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 거짓 선동과 모략을 일삼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에게 보내는 레드카드
마이클 만 & 톰 톨스 지음, 정태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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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가>를 읽고

 

요 근래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화끈한 책이었고, 가장 현실적인 책이었으며, 가장 현대적인 책이었다. 분명히 기후 변화 정책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한국의 정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지금 한참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를 보고 있는 느낌, 지난 대선을, 앞으로의 대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성을 느꼈다.

 

서평을 쓸 때 책 내용을 쓰지 않고 내 느낌을 중심으로, 내 생각을 쓴다는 나름 개똥 원칙을 세워 두었지만, 이 책은 저자들의 목소리가 흥미로워서 그 원칙을 깨기로 했다. 저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한국도 미국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수많은 정치인이 기후변화 문제만이 아니라 종교도 정치도 재해 대책도 시민을 우선하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기존을 우려를 재확인하고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가>를 읽으면서 가장 곱씹어보고 싶고 머리에 넣어 두고 싶었던 점은 과학이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난한 작업인지를 제대로 설명하는 법이었다. 믿음과 과학 가운데 내가 보통은 과학을 택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도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나에게 마이클 만과 톰 톨스는 근거의 우월성(preponderance of evidence)’을 외치라고 한다.

 

먼저 여러분이 과학적 체계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적 사실들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할 경우, 측정과 분석과 이해를 위해 분투하는 과학자들에게 의지하기 바란다. 의견의 불일치가 명백하거나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득세하는 상황이라면, 근거의 우월성을 무기로 삼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듯 근거의 우월성!’하고 외치면 된다. 완벽한 근거란 수학의 정리 또는 알코올음료 따위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과학을 향해 완벽한 근거를 요구한다면, 과학이 체계를 갖추는 고유의 과정을 무시하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꼴이다. 과학은 오히려 상당한 수준의 가능성, 근거들 사이의 균형, 여러 갈래의 근거들이 보여주는 일관성을 다루는 분야다.”(33)

 

기후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원자력 에너지를 반대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더 나아가 보편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체 오늘 청문회를 개최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작 진지한 과학적 조사가 필요한 지점은 이 문제(148)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자는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민의 여론만을 따라가는 정치는 위험하다는 어느 한국 국회의원을 말을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었다(사실은 웃을 문제가 아니라 아주 걱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자의 전반적인 논조는 낙관적이다. 시민이 정부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를 막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프란체스코 교황의 노력과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을 많이 언급한다. 나는 그래서 더 우울해져 버렸지만. 책을 쓰는 동안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였지만, 지금은 트럼프니까. 212쪽에 나오는 트럼프는 그래서 더 얄밉다.

 


   

 

저자들은 우리는 특수한 이익집단이 아니라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정치인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212)라고 말한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투쟁이 다음 단계로 원활히 진화하도록 힘을 보태자.”(213)라고 말한다. 이런 모든 주장을 나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로 들었다(이런 오독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겠지만).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의회 차원의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니만큼”(195) 풀뿌리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나는 정치적인 감성으로 이해했다. 저자들은 선거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사람은 가만두면 안 된다.”(141)라고 했다.

 

<누가 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가>는 나에게 고집이 세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과학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얼버무리지 말자. 지구온난화가 사실이 아니라거나 정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문제로 입씨름하지 말자. 그저 기후변화 부정론은 사실이 아니므로 더 이상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고 정중히 말하자. 상대방이 근거를 요구한다면, 이 책을 건네자. IPCC나 국립과학원에서 펴낸 보고서를 일러줘도 좋겠다. 그가 모든 과학이 의문스럽다고 말한다면, 그런 관점은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음모론의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하고 더 이상 논쟁하지 말자. 대신, 기후 문제의 해결에 이바지할 생각이 있어 보이는 합리적인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리자.”(209~210)

 

