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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은 사과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1
김지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상큼한 제목이다.
표지 속 소녀들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사과, 네잎클로버, 스마일 그림이 눈에 띈다. 어쩐지 기분 좋아지는 소설일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소설 속 고등학교 1학년 이경은 늘 의기소침하다. 어디에도 상큼함은 찾을 수 없다. 이경은 상대의 기분을 살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을까? 상대의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렇다보니 이경은 늘 조심스럽고, 친구 관계는 어렵고 상처받은 마음은 쉬 회복되지 않는다. 그 사이 인간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하나둘 쌓이기 시작은 벽은 어느새 단단해졌다.
늘 친구가 어려운 나는
우정을 꾸준히 유지할 만한 인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 ‘오늘의 기분은 사과’ p67 -
인간이 제일 솔직해지는 순간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게 드러날 때야.
자기가 두려워하는 걸
숨기지 않는 사람은 마음껏 믿어도 돼.
- ‘오늘의 기분은 사과’ p75 -
이경과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규리는 이경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거침없는 태도에 끌려다니는 것은 늘 이경이다. 규리의 거침없음은 이기적일까? 같은 반 친구 유림 역시 거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쩐지 그 거침없음 덕분에 이경에게 행해진 부당함이 눈에 보인다. 유림의 거침없음은 이타적일까? 그리고 전학생 솔이는 거침없는 명랑함으로 새로운 학교에 빠르게 적응하지만 이경과 단둘이 있을 때면 자꾸만 깊은 바다로 침몰한다. 솔이의 거침없음은 가면일까?
늘 머뭇거리고 살피기 바쁜 이경에겐 친구들의 거침없음은 상처가 되기도, 동경이 되기도 결국 이해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시킨 무언가와
계속 부대끼며 살아보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화해 아닐까?
어떤 화해는 상대를 기꺼이 다시 믿어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오늘의 기분은 사과’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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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경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천천히 따라간다. 내내 낮은 음자리표를 그리던 이야기는 이경 고모의 부재와 솔이의 비밀스러운 가정사를 툭툭 던지며 살짝살짝 높은음을 낸다. 하지만 끝끝내 고모의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풀어주지 않은 점은 당혹스럽다. 또, 솔이의 상실과 거침없는 명랑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더라면, 솔이와 맞닿은 찻집 언니의 상실을 조금 더 촘촘하게 연결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어른이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며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 ‘오늘의 기분은 사과’ p121 -
그럼에도 이경이 규리와 유림을 통해 자신의 조심스러움에 갇혀 놓쳐버린 수많은 관계의 이면을 깨닫는 부분은 그야말로 명쾌했다. 어쩌면 작가는 ‘오늘의 기분은 사과’라는 제목을 통해 사람의 기분, 상태, 나를 향한 마음까지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는지 모르겠다.
기분을 애써 파악해야 할 필요는 없어.
감정은 전해지는 거고 저절로 느껴지는 거니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을 알 수 있는 통하는 사이 있잖아.
우리 이경이가 얼른 그런 소중한 친구를 만나게 되기를.
- ‘오늘의 기분은 사과’ p179 -
그리고 결국 소설은 우정을 말한다.
관계의 조심스러움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정을 나누라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관계를 통해 상처 주고 상처받고, 이해하고 미워하며, 결국 기억하고 잊혀지는 무한 반복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의 상처가 전부인 것처럼 아파하지 말고, 지금의 미움이 이해되는 과정을 담담히 맞이하다 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있을 것이다.
역시 처음 내 느낌이 맞았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는 읽고 나면 뭉근하게 기분 좋아지는 소설이 맞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감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