림책도 충분히 우리들과 친숙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가는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에 이어
두번째 에세이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로 우리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 찾아왔다.
 

철학이 누구를 만나고, 문학이 누구를 만나고, 경영이 누구를 만나는 책의 제목들이 봇물터지듯
넘실넘실거리는 때에 사실 이 제목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제목의 식상함은 책의 앞면을 장식하는 표지사진으로, 그 사진이 말하는 느낌으로 모두 잠재워버렸다.
 

지금은 더이상 실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타자기와 전축, 초인종까지.
우리의 어린시절을 함께했던 전축과 타자기는,
더이상 우리의 추억과 유년기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벨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의 발명으로 아무도 타자를 치지 않으며,
전축보다는, 걸어다니며,지하철에서,공부하면서도 항상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어린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것들을 이 그림은 우리의 기억에서 끌어내고
잠시나마 우리를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책이 그림책의 추억을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끌어내는 것처럼.

 
이것이 그림책의 묘미일 것이다.
글로는 떠올라지지 않는 것, 그림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이
둘의 만남으로 우리를 단숨에 추억으로 빠지게 만들고 글의 느낌을 전달해준다는 것.
이 만남의 느낌을 작가는
책 속에서 영화와 그림책의 만남을 통하여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다.
영화를 만난 그림책은 왜 이제야 자신을 보아주느냐는 듯이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부터 어른들이 더욱 좋아할 그림책까지.
영화와 만난 그림책들은 영화보다 더욱 빛을 발하며 자신들을 부각시킨다.

 
매년 여름이 되면 항상 기대하게 되는 영화 스튜디오가 있다.
픽사스튜디오.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업, 월-E,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주식회사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어른이 되어야 그 진가를 인정해줄 수 있을만한,
애들도 볼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들이
이 책을 덮은 이후에 떠오른다는 것은
나도, 우리도 그림책과 충분히 친해질 수있다는 방증이리라.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
굳이 영화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림책을 만난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글이 있고, 따스한 그림이 있고,
둘이 만난 책이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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