어떤 근거를 제시해도 내 말만 옳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과 함께 <누가 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가>를 가져가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언론인을 꼬집은 부분도 한국 언론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언론은 기후변화 부정론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여러 잘못 가운데 하나는 언론의 그릇된 균형론이다. 기자들은 언론학개론을 공부하면서 나쁜 버릇이 들었다. 바로 기후변화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접할 때면 주류 관점과 대등한 지위를 주변 관점에 부여하는 버릇이다. ‘양측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라!’고 배운 탓인데, 이런 태도는 과학과 반과학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는 데서 대단히 게으른 접근법이다. 과학이라는 문제에서 모든 관점이 동등할 수는 없다.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고질병인 그릇된 균형론은 대중적 논의의 양극단화와 정보원의 분산이 점차 심화하면서 꾸준히 악화되었다. 완고한 우파 메아리방(자기편의 메시지만을 취사선택해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현상)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대다수 보수파 정치인들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언론을 자임하는 폭스뉴스 같은 매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한다. 그러나 우리가 터득한 경험 법칙에 따르면, 어떤 방송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균형 잡힌 공정 언론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아마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157)

 

진보지식인의 특징은 유머인 것 같다. 이건 선입견인데, 보수지식인은 공격적인 사람들이 꽤나 많다. 지식 이전에 주장을 하는 방식,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지지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고, 자칭 인류주의자인 나는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주장의 당위성과 비례할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하니까.

 

지구는 온난화 되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온난화를 믿는 사람들이 지구를 대하는 방식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화석 연료를 아끼고 동물을 사랑하고 주어진 자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되도록 아끼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상당히 좋은 책을 읽었고, 계속 옆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저자들처럼 단호하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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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빈스 에버트 지음, 장윤경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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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을 읽고

 

내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의 장르를 굳이 구분한다면 새로운 시각과 패러다임으로 쓴 자기계발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빈스 에버트는 코치를 기르는 코치에 염려스러운 시각을 보내고 <시크릿> 같은 책이 제시하지 못하는 삶의 자세를 성찰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삶을 보라고 제안하지만, 이 책은 결국은 살아가면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무기는 복원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처세서이자 강사의 강의 요약서 같은 책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 강사가 물리학을 전공한 물리학자이며, 저자가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방향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는 점. 기존 처세서에 많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새로운 처세서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운이다. 그 운을 가져다주는 것은 노력과 그날그날 열심히 사는 자세라는 저자의 말은 정말로 내가 딱 믿고 싶은, 그리고 믿고 있는 그런 삶의 자세이다.

 

사석에서는 사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전문가들의 사기성을 말해주는 책이고, 독일인도 독일인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걸 알게 해주는 책이다. 중학생 정도부터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과학 내용과 여러 경제 이론을 담고 있어 본격적인 우연학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히 우연학 입문서는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 부분 우연이 작용하고 있으니 과감하게 시도하고 노력하라고 말하는 책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9)가 빈스 에버트가 <세상에서~>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전부가 아닐까 싶다(이 기도는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과학과 사회학, 경제학을 가지고 말한다. 유머를 잔뜩 섞어서 말한다. 읽는 내내 재미가 있었다. 내용 자체는 가볍고 어렵지 않지만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에는 나는 거의 3주에 한 번씩 새로운 면도날을 찾아 마트를 배회한다. 이놈의 질레트가 마하 울트라 센서티브 터보같은 신제품을 쉴 틈 없이 출시하는 바람에, 내가 이전에 사둔 면도기는 완전히 고철 취급을 받고 있다. 따라서 교체용 면도날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최근에는 5중 면도날까지 등장했으니 내 예상대로라면 2050년에는 38중날 면도기가 출시될 것 같다. 그러면 머지않아 면도 사고가 사망률 1위에 등극할지도 모른다.”(252)처럼 재미있는 부분도 많이 나온다. 번스 에번트의 신랄하면서도 유쾌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친구 아이의 이름을 놀리는 장면은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재치라기보다는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미국을 너무 좋게 생각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이기는 했다. 번스 에번트는 독일의 철저한 관료주의와 지나친 정리주의를 걱정하지만, 아직 2017년의 한국에는 상당히 필요한 자질이라는 생각도 들어, 이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 읽히게 한다면 한국의 사정, 독일 사정, 미국 사정을 일단 먼저 설명해 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살짝 얇고 넓게 아는 지식류의 책이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그래서 과학이나 경제학 등은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주었으면 싶었으나, 이 책은 이 책 나름대로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다. 좀 더 깊었다면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힘들었을 테니. 휴가철에 많이 사람이 가볍게 읽고, 성장 위주의, 소비 위주의, 스마트폰 위주의 현대 생활을 조금 깊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저자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결국은 변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고, 삶이고, 나이고, 우리의 관계일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카르페 디엠을 곡해하지 말고 제대로 살아가자. 괜찮은 책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리타 이야기를 해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궁금한 사람을 책을 보기를!). 정재승 뇌 과학자도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 10, 17, 관계 이야기가 여기에도 나온다. 배경은 서울이 아니라 베를린이지만.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추천사처럼 지식과 유머가 절묘하게 조화된 책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추천사처럼 날카롭지는 않지만, 의미심장하기는 하다.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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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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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을 읽고

