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수납 -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무레 요코 지음, 박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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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약 3년여 전,
예상치 못하게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일상이 이어지며
'집 정리' 와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이야 집은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 인식이 되었다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는 물론
감염 시 2주일 정도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격리 생활이 이어지며 한정적인 집의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해 쾌적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람들에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tvN 채널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공간인 '집'의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전하며
꽤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짐을 지고,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도,
꼭 필요해 남겨두어야 하는 물건과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물건, 버려야 할 물건을 구분해
과감하게 정리를 이끌어주는 전문가의 손길을 보며
한 번씩 흘끔거리며 내 방과 집을 살펴보게 되었던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공감과 찬사를 받은
일본의 유명 작가 무레 요코,
싱글 라이프 36년 차로 프로 작가인 그녀는
방 두 개가 딸려있는 멘션에서 고양이와 함께
20년째 살아가고 있다.

워낙에 책을 業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기에
수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건 예상 가능한 범주이지만,
고양이 스크래치도 네 개씩 두고 방에는
기모노가 수 십 벌씩 넘쳐나고 있으며
혼자 살고 있지만 거실과 주방 등에는 일인용 의자만
일곱 개나 가지고 있을 만큼 정리와 수납에 있어서는
젬병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집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집에 쌓아두거나 모른 체 방치해 둔 속짐이 얼마나 많을지
그녀의 글에 담긴 내용으로만 봐도
내가 다 막막할 지경이었다.

그런 작가가 한 살 한 살 더 나이 듦에 따라
나중에는 내 뜻대로 짐이든 몸이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짐을 줄이고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이 에세이의 시작이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쌓아둔 물건과의 작별을 결심한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어떤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가 가진 물건을 꺼내
그 물건의 숫자와 앞으로의 사용 가능성을 셈하고
이것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시험 기간에는 책상 정리는 금물이다.'하는 것처럼
정리를 위해 물건을 살펴보던 작가는
이 물건을 어떤 마음으로 얼마를 주고 샀는지,
그리고 '아직은 쓸모가 있는데' 싶은 생각에
제대로 정리에 임하지 못하고
다시 물건을 봉인해버리는 난관에 빠지기도 하며
글을 읽는 내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짠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이따금 한 번씩 마음을 먹고 정리를 하려다가도,
'지금은 전혀 쓰지 않지만 아직 새거라 버리긴 아까운데'
라는 생각에 버리려는 마음을 접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을 바라보면서도 쉽사리
정리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망설임과 고민이 더 남의 일 같지 않고
마냥 '이 사람의 정리는 낙제점이야'하고
비난하거나 우습게 생각할 수 없기도 했다.

물건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구매한 것이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디게 흘러가는 정리와 수납에서도
조금씩 물건을 비워내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며,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정답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은 아니어도
이따금씩 이렇게 결심을 하고 한 번씩 비워내며
물욕을 잠재우고 깔끔하고 산뜻한 생활을 추구한다면
그 노력 자체로도 좋은 성장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비워내고 또 비워내다 보면
어느새 무레 요코 작가도, 또 나 역시 언젠가는
비록 '적은 물건을 가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는 없어도
'조금 많아도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진 맥시멀리스트'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바탕 비워냈던 방의 짐이 조금씩 늘어갈 기미가 보이고,
계절의 변화를 앞에 두고 물욕이 생겨 쇼핑 욕구가
솟구치는 요즘의 마음을 반성하게 해주는
딱 필요한 시기의 독서였다.

일단 비우고 나서, 진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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