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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인간 이시후 ㅣ 창비아동문고 342
윤영주 지음, 김상욱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열두 살 이시후.
냉동된 지 40년 만에 해동되었다.
시후는 원인도 알 수 없고, 이렇다 할 치료 방법도 없는 소아 랑귀누스 병으로 2년째 투병 중이다. 그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이 고약한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매일매일 무너진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더 나은 치료법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후의 냉동을 결심한다.
“제발 나 좀 내버려둬! 그냥 죽게 두라고!”
“시후야, 제발 부탁이야. 엄마는 너 못 보내.”
“아빠가 약속하마. 반드시 깨워 줄게.
우린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 냉동인간 이시후 p18 -
시후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40년 만에 시후는 해동되었다. 시후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40년 동안 발전한 기술과, 달라진 문명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내 앞에 펼쳐진 건 멋진 신세계였다.
- 냉동인간 이시후 p23 -
하지만 시후의 기대와 다르게 현실은 냉혹했다. 달콤한 바나나 팬케이크를 만들어주셨던 할머니와 시후를 절대 보낼 수 없다던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다. 아빠 역시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 입원 중이다.
설상가상 여전히 열두 살인 시후 앞에 나타난 50살이 된 동생 정후와 정후의 딸 진진보라의 냉랭함은 시후가 불청객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심지어 시후의 냉동 유지 비용으로 가세가 기울어 그들은 하위 지구에 살고 있다.
칙칙한 하늘, 칼칼한 공기, 허물어져 가는 낡은 건물들. 자신이 냉동된 사이 가족이 겪은 온전한 희생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후는 한없이 참담하다.
“나는 죽는 게 나았어,”
“네가 중요하니까 우리가 이렇게 산 거야!
구질구질한 하위 지구에 사는 게 누구 때문인데!”
“차라리 날 포기하지 그랬어!
이따위 세상을 보여 줄 거면,
이따위 미래를 보게 할 거라면!”
- 냉동인간 이시후 p49 -
새로운 가족, 하위 지구, 다시 학교
이제 시후의 진짜 현실이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가 아닌 50살이 되어버린 동생이 보호자가 되었고, 조카와 같은 반이며, 해동인 이란 이유로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제 이건 모두 다 현실이다. 그저 견뎌내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맞이하는 시후의 모습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막막한 현실과 기댈 곳조차 없어 외롭지만 시후는 그럼에도 삶을 살아보고 싶다.
현실은 때로 가혹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고 싶어.
살아 있으면 나아갈 수 있어.
- 냉동인간 이시후 p98 -
‘냉동인간 이시후’는 냉동보존이라는 색다른 소재와 미래 사회의 모습을 통해 어린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선한 소재 속 시후가 겪는 혼란은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후가 겪는 가족 갈등, 빈부격차, 차별을 바라보며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시후는 40년 동안 냉동되어 있었지만, 40년 전 넘치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시후를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싶었던 가족의 사랑이 결국 시후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 갈 힘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시후는 살아갈 것이다. 사랑받았던 그 마음을 디딤 삼아 불쑥 나타날 어려움을 건너며 분명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냉동인간 이시후’는 독특한 소재와 빠른 전개로 단숨에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묵직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이 묵직함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기를... 그리고 부디 나를 아끼는 사람들과의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묵직한 사랑의 힘을 단단하게 키워나가길 바란다.
End가 아니라 And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아닌 그리고.
엄마의 사랑은 끝이 아니라 ‘그리고’로 연결되어
나로, 정후로, 보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 냉동인간 이시후 p16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한 감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