 

박홍규 선생님의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선생님의 주장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 주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깊이 공부하고 자기 생각을 세우라는 데 있다면, 박홍규 선생님의 책은 참으로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뵌 적은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뵐 기회는 없을 듯하지만, 박홍규 선생님은 적지 않은 나이로 기성세대의 고집과 젊은이의 반항을 동시에 담고 있는 듯한 글을 쓰신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격렬하게 화를 내고, 진지하게 사유하고 고민한 뒤에 간결하고 명료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가독성도 문체도 모두 좋다. 진지한 학자이자 글을 잘 쓰는 작가이다.

 

박홍규 선생님은 어떠한 지식인도 권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복종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도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사유 속에서는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루소도, 시오노 나나미도 제국주의자, 반민주주의자가 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고, 상당 부분 많은 의견에 동의하지만, , 이렇게까지 생각해도 되는 걸까를 고민하게 되는 부분도 많다. 바로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반박을 하면서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일례로 왕은 모두 군주이고, 군주는 모두 반민주적이라 나쁘다고 한 부분도 그렇다. 광개토대왕의 침략주의와 반민주적인 부분은 선생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오히려 군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민주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낸 일이 더 놀랍고도 대단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에 반대만 있다면 책 읽기가 많이 힘들 텐데, <인문학의 거짓말>은 일단 박홍규 선생님의 시각일지언정 인물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가기 때문에 인문학 지식을 쌓을 지식서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읽는 책이다.

 

학자를 비웃고 철학자를 비웃고 종교를 비웃고 정치인을 비웃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박홍규 선생님의 글은 정말로 반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며 반지배주의적인 글이다. 수많은 지식인을 비웃는 박홍규 선생님이니 아주 멋진 고전으로 꼽은 작품이 <걸리버 여행기>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 지식인의 번지르르한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이 실천이 일상이 박홍규 선생님에게는 중요하다. 아무리 평정과 중용을 외치면 뭐하는가? 세네카는 다른 사람에게만 절제하며 살라고 했던 고리대금업자일뿐이고 공자는 출세지상주의자라는 일침에는 촛불 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절절하게 목격했던 우리 시대 지식인의 민낯이 계속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 인문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인문학의 거짓말>은 결국 삶의 질을 높이려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는 책이다. 민중 집회의 권한을 법이 인정하지 않는 한국 이야기를 고민하고 유베날리우스를 읽고 네루의 <세계사 편력>, 디오게네스를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인문학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봐야 할 책이 늘었다. 네루의 책, 러셀의 책, 버즈비의 책, 묵자. 배우고 익혀야 할 과정은 너무나도 지난하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인문학의 거짓말> 같은 책이 좋다.

 

<인문학의 거짓말>은 글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책이다. 책을 읽고 곱씹자. 저자와 대화를 하고 내 생각을 정립해 나가자. 어떤 권위자의 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인지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박홍규 선생님의 글을 모두 다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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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Basic 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월터 포스터 크리에이티브 팀 지음, 오윤성 옮김 / 미디어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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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Drawing Basic>을 읽고!(‘보고 그리고가 아니라, 정말로 읽고이다--;;)

 

하하하.”

으아아아, 이게 뭐야!”

 

등교를 앞둔 아이들 입에서, 부모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가족이 컨튜어 드로잉(대상의 한 지점부터 눈에 보이는 형태의 윤곽만 그리는 드로잉이라고, 책에 나와 있다)을 해보겠다고 자기 손을 보고 그렸지만, 모두 괴상한 고무장갑 같은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어떻게 보지 않고도 손을 손 같이 그리지?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기능과 재능과 연습의 결과이겠지.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작은 내 책상을 치우고 <How To Drawing Basic>A3 종이와 에보니 펜슬(이게 내가 드로잉을 할 수 있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도구이다)을 놓고, 결심했다. 매일 20분씩 어쨌거나 그려보기로. 미술은 분명 취미 이상은 안 될 테고, 사실은 시간을 쓰면서 사색을 하는 좋은 도구 외에는 되지 않을 테니, 창의성 내지 독창성은 나에게는 필요 없다. 그러니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을 하나씩 따라 그려가면서 기능을 익히기로 했다. 아주 거창하기는 하지만 죽기 전까지 조금씩 그려나가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사실 나와 함께 하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참고서라기보다는 그림 그리는 법을 읽는 독서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쩌랴, 책마다 다 자기 운명이 있는 것을.

 

하지만 큰 복병이 생겼다. 미술을 전공하려는 우리 딸이 <How To Drawing Basic>은 자기가 갖겠다고 선언해 버린 거. 나보다는 딸아이가 갖고 있어야 훨씬 더 책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 노후를 제대로 책임져줄 책인데? 그래서 딸에게 말했다. “그래. 내가 다 보면 너 가져.”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월터 포스터가 출간한 하우 투 드로잉 시리즈의 정수만을 모은 책. 하우 투 드로잉 시리즈는 40쪽짜리 책이 8달러여서 많이 팔렸다던데. 미술 책은 40쪽에 8, 9000원을 해도 저렴한 편인가, 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무튼, 정말로 아름답고 어려운 책이다. 어려운 거 다 건너뛰고 쉬운 선만 연습했는데도 26쪽 병아리에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 비루한 손재주라니,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련다. 내일 죽어도 나는 오늘 20분 드로잉을 한다. 힘내자! (이런 비장미 때문에 부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내가 작심2일 인간이라는 사실도 미리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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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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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를 읽고

 

아앗, 난감한 독서를 했다.

 

어려운 철학서인지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읽었다.

 

호머의 <일리어드>로 시작해 기독교와 소비에트 혁명, 이슬람의 급진주의로 이어지는 내용은 충분히 흥미로웠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읽어내고 이해해 내고 싶었다. 분노를 은행에 예치한 자산으로 비유하고, 그 자산이 쌓였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풀어내는 저자의 글은 정말로 읽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이 책을 이해를 할 수 없게 하는 요소가 있어서 여러 번 읽어야만 저자가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번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역시 있었다.

 

<분노는~>을 이해할 수 없었던 데는 나에게 배경 지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을 읽다가 너무 궁금해서 서지 정보를 찾아봤지만, 궁금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바로 교정자 이름. 분명히 흥미 있고 재미가 있을 만한 책이었는데, 왜 이렇게 읽기 힘든 책이 됐을까.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편집과 교정에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174. 지속적으로 예언주의를 갈구하다 보면 그 반향으로 공동체에서는 죄책감이다.(??)

 

184.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기독교가 신의 공동체와 세속적 왕국으로 두 개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본 사람이라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문장인지 모를 문장이 몇 페이지마다 한 번씩, 적지 않게 나온다.

 

책에는 조사를 잘못 쓴 부분도 있고, 띄어쓰기를 잘못한 부분도 있다.

 

메를로몽티(퐁티다), 포스터 모더니즘(포스트이다)처럼 기본적인 오류도 보인다.

 

특권을 제거하거나 빼앗는다고 표현해야 하는 부분에서 민주화시킨다라는 뜬금없는 표현도 조금 이상하고,

 

243. “이후 저자는 보다 공개적이고, 위협적 어조로 저자는 계급의식이...” 같은 식으로 생략해야 하는 단어가 그대로 나와 있는 경우도 많고

 

한글에서는 부사나 동사로 풀어주면 좋을 부분들은 모두 형용사와 명사로 풀어줘서 많이 어색한 부분도 있고, 소유격이 아닌 용법으로 ‘~를 많이 써서 읽는 내내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부탁하고 싶다. 많이 읽혀져야 하는 책이고 의미가 있는 책이다. 나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2쇄를 찍게 된다면, 출간인은 교정자와 번역자와 진지하게 상의해서 다시 한 번 책을 정리해 주셨으면 한다. 깔끔하게 정리가 된 2쇄가 나온다면 책을 다시 읽고 서평도 다시 쓸 의향이 충분히 있다. 많은 품을 들여 힘들게 내신 책일 텐데, 이런 서평을 쓰게 돼서 많이 미안하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책이다. 좀 더 예쁘게 정리한 책으로 꼭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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